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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 6백년 미래를 잇는 양양문화원

    동해신묘의 정체성과 복원에 대한 학술대회

    2. 시공세계글쓰기와 반(反) 4차 산업혁명에 따른 동해묘의 활용방법

    페이지 정보

    조회 531회

    본문

    동해신사의 제의는 나라에서 제수(祭需)을 내려 제사하는 중사(中祀)였다. 동서남북 해신사 (海神祠) 가운데 하나로 나라의 태평성대와 풍농과 풍어를 기원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곳 양양에 동해신사가 있었던 것은 고려의 서울 개성에서 볼 때 정동(正東)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10) 그래서 서해신사는 정서(正西)인 황해도 풍천(豐川)에 세워졌고, 남해신사는 정남(正南) 인 전라도 나주(羅州)에 세워졌다. 지금은 그 지역이 영암군 시종면 옥야리 마한문화공원 내로 변했다. 북쪽은 바다가 없어서 두만강신사(豆滿江神祠), 북서편은 압록강신사(鴨綠江神祠)를 모셨다. 11)

    이들 신사는 그동안 연구한 논의를 보면 신라 말 또는 고려 초부터 행해져 왔던 것으로 볼수 있다. 『증보문헌비고』의 남해신사 기록으로 보아 1028년(현종19) 이전에 동해신사를 모셨다고 추정하고 있다. 12) 『양양군지』에서는 991년(성종10)에서 1102년(숙종7) 사이에 건립되었다고 보았다. 중간에 몇 번의 중수와 훼철과 복원이 있었다. 13)

    이들 신은 “고려시대 해신(海神)은 국가수호, 국태민안, 풍농 풍어뿐만 아니라 바다와 비를 관장하는 신으로 모셔졌던 것으로 보인다.” 14) 고 했듯이 그 역할이 넓었다. 이로 보면 동해신을 바탕으로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가 상당히 많을 수 있다.

    또한 이곳에는 관련 설화가 있다. 장정룡에 의하면 <수로부인 해가설화>, <김자락공 용궁설화>, <허균의 동해용왕묘 설화>, <등명사 폐찰 설화>, <동해송 금란>, <구전 동해신묘이야기> 이다. 그리고 허균과 남공철의 비문도 있다. 15) 이들 설화는 동해신사를 현대적 콘텐츠로 활용 하는데 절대적인 자료이다.

    이 자료는 동해신사를 배경으로 그동안 기록된 여러 자료를 압축하여 본 것이다. 이를 바탕 으로 시공세계글쓰기와 반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이론적 틀을 만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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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조선왕조실록』, 세조실록3권, 세조2년 3월 28일 정유 3번째 기사. “ 동해·남해·서해의 신사(神祠)는 모두 개성(開城)을기준하여 정하였기 때문에 또한 방위(方位)가 어긋납니다.”

    11) 양언석, 앞의 논문, 194쪽.

    12) 이기용, 앞의 논문, 9쪽.

    13)『양양군지』, 양양군지편찬위원회, 2010, 1561~2쪽.

    14) 이기용, 앞의 논문, 6쪽.

    15) 장정룡(1996), 앞의 논문, 1~1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