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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산사 시문

    변계량

    페이지 정보

    조회 412회

    본문

     

    ○ 낙산 행 소재 법석 소(洛山寺行消災法席疏)       춘정(春亭) 변계량(卞季良) 72) 


    거룩합니다. 부처님께서 나라를 보호하는 자비(慈悲)가 어찌 다함이 있으리오. 소자가재앙을 만나 두려워서 어찌 할 줄을 모르나이다. 이에 간절히 귀의(歸依)하와 큰 이익을 받기를 바랍니다.

    생각하옵건대 이 조그마한 몸이 외람되게 큰 자리를 차지하였습니다. 비록 윗자리에있어 능히 밝지는 못하오나 그래도 임금의 업무가 쉽지 않은 줄은 압니다. 사냥이나 놀이를 줄이고 음악이나 여색의 즐김을 조심하며, 두려운 것은 백성이니 썩은 줄로 말을다루 듯하고, 임금의 자리를 편안히 여김이 없이 깊은 연못에 임한 듯합니다. 그래도 혹 정치의 잘못됨이 있었을 것이며, 형벌의 지나침이 없었겠습니까.

    이를 상제(上帝)께서 검열하시매 마땅히 하늘의 꾸지람이 많습니다. 비가 많이 와 산이 무너져서 호구(戶口)의 손실을 가져 왔고, 폭풍이 불어 나무를 뽑아서 곡식의 피해도 많았습니다. 불상(佛像)에 땀 흐르는 비상한 일이 있었으며 금성(金星)이 낮에 나타났습니다. 괴변이 거듭 이르니, 근심이 이에 청정한 곳을 가려서 재앙 없애는 기 도의 자리를 베푸나이다. 자비하신 법신(法身)은 30가지의 묘한 상(相)을 갖추셨고, 길상(吉祥)의 신비한 주문(呪)은 8만 가지의 재앙을 녹인다 합니다. 환란이 나기 전에 막자면, 오직 가피(加被)에 의지할 뿐이옵니다.

    엎드려 원하옵건대, 주시(周詩)의 순수한 복을 받아서, 더욱 수하며 어질어지고 기범 (箕範)의 나쁜 징조는 없어져 길이 편안하여서, 백성이 안락하고 물질이 풍부하고 병란이 끝나고 시절이 태평합니다.



    洛山寺行消災法席䟽 

    偉覺皇護國之慈. 曷有其極. 余小子遇災而懼. 罔知所爲. 玆切依歸. 兾蒙饒益. 念惟眇質. 叨據丕基. 雖未能居上克明. 亦少知爲君不易. 庶省遊畋之  樂. 思戒聲色之娛. 可畏非民. 凜如御以朽索. 無安  厥位. 恒若臨於深淵. 然有敷政之失宜. 豈無播刑  之或濫. 斯乃帝心之簡. 寔宜天譴之多. 積雨山崩.   以致戶口之損. 暴風木拔. 而多禾稼之傷. 且佛汗  之非常. 又金 星之現晝. 變異荐至. 虞憂實深. 故當  食而忘飧. 或已卧而復起. 爰擇淸淨之地. 式陳禬  禳之筵. 慈悲法身. 實爲三十妙相. 吉祥神呪. 能消  八萬種災. 庶防患於未然. 惟仰憑於加彼. 伏願茂擁周詩之純嘏. 俾壽而臧. 悉蠲箕範之咎徵. 其寧  惟永. 民安物阜. 兵戢時康.


    『東文選』卷之一百十三, 疏




    ○ 동창(東窓)과 천마산(天摩山) 낙산사(洛山寺)에 노닐기로 약속하며       춘정(春亭) 변계량(卞季良)


    눈 녹아도 동풍이 쉴새없이 불어 대니 雪盡東風吹不休

    천마산 산빛이 흐르는 것 같구나 天摩山色望如流

    어찌하면 그대와 종소리를 따라가 何當共聽山鍾去

    뭇 봉우리 유람하고 사루에도 올라가지 遊了諸峯又寺樓


    『春亭集』




    ○ 관음굴(觀音窟)       춘정집(春亭) 변계량(卞季良) 


    성거산 동쪽이자 천마산 서쪽에 聖居山東天磨西

    위치한 관음굴이 한적하고 깨끗하지 觀音之窟幽且淸

    박연에서 쏟아진 물은 무지개를 토해 내고 朴淵水下垂玉虹

    의상대는 저 멀리 창공에 솟아 있네 倚祥臺逈干靑冥

    두 개의 석불은 그야말로 진상이고 兩箇石佛是眞象

    백발의 노승은 속세의 정 없다네 白頭老僧非世情

    평생 유람한 적 일찍이 없었으니 生平遊歷未曾有

    벽을 쓸고 성명을 써 보고 싶었다네 殷勤掃壁題姓名


    『春亭集』




    ○ 관음굴(觀音窟)에서 노닐며       춘정집 (春亭) 변계량(卞季良)


    나무꾼 따라서 산 속으로 들어가니 獨隨樵者入山門 

    양쪽 언덕 솔 사이로 오솔길이 나 있었지 夾岸疎松路自分

    몇 조각 채색기는 석양빛에 찬란하고 幾片彩幡明夕照

    묏부리의 풍경은 가을 구름 가리었네 一峯寒磬隔秋雲 

    밤 연못에 하얀 기는 용이 살기 때문이고 夜潭白氣龍曾蟄

    솔 달에 맑은 소린 출중한 학 때문이지 松月淸音鶴不群

    송도를 돌아보니 십 리도 안 되는데 回望京都無十里 

    수레가 남북으로 시끄럽게 왕래하네 輪蹄南北正紛紜


    『春亭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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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 변계량(1369,공민왕18∼1430,세종12)의 본관은 밀양(密陽)이고 자는 거경(巨卿), 호는 춘정(春亭)이다. 이색 (李穡)·권근(權近)의 문인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네 살에 고시의 대구를 외우고 여섯 살에 글을 지었다.

    1382년(우왕8) 진사시에 급제하고, 이듬해 생원시에도 급제하였으며, 1420년(세종 2) 집현전이 설치된 뒤 대제학이 되었고, 1426년에 우군도총제부판사(右軍都摠制府判事)가 되었다. 특히 문장에 뛰어나 거의 20년간 대제학을 맡아 외교문서를 작성하였다. 그러나 대제학으로서 귀신과 부처를 섬겨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하여 주위로부터 ‘살기를 탐내고, 죽기를 두려워 한 사람’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거창의 병암서원(屛巖 書院)에 제향 되었고,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저서로는 ≷춘정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