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 신라의 동해안 북진을 위한 전략적 요충지 양양(후포매리산성과 고분군의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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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언
최근 산 좋고 물 맑은 양양은 육해공에 걸쳐 종합 운송 수단을 갖춘 교통의 요충지로서 동해안의 중심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양양의 변화를 주목하고 관심을 갖고 있다. 1500여 년 전의 양양은 어떠하였을까. 양양은 수백 년 동안 고구려의 땅이었지만 5세기 후반 ~ 6세기경 신라 정부는 양양을 동해안 북진의전략적인 요충지로 삼아 고구려에 대항, 교통로와 보급로 확보, 지방통제, 외부의 공격에 대한 방어 등의 기능을 담당할 전진기지로 구축하여 신라 팽창의 거점으로 삼고자 했다. 이는 후포매리 산성과 그 주변에 분포되어있는 고분군을 통해 충분히 증명되고 있다.
2. 후포매리산성
후포매리산성은 양양군 현남면 인구리와 견불리의 경계 일대에 위치한다.
이 산성은 삼국시대에 처음 축조된 성으로 그 위치상 고도가 높고 험한 산봉 우리 정상에 만들어졌으며 북쪽의 산봉 우리로부터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낮아지는 긴 타원형이다. 산성은 잘 남아있으며 성벽의 둘레가 약 450m 정도이다. 산성에서는 인구 앞바다, 후포매리
의 포매호와 주문진까지 조망된다. 성벽의 축조 방법은 2~3단의 석축으로 낮게 기단을 만든 후 그 위에 토축(土築)을 하는 기단석축형(基壇石築型) 토성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기본적으로 토성(土城)으로 판단한다. 산성 내에서는 경주계 토기들이 다량 보인다는 점에서 경주 세력의 강한 영향력과 신라 중앙세력의 다양한 지방 지배의 통제 방식과 관련지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지역이 신라 북쪽의 동해안 변경에 위치한 까닭에 고구려 및 외부의 공격에 대한 방어를 위해 산성은 다소 평지와 먼 거리이면서 높은 고도에 축조되었고 이후 신라의 동해안 진출과 관련하여 군사적 거점이나 동산현(洞山縣)의 치소(治所) 또는 배후성(背後城)으로 활용되었을 것이다.
이는 진흥왕이 함경도로 진출할 때 양양이 교두보 역할을 했으며 신라의 전성시기를 구축하는 군사적 요충지였다는 것을 시사한다.
후포매리 신라산성
3. 후포매리 고분군
후포매리산성 주변으로 후포매리고분군Ⅰ·Ⅱ가 분포한다. 후포매리고분군Ⅰ이 후포매리산성의 남쪽 가까운 곳에 위치한 반면 후포매리고분군Ⅱ는 산성에서 동쪽으로 1.5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다. 2017년 지역주민 제보로 후포매리 산85번지 일대에 대한 기초 조사를 실시하고 2020년 강원고고문화연구원에서 후포매리고분군Ⅰ내의 고분 1기를 학술발굴조사 하였다. 이 고분은 영동지역 최북단의 옛 신라 앞트기식돌방무덤(橫口式石室墓)으로 확인되었다.
앞트기식돌방무덤이란 묘실(墓室)의 한 쪽 벽을 뜯고 출입할 수 있도록 만들어 추가 매장을 의도한 무덤 형태로 6세기부터 조성되었다. 또한 고분에서는 신라 6세기대로 추정되는 토기와 마구류(馬具類), 철도자(손칼) 등의 유물이 발굴되었다.
양양 후포매리고분의 발견은 그간 옛 신라 고분이 여럿 발견된 강릉 일대보다 더 북쪽까지 신라가 영역을 넓혔다는 의미이며 앞서 1990년대에 고구려 고분으로 발견된 양양 포월리 고분군과는 직선거리로 3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사실을 통해 당시 양양이 양국 국경선 다툼에서 요충지였음을 추론해 볼 수 있다.
4. 양양의 고분군들의 상관관계
양양지역 남쪽에 위치한 원포리고분군은 5세기 중엽부터 6세기 중엽까지 조영된 신라의 고분군으로 5세기 중엽에는 원포리 일대까지 신라 영역권에 포함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양양지역 북쪽에 위치한 포월리 고분군은 고구려 계통의 관고리가 보이는 등 무덤의 구조와 매장 방식 그리고 출토유물을 통해 고구려 고분군으로 확인된다. 서로 다른 성격을 띠는 두 고분군의 중간 지대가 5세기 중엽까지의 신라-고구려의 경계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5세기 후엽에 들어서면서 신라는 고구려의 압박에서 벗어나 경계를 확장 하고 소백산맥 이북에서 전투를 벌이고 새로이 축성(築城)하거나 개축(改築)하는 등 점차 북진하는 양상을 나타낸다. 5세기 후엽부터 6세기 중엽까지 신라는 소백산맥을 넘어 남한강 상류 역까지 많은 산성과 고분군을 조영한다. 강원지역 역시 이러한 흐름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보이는 산성과 고분군이 여럿 확인된다.
이와 같은 흐름 속에서 동해안의 고구려와 신라의 경계, 신라의 북방진출을 크게 뒷받침하는 역사적 자료가 바로 양양의 후포매리산성과 후포매리고분군이다.
5. 역사적 의의
후포매리 산성은 강원도 동해안에서 최초로 발견된 그리고 최북단에 위치한 신라성이다. 지금까지 강원도동해안의 고고학적 조사는 신라 고분 자료가 대부분이었으나, 이 후포매리산성은 후포매리고분군과 함께 후포매리산성의 지리적 위치에 따른 고대 교통로, 고구려·신라의 군사적 긴장이 한층 고조되었던 5~6세기 강원 영동지방의 역사적 변동상황, 신라 고분 문화의 지방 확산 향상 등을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단서를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양양에 담겨있는 지리적 역사적 가치를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후포매리에서 발견된 아트기식 돌방 무덤,
고분 석실 덮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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