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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양문화34호

    10월 - 관음성지(觀音聖地) 오봉산(五峯山) 낙산사(洛山寺)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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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낙산사(洛山寺)는 신라 의상법사(義相法師)가 671년에 창건한 사찰이다. 금당(金堂)은 원통보전(圓通寶殿)으로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모시고 있다. 이곳은 우리나라 3대 관음도량 중 최고이며 관세음보살이 늘계시는 곳이다. 의상법사가 보살을 친견했던 신비한 관음굴은 지금도 홍련암(紅蓮庵)의 법당 마루에 난 작은 구멍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법사께서 항상 관세음보살의 설법을 듣고 완전한 깨달음을 얻어 중생제도를 소원했던 관음성지(觀音聖地) 낙산사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불멸의 법을 마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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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여도에 표기되어있는 이화정(梨花亭)

     

     

     

    왜“낙산(洛山)”이라 부르게 되었을까?


    낙산(洛山) 이란 지명은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 보타낙가산(寶陀洛伽山)에 사신다하여 이를 줄여서 낙산이라 하였다. 원래 이 산은 서역(인도) 남쪽 해안에 있으며 한자로 번역하면 백화수산(白花樹山)이라고도 한다. 중국도 당나라 때 절강성의 주산군도(舟山群島)에 관세음보살이 거주한다고 믿으면서 이 지역에 있는 두 섬을 보타산과 낙가산이라 부르게 되었고, 오늘날까지 관세음보살께서 머무는 성지로 추앙되고 있다.




    낙산사가 불자들의 최고의 기도처가 된 까닭은?


    관세음보살은 일체중생의 모든 고뇌를 없애주기 위하여 온세계 모든 국토에 나타나며 대상에 따라 32가지로 몸을 바꾸면서 중생을 제도하기 때문에,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도 가피(加被, 혜택)를 받는다. 여러 보살 중 가장 대자대비(大慈大悲)하여 부처님 다음가는 성인으로 꼽힌다. 특히, 관세음보살을 부르기만 해도 즉시 나타나서 꼭 필요로 하는 맞춤형 자비를 베풀어주신다고 알려져서 이루고자 하는 소원이 있는 중생은 낙산 사를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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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여도에 표기되어있는 이화정(梨花亭)

     

     


    낙산사 창건과 설화의 성립은 어느 것이 먼저일까?


    삼국유사“낙산이대성(洛山二大聖)” 편에 의하면 의상법사가 당나라에서 공부하고 돌아왔을 때관세음보살께서 낙산에 머문다는 말을 듣고 이곳에 찾아와 엄숙하게 기도한 지 7일 만에 관세음보살을 직접 뵙고 대나무 한 쌍이 솟은 곳에 낙산사를 창건하게 된다.

    설화에는 관음이 머무는 곳이 ‘낙산’이라서 낙산사를 창건하였으니 낙산이낙산사보다 먼저다. 그러나 이 지역을 ‘낙산’이라고 부른 시기(10세기 초)와 의상대사의 활동 시기(7세기 후반)는실제로 250년이나 차이가 있다. 그 이 유는 의상과 관련된 낙산 설화는 낙산 사가 창건되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정설이다. 낙산사 창건 설화를 그린 수월관음도가 10세기 초엽인 고려시대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설화는 불화가 그려지던 즈음에 성립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렇게 이어지던 설화가 익장(益莊) 스님의 낙산사기에 기록되었고, 약 50년후인 고려 말(1281년)에 일연 스님이 채록하여 삼국유사로 전해진다.




    백화도량과 이화정!


    낙산은 흔히 백화도량(白花道場) 이라고 하는데“흰 꽃나무가 있는 산”이라는 의미의 백화수산(白花樹山)이다. 의상법사의 신앙 고백을 담은 백화도량발원문(白花道場發願文)도 이 같은 연유로 신성한 백화도량에서 발원을 한 것으로 전한다.

    또한 낙산사에는 언제부턴지는 모르나(조선 초기로 예상) 배꽃을 상징하는 이화정(梨花亭)이란 정자가 있었다. 높 은 곳에서 바다에 임해 있어, 해와 달이 그 아래로 출입하였다고 했다.

    조선시대 홍문관 제학을 지낸 정두경(1597∼1673)은 낙산사에 와서 '바다 위의 정자에는 배꽃이 만발하고 낙산 곁의 바다는 아득하다'라는 시를 지었 고, 인조 때 강원도 관찰사 조문수 (1590∼1647)가 낙조(落照) 후에 달이 바다 위로 떠오를 때 이화정에 수레를 멈추고 조산 쪽을 바라보면서 시를 지었다 하니 이화정은 내로라하는 문신들이 이곳에 올라 주변에 흐드러지게 핀 배꽃을 지평선에 부서지는 흰 파도에 비유하는 장소였다.

    능엄경(楞嚴經)에는‘진정한 깨달음은 들음으로써 들어간다.’는 관세음보살의 수행법인 이근원통(耳根圓通;귀로 듣는 것을 근본으로 하여 깨닫는 방법)이 있다. 낙산의 파도 소리인 해조음(海潮音)을 들으면서 의상대사가 바라던 깨달음을 얻기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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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산사 파도소리 해조음(海潮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