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사이트 내 전체검색
전체검색 닫기
양양문화원
HOME 문화원소식
  • 자료실
  • 양양문화35호
  • 자료실

    정명 6백년 미래를 잇는 양양문화원

    양양문화35호

    7월 - 양양의용소방대 역사적 변천

    페이지 정보

    조회 288회

    본문


    양양의용소방대가 금년으로 설립 71주년을 맞는다. 양양의용소방대는 한국전쟁 중에 창설되어 상당기간 민간주도로 지역의 소방방재 임무를 수행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하겠다.오늘날 의용소방대(義勇消防隊)의 효시(嚆矢)는 세종19년(1437)에 세워진‘지방의용금화조직(地方

    義勇禁火組織)’이다. 충청·경상감사의 주청으로 각 고을의 도적 방지와 화재 예방 등 마을의 방재(防災)를 위해 자율적으로 활동을 하던 조직인데 무기 소지와 사용이 허락되었다 한다.

     

    056_02.jpg

    완용펌프 위력시험 (양양시장부근. 1935,9,16일 조선신문기사)

     

    일제강점기인 1915년 8월 조선총독부는 도지사가 소방업무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 소방조(消防組)를 구성할 수 있게 하였다. 일제가 1937년「방공법조선시행령」을 제정하고 1939년「경방단규칙」을 공포하면서 소방조를 해체하여 경방단(警防團)으로 통합하였다가 일제가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하자 경방단이 자동으로 해체되었다.양양소방조가 1928년 1월 15일 50여명으로 출초식(出初式)을 가진데 이어 리희조외 4명의 조원에게 공로표창을 수여했다는 부산일보 기사로 미루어 보아 양양군의 소방역사는 이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광복 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소방대는 소방업무와 전후 복구사업 등 정부 시책에 협조하였으나, 1953년 민병대(民兵隊)를 조직하게 됨으로써 해산되어 일시적으로 민간 자체 소방조직이 없어졌다.

     

    057_03.jpg

    양양시장 화재감시탑 (의용소방대 첫 번째 청사. 현 남문 5길-15. 제일육고점)

     

     

    057_04.jpg

    한해(旱害)에 동원된 학생들이 완용펌프 사용을 체험하며 논에 물을 대고 있다.

     

    6·25 이후 화재가 빈번하게 발생하자 의용소방대의 필요성이 재인식되어 1954년 1월 전국적으로 의용소방대를 재조직하기에 이르렀으며, 1958년 소방법 제정 시 의용소방대 설치근거를 마련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 군은 수복지역 자치행정의 일환으로 타 지역에 앞서 1952년 1월 30일 의용소방대를 결성하고 제1대 박태송 대장을 위시한 50여명의 대원으로 창설하여 재난현장에서 필요한 시설과 장비를 갖추고 화재 등 위급한 상황이 발생 시 화재진압과 구조, 구급, 화재예방 홍보활동을 실행하였다.

    양양군의용소방대연합회 여대(女隊)는 1989년 5월 11일 발족하여 34년 간 화재진압은 물론 구조와 구급, 식량과 급수 등 지원활동을 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까지 양양은 소방관서가 없었기에 의용소방대의 역할이 매우 크고 중요하였는데 산불 등 재난현장에는 언제나 이들이 제일 먼저 출동하였다.

    1980년 5월 9일 설악산 관모봉 일대에서 산불이 났을 때 의용소방대원들이 10여 일 동안 지속적으로 현장에 투입되었고 2일간 밤샘근무를 하였다. 2005년 4월4일 발생한 대형화재로 천년고찰인 낙산사에 위기가 닥칠 때에도 이들이 사투를 벌인 바 있다.

    1994년 5월 10일 속초소방서 양양소방파출소가 신설된 바 있고 2016년 5월 10일 양양소방서가 생기면서 우리의 소방조직은 더욱 완벽한 민관지휘협조체계를 구축하게 되었다.

    현 양양의용소방대 대원은 2022년 기준 6개 지대에 379명(남 239, 여 140)이다. 이들은 법에서 정한 소방업무는 물론 각종 봉사활동으로 지역사회에 커다란 기여를 하고 있다.

     

    058_02.jpg

    양양의용소방대 2번째 청사 (현 남문6길-5 / 100-10번지)

     

     

    058_03.jpg

    양양의용소방대 3번째 청사 (구 등기소 옆 주차장 현 성내리 7-4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