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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산사 시문

    심언광

    페이지 정보

    조회 399회

    본문

     

    낙산사에서 저절로 흥이 나서 성사에게 지어주며[洛山漫興贈成師]      어촌(漁村) 심언광(沈彦光) 89)


    밝은 해가 새벽 바다 위에 솟아오르니 白日曉生海

    붉은 아침 노을은 산을 비추네 丹霞朝映山

    창문 열어 해를 맞이하니 開窓迓羲馭

    홀연히 구름이 높이 떠 있네 忽在重雲端 

    햇살이 구름 틈으로 들어오니 外物幸投隙

    밝은 햇살 낙산사를 비추네 光明猶一圓 

    옛 벗을 정중히 맞아주니 寅賓古蘭若

    바다는 푸르름으로 넘처 흐르네 海色靑漫漫

    성사(成師)께서 이 해를 보시고 師乎觀此日 

    영원히 내 마음을 보게 해 주시네 永作吾心看


    『漁村集』




    ○ 섬대사에게 주며[贈蟾上人]      어촌(漁村) 심언광(沈彦光)


    내 스승을 뵈지 못하니 我不見師面

    오히려 스스로 스승의 마음 알겠구나 猶自知師心 

    푸르른 오봉의 길 蒼蒼五峰路

    송라 그늘에서 수행하시네 住錫松蘿陰

    내려봐도 쳐다봐도 길은 있는데 俯仰道有在

    산과 바다는 높고 또 깊네 山海高且深 

    인연 따라 내 시를 지으니 隨緣索我詩 

    먼 곳에서 알아주는 사람 있네 方外猶知音

    세상 생각 끝나지 않아 塵機若未息

    꿈 깨어 산중에서 찾네 夢寤山中尋


    『漁村集』




    ○차운하여 오대사에게 주며[次韻贈悟上人]      어촌(漁村) 심언광(沈彦光)


    분명히 책 속에 풍류와 운치 논하며 分明風韻卷中論

    온 세상 유명인사들이 모두 한 말씀 올렸네 一世名公盡贈言 

    백발노인 멀리서 반가이 맞아주시니 白首天涯靑眼日

    스승은 가셨어도 내 마음에 남아 있네 眉師雖去悟師存 

    낙산사에서 즐거운 꿈속에서 즐거움을 헤아리니 洛山奇遊夢裏論

    흔한 잠꼬대는 공허한 말 뿐이네 尋常啽囈但空言

    차가운 늦가을 산길에 임금의 사절 머무니 窮秋駐節山前路 

    한나절 천천히 돌아도 마음만 남아있네 半日遲回意有存


    『漁村集』




    ○ 차운하여 은대사에게 주며[次韻贈訔上人]      어촌(漁村) 심언광(沈彦光)


    낙산의 명산에 말씀 올린 때 洛迦名山贈言時 

    시에는 아무것도 없음을 잊지 말라는 뜻이었네 意在無忘不在詩

    높은 산은 성과 같고 소나무는 덮개 같고 靑嶂似城松似蓋

    하늘은 물과 같고 달은 눈썹 같네 碧天如水月如眉

    속세의 땅에 살아가기 쉽지 않으니 塵中壤地艱棲息 

    속세 밖에서 강산 지키며 몸을 부지하세 物外江山足護持

    선비 된 몸 잘못을 스스로 비웃으니 自笑爲儒身常誤 

    차라리 옛 회포를 훌훌 털어버려야지 寧能抖擻灸襟期


    『漁村集』




    ○ 앞서 읊은 태평루를 차운하며[太平樓次前韻]. 

    이 시는 관찰사 때 지은 것으로 부사 이영식이 무진년에 누각에 다시 걸었다[此詩觀察使時作府使李榮埴戊辰重揭樓上] 

    어촌(漁村) 심언광(沈彦光)


    태평루 남은 비석에서 옛 현인 찾으니 峴首殘碑問古賢

    외로운 성에 지는 해가 난간을 비치네 孤城殘日獨憑軒

    강산에 금절(金節) 머물 곳 있어도 江山有地留金節 

    비단 돗자리에 술 따르는 벗 없네 樽酒無人伴綺筵

    백발을 근심할 때 눈처럼 희어지고 髮爲憂時添雪白

    얼굴에 병으로 고운 얼굴 사라졌네 顔因觸瘴減春姸 

    해당화가 곳곳에서 서로 곱다 자랑하니 棠陰處處爭相說

    예부터 붉은 연꽃은 장막 아래 신선이구나 舊是紅蓮幕下仙


    『漁村集』




    ○ 낙산사 스님에게 주며[贈洛山僧]      어촌(漁村) 심언광(沈彦光)


    구름이 깃든 곳에 마음 끌리는 것이 마무 것도 없네 雲棲無物了關情 

    내 근심이 어느 스님 영혼을 훼손할까 憂惱何僧損性靈

    이 몸속에는 어릴 적 습관 남아 있어 有底此身嬰俗累 

    덧없는 인생 한 해에 다섯 번 운다오 一年長哭五浮生


    『漁村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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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9) 심언광(1487,성종18∼1540,중종35)의 본관은 삼척(三陟)이고 자는 사형(士형), 호는 어촌(漁村)이다. 예조좌랑 준(濬)의 아들이며, 찬성 언경(彦慶)의 동생이다. 1507년(중종2) 진사시에 합격하고, 이어서 1513년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 예문관검열에 보임되었다.

    호당(湖堂)에 들어가 사가독서하면서 문명을 날려, 지평·정언·장령·홍문관교리·집의 등을 지냈다. 언관을 역임하면서 국방문제의 중요성을 제기하였고, 국가기강의 확립을 위하여 심정(沈貞)을 비롯한 권간들의횡포를 탄핵하였다. 1530년 대사간이 되어서는 형 언경과 함께 김안로 (金安老)의 등용을 적극 주장하였다. 그러나 김안로가 조정에서 실권을 장악하면서 붕당을 조직하고 대옥(大獄)을 일으켜 사림들을 모해하자, 비로소 후회하게 된다. 특히 김안로가 그의 외손녀를 동궁비로 삼으려 하자 이를 질책하자, 관계가 악화되었다.

    1536년 이조판서가 되고, 이어서 공조판서를 역임하면서 김안로의 비행을 비판하자 김안로의 미움을 받아 이듬해 함경도관찰사로 좌천되었다. 그러나 곧 김안로와 그 일당이 축출되자, 우참찬에 올랐다. 시(詩)· 서(書)·화(畵)에 능하였다. 시호는 문공(文恭)이고 문집으로는 어촌집이 있다. 이 작품들은 『동관록』(東關錄)에 수록되어 있다. 동관록은 1530년 강원도 관찰사 재임기간의 작품들이다.

    심언광이 강원도관찰사로서 공무로 낙산사에 도착하여 절로 흥이나 성사에게 지어준 시로 보인다. 일출의 풍경을 한 폭의 그림처럼 묘사하고 있다. 새벽녘 아침 해가 바다 위로 솟아오르자 붉은노을이 산을 비춘다. 이에 창을 열고 해를 맞이하니 홀연히 구름이 높이 떠 있어 햇살이 구름 틈으로 밝은 햇살이 비춘다.

    아침 해가 옛벗을 반갑고 정중하게 맞아주는데 바다는 푸르름으로 넘쳐흐르며 반겨준다. 성사께서 이 해를 보시고 영원히 내 마음을 보게 주어 고맙다는 심회를 노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