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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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산 관음 경찬 소(洛山觀音慶讚疏) 김구(金坵) 61)
무진(無盡)한 눈과 무진한 팔로 무량(無量), 미진(微塵)이 세계에 기틀을 나타내시며, 상(想)에도 머물지 않고 공(空)에도 머물지 않으면서, 온갖 물건, 온갖 생물에게 감응을보이시는 관음보살의 그림을 그린 소상(塑像)을 우러러보며, 의지하는 마음 진실로 간절할 뿐이며, 소리와 형상을 직접 대할 수 있는 감격은 생각하기도 어렵습니다. 엎드려생각하건대, 임금 되는 것이 무엇이 즐겁겠습니까. 몸가짐이 매우 어렵습니다.
일만 백성들의 허다한 허물을 누구로 하여금 책임을 지게하며, 여러 관료들의 잘못이있다면, 대개 이것은 짐(朕)이 어질지 못한 탓입니다. 흐리고 볕 나고 춥고 더운 것은하늘의 법칙이건만, 백성들은 이따금 나를 원망하고, 수해가 있고, 한재가 생기 며, 풍년이 들고 흉년이 드는 것은 해의 운수이건만, 세상은 모두 나를 나무랍니다. 하물며, 이제 제자인 내가, 오랜 세월 동안 난리가 있은 뒤를 이어, 온 나라가 시들고 파리하게된 나머지를 맡아서 사막이라는 곳은 꿈에 잠깐 노닐어 본 일도 없었는데, 두 번이나그곳을 산을 넘고 물을 건너는 노고를 겪었으며, 전쟁이란 것은 그 이름만 들어도 겁이나는 일인데, 몇 번이고 요란하게 침노를 당하였습니다.
이제는 비록 불쌍히 여기는 상국의 가호를 입고 있으나, 아직도 옛날에 받은 칙명에부응하지 못하였습니다. 하늘이 흐리고 개는 것이 잠깐 사이에 간혹 변하기도 하는 것이니, 사랑하고 미워하는 정이 아침에 어떨지, 저녁에 어떨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슬프다, 나의 사신(使臣)의 행차가 간 뒤로 기일이 지나도 돌아오지 아니하므로, 나의 사사로운 염려됨은 거기에 사고가 있어서, 자못 억류 되는가 의심됩니다.
다만, 외환만이 이러할 뿐 아니라, 또 한 나라 안에서 일어나는 근심이 이러합니다. 정치와 용형(用刑)이 모두 문란하여져서 풍속은 퇴폐하고, 재화와 양곡이 함께 없어져서, 공사(公私)가 모두 곤궁합니다. 대개, 사람의 하는 일을 바로 닦지 못하여, 재앙의징조가 모이게 만들었습니다. 달과 별이 차례를 잃으니, 그에 대한 상소는 왜 그리 많은지. 우레와 비가 제때를 맞추지 아니하니, 이것 또한 어찌 상서로운 징조가 되겠습니까. 전쟁과 기 아와 질병이 두렵다고 하니, 자나 깨나 근심하고 애쓰는 마음이 어찌 다함이 있겠습니까.
과거의 환란을 돌이켜 생각하고 다시 장래의 어려움을 생각합니다. 다만, 부처님의자비로운 보살핌를 빌어 복조가 연장되고 넓어짐을 얻고자 할 뿐입니다. 생각하건대, 보타락산(補陁洛山 관음세보살이 계신다는 산 이름으로 여기서는 낙산사에 관세음보살이 있었는데, 그 온화한 모습이 일찍이 들불[野火]로 말미암아 불전(佛殿)과 함께 불타더니, 이제 새로운 건물이 다시 바위 벼랑에 솟아올랐습니다. 담장도 이미 갖추어졌으니, 문득 기교 있는 장인(匠人)을 구하여 높은 얼굴을 그릴 것을 꾀하였습니다.
마땅히, 훌륭한 공사가 끝난 것을 고유하고, 낙성(落成)의 장엄한 의식을 경계하여 말씀드리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보배로운 굴(崛)에 돌아가매, 한 조각구름도 오고 감을 가리지 아니하고, 그림자 맑은 못에 가득하노니, 한 덩이의 달이 어찌 옛날과 지금이 다르겠습니까. 이에 궁궐 안의 높은 집을 청소하고, 특히 선종의 깨달은 무리를 맞아다가 혹은 대비보살(大悲菩薩)의 착한 이름을 부르기도 하고, 혹은 바로 선종을 가리키어 막힘없이 강연(講演)하기 도 합니다.
북을 치니, 시방세계[十方世界]에 항상 막힘없는 참된 들음이 원만하게 통하고, 한 곳에서 영(鈴)을 울리니, 빈손으로 범(犯)할 수 없는 묘희(妙戲 불가사의한 유희)를 연출합 니다. 정순(精純)하게 재계하고 성의를 피력하니, 지혜로운 비춤[慧照]이 머리에 와 닿습니다. 엎드려 원하건대 하늘의 요사한 기운과 땅의 괴이한 변고는 흩어져 사라져서조종(祖宗)의 왕업과 국가의 기초가 유구하게 되고, 이웃 나라의 우호는 더욱 굳어져서다시는 변경의 경거망동이 없게 되며, 나이를 쌓음은 더욱 장구(長久)하고, 또한 왕비의 안녕과 길함을 이루며, 동반(東班)ㆍ서반(西班)의 장수와 재상들은 화합하고, 국내ㆍ국외의 간악한 무리들은 무너져 잔멸(殘滅)되며, 삼광(三光)은 운행을 순조롭게 하고 7난(七難)은 조짐(兆朕)을 꺾어 버리게 하소서.
그러한 뒤에 신기(神器 임금의 자리)가 가득하게 이루도록 잘 보우하시고, 항상 불법을 옹호하는 데 전일(專一)하게 하소서.
洛山觀音慶讚䟽
無盡眼無盡臂. 塵塵刹刹之現機. 不住想不住空. 物物頭頭之垂應. 繪塑瞻依之苟切. 聲形感激之 難思. 伏念爲君何樂. 處己克艱. 萬姓多愆. 當使誰 而任責. 群僚有過. 盖是朕之無良. 陰陽寒暑. 天之 經也. 民或怨予. 水旱豐荒. 歲之數也. 俗皆謗我. 况今弟子. 乘累紀亂離之後. 掇三韓萎悴之餘. 沙漠 非入夢暫遊. 再勞跋涉. 干戈是聞名亦怖. 幾見擾 侵. 今雖蒙上 國之加憐. 尙未副前時之禀勑. 上天 之陰霽. 須臾或變. 世間之愛憎. 旦暮安知. 噫我使 軺去矣. 踰時而未返. 故於私慮. 疑其有故以頗淹. 非唯外患之如斯. 抑此內虞之迺爾. 政刑皆 紊而風俗頹圮. 財穀並殫而公私困窮. 盖緣人事之不 修. 而致咎徵之斯集. 月星失次. 何其多上以封章. 雷雨非時. 此亦豈爲之瑞兆. 謂兵飢疾疫之可畏. 而寤寢憂勞之曷戡. 追思旣往 之焚窠. 更念將來 之茹鯁. 但借慈悲之攝護. 獲臻祉祚之延洪. 惟補 陁洛山. 有觀世音聖睟儀. 甞從於野火. 殿宇幷燒. 新構復湧於嵓崖. 垣墻旣備. 輒求巧匠. 謀就尊容. 屬當告畢於勝功. 規說落成之熏範. 心歸寶崛. 孤 雲不㝵於去來. 影滿淸潭. 一月何殊於今古. 爰掃 禁圍之高閣. 特邀禪社之悟流. 或大悲聖號之呼號. 或直指心宗之演暢. 十方擊鼓. 圓通常無㝵之 眞聞. 一處弄鈴. 空手也不干之妙戲. 精熏瀝懇. 慧 照當頭. 伏願天妖地恠之散消. 祖業邦基之悠久. 隣歡愈固. 更無邊境之聳驚. 儲筭尤長. 亦致宮闈 之寧吉. 東西將相之和協. 內 外姦究편001之潰殘. 三光 順躔. 七難摧朕. 然后克保盈成於神器. 恒專擁護 於法輪.
『東文選』卷之一百十, 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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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김구(1211 희종7-1278,충렬왕 4) 본관은 부령(扶寜). 초명은 백일(百鎰), 자는 차산(次山), 호는 지포(止浦). 고종 때 문과에 급제한 뒤 저원부사록, 제주판관 등을 지냈다. 원종 때 예부시랑이 되어 원나라에 관한 여러 문서를 맡아보았으며, 서장관으로 원나라에 다녀와서 『북정록』을 남겼다. 그 후 우간의대부·추밀원부사·정당문학(政堂文學)·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 등을 거쳐 1274년 충렬왕이 즉위한 이후 지첨의부사·참문학사(參文學士)·판판도사사(判版圖司事) 등을 지냈다. 옛 사람의 명문을 본떠서 말을 다듬는 것을 거부하고 거칠더라도 현실을 생생하게 읊었다. 고려가 원나라에 복속된 다음에 사신으로 임명받아 가는 길에 지은 시는 대몽항쟁의 문학으로 손꼽힌다. 특히 평안북도 철주를 지나며 몽고군에 대항한 이원정의 충정을 읊은 〈과철주 過鐵州〉가 대표적이다. 이규보가 죽으면서 자기의 뒤를 이을 사람으로 최자(崔滋)와 함께 추천했다. 저서로는 『지포집』이 있고, 시호는 문정(文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