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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양문화35호

    4월 - 두 장의 독립선언서가 일으킨 양양만세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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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삼일만세운동에서 유림은 큰 역할을 하지 못했지만 양양만세운동은 유림이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

    이석범은 대한제국 중추원 의관(議官)을 지내다 일제강점 후 낙향한 유림으로 1919년 고종의 장례에 참여하기 위해 상경한다. 성별 신분에 관계없이 전 시민이 만세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보며 고향에 가서 만세 부를 결심을 하고 독립선언서 한 장을 구해 돌아온다. 전에 그는 동학군을 진압할 정도로 왕권중심 신분제를 고수하던 수구성향의 인물이었으나 만세운동의 동지로 민중들을 규합한다.

    다른 한 장은 유학을 떠났던 여학생 조화벽이 전한다. 조화벽은 양양감리교회의 전도인이었던 조영순의 무남독녀로 16세에 원산을 거쳐 개성의 호수돈여학교로 옮겨 공부한다. 개성만세운동 시 호수돈여고 비밀결사요원으로 활약하는데 휴교령이 내리자 버선목에 독립선언서를 감추고 원산으로 가 배를 타고 대포항을 통해 고향으로 온다. 이 독립선언서가 양양감리교회 김영학 목사에게 전해지고 조화벽 부녀와 청년부가 중심이 되어 거사를 준비한다.



    만세운동으로 하나가 된 양양사람들


    만세운동으로 하나가 된 양양사람들을 합치게 된다. 동학운동의 후예와 동학을 탄압했던 이들이 하나가 되고 유림과 신문화 세력이 융화되며 유교와 기독교가 하나의 용광로에서 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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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홍기·권병연 열사 옛 추모비

     


    일본경찰을 궁지에 몰았던 양양인의 기개


    4월 4일을 디데이로 잡고 준비하던 중 거사 하루 전에 발각되어 이석범 등 주모자들이 잡혀가지만 탄탄한 조직 덕에 착오 없이 진행된다.

    양양장날인 4월 4일, 만세꾼들이 태극기를 앞세우고 싸전으로 향했다. 오일장이 폐쇄된 줄 모르고 장에 온 사람들도 시위에 합세한 가운데 김영학 목사는 강점의 부당함과 독립의 정당성을 연설한다.

    수천 명의 시위대가 경찰서로 달려가 잡아간 이석범 등을 석방하라고 요구한다. 요구가 관철되지 않자 함홍기와 권병연 등이 거칠게 항의하다가 왜경의 칼에 베여 죽임을 당한다.

    잡혀간 이석범의 동생 이국범과 아들 이재훈은 4월 5일 물치장날 주민들을 인솔하여 대포리 경찰주재소로 몰려갔는데 시위대의 기세에 눌린 경찰은 무대책이었고 일본 민간인들은 배를 타고 바다로 도망가기에 이른다.

    4월 6일, 김학구의 장례행렬이 서면사무소를 습격하는 등 시위가 확대되자 왜경서장은“물러갈 테니 조용히 만세만 부르고 해산하라”고 애걸한다.

    하지만 6일간이나 지속되었던 양양만세운동도 증강된 일제의 총칼 앞에 막을 내리고 만다. 연인원 15,000여명이 참여하고 12명이 순국하고 73명이 투옥되었으며 78명이 중상을 입었고 1,230명이 태형을 당했다.



    유관순의 올케, 조화벽 지사를 아시나요


    운동 후 조화벽은 체포망을 피해 객지를 떠돌다 개성으로 돌아가 학업을 마치고 공주에서 교편을 잡는다. 이때 아우내만세운동에서 부모를 잃은 유관순의 두 남동생을 보살피고 오빠 유우석의 옥바라지도 하였는데 네 살 아래인 항일반공주의자이자 아나키스트 유우석의 청혼에 응하게 된다.

    결혼 후 개성과 원산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기독청년회 등 사회활동을 하다가 남편이 해외로 망명하자 양양으로 돌아와 정명학원을 운영,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배움을 기회를 준다.

    해방 후 양양에 공산정권이 들어서자 남편을 따라 서울로 이주하는데 이때부터 조화벽은 서서히 양양에서 잊힌다. 남편과 세 아들을 잃고 살던 그녀는 1975년 서거하였는데 1990년 큰며느리 김정애의 노력으로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다. 조화벽의 애국애향활동이 알려지면서 우리가 그녀 곁으로 조금 다가갔다. 유관순만큼 조화벽을 추모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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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화벽 지사 가족 (출처:국립여성사전시관)

    (뒤) 왼쪽부터 류제충, 조카 제한, 김정애

    (앞) 왼쪽부터 손자 덕상, 조화벽 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