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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산사 시문

    성현

    페이지 정보

    조회 415회

    본문

     

    ○ 낙산사(洛山寺)       허백당(虛白堂) 성현(成俔) 77)  

     

    오봉산 숲은 들쭉날쭉 하 무성도 하여라              五峯林麓鬱參差

    높은 나무 그늘 침침해 바닷가가 어둑하네              雲樹沈沈暗海湄

    절집은 갑자기청정한 경계에 나타났고               紺宇忽開淸淨界 

    백호 78) 의 광명은 대자비 얼굴을 둘러쌌구나             白毫光繞大慈悲

    고기잡이 금지된 백성은 살길이 막막하고               禁魚民戶無生理 

    노정 바뀐 역부들은 멀리 달리기 괴로운데              移路郵夫苦遠馳




    ○ 양양에서 승려 계열을 만나 그의 시권의 운에 차하다 2수 (襄陽逢僧戒說次其詩卷韻 二首.)    허백당(虛白堂) 성현(成俔) 


    진여의 불변의 법성을 환히 깨달아                 眞如了法性 

    혜검이 멀끔한 빛을 발휘하누나                  慧劍發光新 

    달은 천 시내의 물에 도장을 찍고                  月印千溪水

    꽃은 만상의 봄을 담아 간직하였네                 花涵萬象春

    본심이 마치 수경처럼 맑거니                    本心如水鏡

    그 어디서 번뇌가 생겨나리오                    何處惹埃塵

    버들개지가 진흙에 붙은 지 오래라                柳絮粘泥久 

    담담하여 무사무려한 사람이로다                  澹然無慮人


    머무름 없음이 바로 참 머무름이라                 無住是眞住 

    산비탈에 새로운 흥미가 발하누나                  巖崖發興新 

    장은 금강산 길에서 날리었고                   錫飛 靼路

    짚신은 낙가산의 봄을 밟아 오네                  鞋踏洛伽春

    구름 낀 골짝엔 맑은 바람이 일고                  雲壑生靈籟

    흐르는 계곡엔 티끌 한 점 없어라                  溪流絶點塵

    홀로 거닐고 또 홀로 깨고 하노니                 獨行仍獨寤

    오직 속인이나 만나지 않았으면                  唯願不逢人


    『虛白堂集』




    ○ 낙산사(洛山寺)         허백당 (虛白堂) 성현(成俔)


    오봉산 숲은 들쭉날쭉 하 무성도 하여라           五峯林麓鬱參差

    높은 나무 그늘 침침해 바닷가가 어둑하네          雲樹沈沈暗海湄

    절집은 갑자기청정한 경계에 나타났고            紺宇忽開淸淨界 

    백호의 광명은 대자비 얼굴을 둘러쌌구나           白毫光繞大慈悲

    고기잡이 금지된 백성은 살길이 막막하고           禁魚民戶無生理 

    노정 바뀐 역부들은 멀리 달리기 괴로운데          移路郵夫苦遠馳 

    그나마 산나물이랑 차와 과실이 있기에            惟有山蔬與茶果

    향긋하고 단 맛이 굶주림을 달랠 만하네           芳甘亦可慰窮飢


    『虛白堂集』




    ○ 낙산사제영(洛山寺題詠)        용재(慵齋) 성현(成俔)


    오봉 숲 기슭 모두 울창하여 五峰林麓鬱泰差

    구름에 걸린 나무 침침하고 바다는 어둡네 雲樹沉沈暗海湄

    감우(낙산사)에 홀연히 청정세계 열리고 純宇忽開淸淨界

    부처님 미간에 나는 빛 대자비로 감쌌네 白毫光繞大慈悲 

    고기잡이 금하니 백성들 살길 없고 禁漁民戶無生理 

    길가는 역졸은 먼 길 달리기고달프다 移路鄭大苦遠馳 

    애오라지 산나물과 다과(茶菓) 있으면 惟有山蔬與茶果

    향기롭게 달게 여겨 배고픔 잊으리라 芳日亦可慰窮飢


    『江原道誌』




    ○낙산사의 스님 해초(海超)가 우리 문중에 출입한 지가 오래되었는데 하루는 부처에게 공양할 것을 요구하니 유본(有本)이 방에 있다가 말하기를

    洛山寺僧海超 出入吾門己久 一日來求供佛之具 有本在房曰        용재(慵齋) 성현(成俔)


    높은 집 용마루에 高架棟宇

    단청을 칠하고 塗以丹雘

    나무에 진흙을 칠하여 부처 만들었네 塑泥木爲像 

    밤낮으로 정성을 다하여 공궤하여서 晝夜虔誠而飼之 

    무슨 이익이 있을까 有何利益


    하니 스님이 즉석에서 대답하기를 僧卽應聲答曰


    높은 집 용마루에 高架棟宇

    단청을 칠하고 塗以丹雘

    밤나무를 깎아 신주를 만들고 斲栗木爲主 

    사철 중월(仲月)에 四仲之月 정성을 다하여 공궤한들 虔誠以飼之 

    무슨 이익이 있는고 有何利益

    하여 유본은 대답하지 못 하였다 有本不能對


    『慵齋叢話』 卷之六




    ○양양에서 남쪽으로 수 리 떨어진 길가에 돌이 서 있는데 항간에서 전하기를 옛날에 한 암행어사(安廉)가 주지(州妓)를 몹시 사랑하다가 이별하게 되자 시를 지어 돌에 제하기를 [襄陽南數里. 有潟立路旁. 諺傳. 昔一按廉酷愛州妓. 臨遞別妓. 作詩題于石 曰.] 

    용재(慵齋) 성현(成俔)


    너 돌은 어느 때 돌이뇨 汝石何時石

    나는 금세의 사람이로다 吾人今世人 

    이별의 괴로움도 모르고 홀로 서서 不知難別苦

    몇 번이나 봄을 지내었던가 獨立幾經春

    하는데 어떤 사람이 함부림(咸傅霖)이 지은 것이라고도 말한다[或云咸傅霖所作]


    『慵齋叢話』 卷之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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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7) 성현(1439,세종21~1504,연산군 10)의 본관은 창녕(昌寧)이고 자는 경숙(磬叔), 호는 허백당(虛白堂), 용재(慵齋), 부휴자(浮休子), 국오(菊塢)이다. 1462년(세조 8) 식년문과에, 1466년 발영시(拔英試)에 각각 3등으로 급제하여 박사가 된 뒤 홍문관정자를 거쳐 사록(司錄)이 되었다. 1485년 첨지중추부사로 천추사(千秋使)가되어 명나라에 다녀온 뒤 대사성·대사간·동부승지·형조참판·강원도관찰사 등을 지냈다. 1488년 평안도관찰 사로 있을 때 동지중추부사로 사은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온 뒤 대사헌을 거쳐 1493년 경상도관찰사가 되었다.

    연산군 즉위 후 한성부판윤을 거쳐 공조판서가 된 뒤 대제학을 겸했다. 62세 때는 홍문관과 예문관 양관의 대제학에 올라 이 시기의 문풍을 실질적으로 주도했다. 그의 시론의 특징은 이규보와 서거정의 기론(氣 論)을 계승·발전시키는 한편 다양한 미의식의 구현을 주장한 점이다. 또한 사회적 효용을 중시하는 각도에서 정치적 득실에 대한 풍간(諷諫)의 작용을 강조했는데 이것은 그의 애민시(愛民詩) 계열 작품의 이론적 토대를 이루었다. 그의 작품세계는 매우 다양하다.

    『慵齋叢話』를 저술했으며, 장악원의 의궤(儀軌)와 악보를 정리한 『樂學軌範』을 유자광 등과 함께 편찬했다. 문집으로 『虛白堂集』이 전한다. 죽은 뒤 수개월 만에 갑자사화가 일어나 부관참시 당했으나, 뒤에 신원(伸寃)되었고 청백리로 뽑혔다. 시호는 문재(文載)이다.

    성현은 강원도관찰사와 대제학을 지냈고, 조선조 文風을 주도 하였다. 강원도 관찰사로 낙산사를 찾아 오봉산은 숲으로 우거져 울창하지만 구름에 걸린 나무는 침침하고 바다는 어둡다는 표현에서 작품의 내용을 예견할 수 있다. 낙산사는 청정의 세계가 열려 부처님의 자비로 감싸고 있다. 하지만  이곳에 고기잡이를 금하여 백성들이 살아가기 어렵고, 역졸들도 멀길 달리기에 고달픔을 몸소 체험하게 된다. 자신도 오로지 산나물과 다과만 있어도 즐겁게 먹고 배고픔을 잊을 수 있다는 처참한 생활상을 표현하였다.

    78) 백호(白毫): 백호는 부처의 삼십이상(三十二相) 가운데 하나로, 부처의 두 눈썹 사이에 있는 희고 빛나는 가는 터럭을 말하는데, 깨끗하고 부드러우며 오른쪽으로 말린 데서 끊임없이 광명을 발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