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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 6백년 미래를 잇는 양양문화원

    양양문화33호

    6월 - 고기가 살아가는 것이 좋아 살려준 蹈景(도경)과 和尙巖(화상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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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 화상암은인(仁)이야기를간직하고있다.


    화상암은 현남면 만월산에서 발원하여 원포리를 지나는 화상천 하구의 화상1교가 있는 해안도로가에 부처상 같이 우뚝 서 있는 바위이다.


    이 바위가 간직한 전설은 강릉이 본향인 ‘도경(蹈景) 최운우(崔雲遇)’는 어린 시절에 양양의 외가에 와서 자랄 때에 여러 아이가 냇가에서 고기잡이하며 노는데, 다른 아이들이 잡은 고기를 어린‘도경’은 오히려 물에 놓아 살려주었다고 한다.


    이때 이곳을 지나던 ‘도승’이 그 광경을 보고 기이하게 여겨서 그 이유를 물은 즉 “고기가 활발히 살아가는 모양이 보기 좋아서 도로 물에 놓아 주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 말을 들은 ‘도승’은 그 아이를 바위 위에 올려놓고 합장배례를 하고 장래에 귀하고 어진 삶이 되게 하여 달라고 축원하고 갔다 하여, 이 바위를 도승의 이름을 따서 화상암(和尙巖)이라 불러오며, 도경 최운우의 묘지는 현남면 원포리에 있어 그의 후손들이 지금도 이곳을 지나갈 때는 배례하고 다니고 있다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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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상암>



    ◈ 이야기의주인공 蹈景은실존한인물이었다.


    화상암에 관련된 이야기는 강원도지(1940년), 양주지(1990년, 794쪽), 양양군지(2010년) 등 여러 곳에 전하고 있으며, 여지도서(1765년) 양양부 교량편에“화상암천교(和尙岩川橋)는 관문으로부터 남쪽으로 65리 거리에 있다.”고 하였다.

    『옥동집(玉洞集)』저자인 문익성(文益成)은 양양부사 재직(1574. 8∼1578. 12)시에 쓴 유한계록(遊寒溪錄)에서 양양 태수가 친구 최도경과 산행을 한 기행문이 있다. 고 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575년 을해(乙亥)에 양양의 태수인 내가 최도경(崔蹈景), 배경부(裵景孚) 그리고 둘째 아들 여(勵)와 같이 한계로 놀러 가기로 하였다.

    현산성을 출발하여 향재(석성산고개)를 넘어 한령(빨닥고개)에서 말을 쉬게 하고 동쪽을 바라보니 푸른 바다에 운해가 아득하고, 바라본 서쪽의 설악은 험준한 석각인데 더욱 장마가 개어 깨끗하니 사방의 고운 구름도 말끔히 걷혀, 아직 한계에 이르지 않았으나 속세를 떠난듯 뛰어난 흥취가 먼저 이는구나 … 중략 … 아! 이 같은 절승 가시나무에 숨기어 몇 천 년 알지 못한 가운데 영으로 말미암아 동서의 몇 만 인이 알 수 없었다. 이 지경을 한 사람도 평하지 않았으니 내 스스로 친구와 함께 떠나서 살폈노라.

     

    “乙亥。余守襄陽與崔蹈景裵景孚及二子勵劼將遊寒溪, 自峴山城踰香峴歇馬于寒嶺東臨滄海雲濤茫茫西瞻雪岳石角峨峨况積雨新霽纖雲四捲未到寒溪逸興先飛,… 中略… 噫。如此絶勝。沒於荊棘中者不知其幾千年。由嶺而之東西者亦不知幾萬人。無一人曾評得此境。而自吾輩發之。無乃數也耶”


    그 외 양양과 강릉 유림의 경낙계첩(鏡洛會帖)의 기록에도“유독 우리 강릉 양양 두 고을에 춘헌최수(春軒崔洙), 도경 최운우(蹈景崔雲優)는 어질었고, 삼가 박수량(三可朴遂良), 원정 최수성(猿亭崔壽優)은 고상한 인물이라고 칭찬하는 기록이 있다.”고 했는데 위의 기록으로 보아 실존한 인물이며 화상암의 전설은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또 하나의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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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상암, 하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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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상암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