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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 6백년 미래를 잇는 양양문화원

    동해신묘의 정체성과 복원에 대한 학술대회

    다. 남악사(南岳祠)

    페이지 정보

    조회 621회

    본문

    (1) 개요 

    ■ 창건시기: 통일신라 추정 

    ■ 현황조성: 2021년 발굴조사

    ■ 위치 : 전라남도 구례군 광의면 온당리산 71-9번지

    지리산 남악사는 화엄사 인근에 있으나 화엄사와 같은 축을 가지고 있지 않고, 지리산 원사봉을 바라보는 북서향을 축을 가지고 있다.

     

    116-3.jpg

     

    <그림 12> 복원된 남악사 전경

     

    116-2.jpg

     

    <그림 13> 남악사 발굴현장 전경

     

     

    (2) 발굴조사 내용과 배치・규모 발굴조사결과 남악사지는 4기의 토층이 존재하 였다. 제일 아래 지표(Ⅳ)는 구지표로 선행축대가 나타났으며, 그 위 지표Ⅲ은 갈색사질점토층으로 함몰석재가 출토되었다. 상위 지표Ⅱ 또한 갈색 사질점토층으로 기와가 다량으로 출토되었고, 최상위 지표Ⅰ은 황갈색사질점토층으로 기와가 소량 출토되었다. 남악사의 층위는 복토로 이루어진 황갈색사질점토층 아래에서 확인되었다. 조사 보고서에서는 퇴적층의 수습된 고려시대 평기와의 출토양상으로 볼 때 남악사 이전의 건물지를 사찰로 추정하고 이 사찰의 폐기에 이은 남악사건축 건립을 추정하였다.

    발굴조사・조사로 확인된 남악사의 배치는 남쪽에 가까운 남동향으로 제단과 보도, 축대, 담당 등이 확인되었다. 제단은 단과 유로 구분하며, 축대 상부에서 방형의 2단 유가 확인되었다.

    최상부 제단은 경적으로 대부분 훼손되었으나, 제단의 규모는 너비가 7.4m로 세종실록에 기록된 중사규모(32.21㎝)와 같다. 축대 위의 2단은 1단이 12.2m, 2단이 9.6m로 구축되어 있다. 제단 서편으로 보도시설이 남쪽으로 뻗어 있다. 제단 북편 임(壬) 방향에 예감시설의 바닥면으로 추정되는 유구가 발견되었다. 이 또한 세종실록에 기록된 바와 같다. 담장은 80㎝폭으로, 제단을 감싸며 동서 방향으로 연결되었으며 서로 평행을 이루었다. 30)

     

     

    (2) 발굴조사 내용과 배치・규모 발굴조사결과 남악사지는 4기의 토층이 존재하 였다. 제일 아래 지표(Ⅳ)는 구지표로 선행축대가 나타났으며, 그 위 지표Ⅲ은 갈색사질점토층으로 함몰석재가 출토되었다. 상위 지표Ⅱ 또한 갈색 사질점토층으로 기와가 다량으로 출토되었고, 최상위 지표Ⅰ은 황갈색사질점토층으로 기와가 소량 출토되었다. 남악사의 층위는 복토로 이루어진 황갈색사질점토층 아래에서 확인되었다. 조사 보고서에서는 퇴적층의 수습된 고려시대 평기와의 출토양상으로 볼 때 남악사 이전의 건물지를 사찰로 추정하고 이 사찰의 폐기에 이은 남악사건축 건립을 추정하였다.

    발굴조사・조사로 확인된 남악사의 배치는 남쪽에 가까운 남동향으로 제단과 보도, 축대, 담당 등이 확인되었다. 제단은 단과 유로 구분하며, 축대 상부에서 방형의 2단 유가 확인되었다.

    최상부 제단은 경적으로 대부분 훼손되었으나, 제단의 규모는 너비가 7.4m로 세종실록에 기록된 중사규모(32.21㎝)와 같다. 축대 위의 2단은 1단이 12.2m, 2단이 9.6m로 구축되어 있다. 제단 서편으로 보도시설이 남쪽으로 뻗어 있다. 제단 북편 임(壬) 방향에 예감시설의 바닥면으로 추정되는 유구가 발견되었다. 이 또한 세종실록에 기록된 바와 같다. 담장은 80㎝폭으로, 제단을 감싸며 동서 방향으로 연결되었으며 서로 평행을 이루었다. 30)

     

     

    <표 20> 남악사 발굴현황 및 제단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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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성지 31) 에서 기술된 남악사 규모는 전우 3칸, 신문 3칸, 객사 5칸, 유생청 3칸, 지응청 3칸, 성생청 3칸, 대문 1칸, 마구 5칸으로 구성되어 총 26칸 8동 규모이다. 발굴결과 남악사는 묘(廟) 혹은 사(祠)의 건축물로 이루어진 단묘건축이 아닌, 단(壇) 건축의 모습으로 추정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항은 제단 상부가 훼철되어 어떠한 시설이 있었는지를 알 수 없는 점과 용성지에서 지리산신사(智異山神祠)의 용어를 사용한 점은 건축물이 존재하였을 가능성을 말해주고 있다. 다만, 추정 제단지 남편의 추가 발굴을 통해 문간채 등 기타 건물의 유무를 조사하여야 한다.

    만약 건물이 존재하였을 가능성을 두고 살펴보면, 7.4M의 제단지는 정면 2칸 내지 3칸 규모의 사당은 충분히 존재할 수 있다. 남해신사도 복원도에 의하면 신당이 7.2M의 정면길이를 가지고 있고 32) , 웅진단 또한 발굴결과 신당은 6.4M~6.7M의 정면길이를 보여주고 있다. 가야진 사의 경우, 발굴결과 1차 건물지는 정면 2칸 규모이지만, 2차 건물지는 3칸 이상의 규모로 추정된다. 현재 온전하게 남아있는 중악단의 경우 8.3M로 규모가 있는 건축을 보여주고 있다.

    추가적으로 살펴볼 문제는 용성지에서 말하고 있는 8동의 건축이 모두 존재하였을 것 인가하는 문제이다. 중악단의 현황과 남해신사의 발굴결과에서 보이고 있는 중문 즉 신문과 양방의방, 대문과 양방의 방 배치는 남악사에도 적용 가능한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문을 가져다준다.

    중악단과 남해신사에서 중문 옆 양편의 방(房)은 제사를 드리기 위한 주변 현감을 비롯한 관계 자가 사용하였던 점은 영성지에 표현된 남악사의 건물 중 헌관과 대축, 그리고 집사가 거하는 객사, 유생청은 중문 즉 신문과 연계하여 중문간채를 이루게 하여 계획할 수 있는 근거를 들수 있다. 그리고 중악단과 남해신사에서 대문 양편의 방이 제사과련 물품과 관련된 방과 창고가 있는 것을 참고하여, 제사에 필요한 물품과 관련이 있는 지응청과 성생청, 마구와 대문을 연계하여 대문간채를 이루어 배치하여 계획한다면 기존의 단묘건축과 개연성 있는 계획을 제안할 수 있다. 다만, 이는 남악사 남편 부속건물지의 발굴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고 유구교란에 의한 건물지 확인이 불가능하였을 때에 고려할 수 있는 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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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구례군・나라문화연구원, 구례 남악사지 발굴조사 약보고서, 2021.5 참

    31) 용성지(龍城誌) : 방두천(房斗天)이 편찬한 연대 미상의 전라도 남원군(지금의 남원시) 읍지 

    32) 남해신사의 복원계획 시 신당 평면규모산정은 기존 남해신사 신당 규모와 배치를 기준(자문회의 결과)으로 하였으며, 중악단을 참고하여 계획하였다. 실제 발굴 규모는 7M×9.4M로 현재 복원된 신당은 발굴결과와 다른 규모로 계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