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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 6백년 미래를 잇는 양양문화원

    양양문화33호

    7월 - 조선 인조 때 세운 양양의 타루비(墮淚碑)가 현산공원에 있다.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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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 타루비(墮淚碑)란눈물을흘리는비석이라는뜻이다.


    지금으로부터 370여 년 전에 양양부사로 부임한 이상일(李尙逸)은 성품이 온화하면서 청렴결백하여 백성들의 신망이 두터웠을 뿐만 아니라 재직하는 동안 선정을 베풀었기에, 이임하는 부사에 대한 고마운 뜻을 기리고자 부민(府民)들이 선정비(善政碑)를 세웠다.


    이상일(李尙逸) 부사가 타지로 이임한 후부터 관원과 지방 토호들의 폐해(弊害)가 날로 심해지자 억울함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이 억울함을 어디에도 하소연할 곳이 없었다.


    참다못한 백성들은“선정을 베푼 구관 사또를 생각하고 으레 백지 소장을 들고 선정비를 찾아가서 비석을 껴안고 하소연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그런데 이상하게도 억울함을 당한 백성이 이 비석을 안고 울면 비석에서 눈물이 흘러나와 같이 울며 그 억울함을 동정해 주었다고 한다. 그 후부터 이상일 부사의 선정비(善政碑) 이름을 타루비(墮淚碑)라 불렀다고 한다.


    선정비를 세운 최초의 위치는 양양읍내 구교리(미륵골)에서 연창리로 넘어가는 고갯길 옆에 구교리 마을 전용의 큰 공동 우물가에 세웠는데 1989년 4월 도시정비 사업을 하면서 이전이 불가피하게 되자 현산공원으로 옮겨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



    ◆ 이상일(李尙逸) 양양부사의생애(生涯)를알아본다.


    본관은 벽진(碧珍:지금의 경상북도 성주) 자 여휴(女休), 호는 용암(龍巖), 승지 유번(有蕃)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군수 석명(碩明)이고, 아버지는 현령 민선(敏善)으로 김장생(沙溪金長生)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그는 조선중기의 문신으로 1620년에 생원(生員)이 되고, 10년 뒤인 1630년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그 후 성균관박사를 시작으로 승정원 주서, 사헌부 감찰·지평, 예조·형조정랑, 사헌부장령, 형조참의, 호조참의, 승지 등 내직에 있었으며, 외직으로 양양부사를 비롯하여 안동·영해부사, 진주·길주목사. 황해도·원양도(강원도)관찰사 등 관직이 화려했으며, 진위 겸 진향부사(陳慰兼進香副使)와 동지부사(冬至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오기도 했다.



    【원양도(原襄道)와 강양도(江襄道)에 양양(襄陽)의 양(襄)자가 들어간 이유】

    조선시대에는 불효·패륜·역모 등 도리에 어긋나는 죄인이 어떤 지방에서 발생하면 그 죄인만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의 등급까지 강등시키는 제도가 있었으므로 1666~1675년(10년간) 강릉(江陵) 강(江)자 대신 양양에 양(襄)자를 써서 강원도(江原道)를 원양도(原襄道)라고 호칭하였는데, 1683년부터 1701년까지 강양도(江襄道)라고 호칭한 적이 있다.



    ◆ 다음은 이상일(李尙逸)의 신도비명(神道碑銘) 중에 양양부사 재임 당시와 관련된 글이있어 다음과같이 옮겨보았다.


    『…及有襄陽之命公忻然赴之曰府境有寡姉居焉是適所願居五年棄歸邑民留不能得則以其行槖如洗也相與出粟爭致于家公固辭不受則守其門不忍去者又十許日…』


    이를 풀이하면

    『… 공께서는 양양부사(襄陽府使)로 임명되자, 기뻐하며 임지로 가면서 말하기를“그 고을에는 홀로된 누님이 살고 계시니 이는 바로 나의 원하는 바다.”하였다. 5년의 임기를 마치고 돌아가려는데 그 고을 백성들이 계속 머물러 있어야 한다고 만류하면서, 떠날 때 짊어질 망태 속에는 아무것도 없이 깨끗이 비어 있는 것을 보고는, 서로들 곡식을 모아 앞다투어 공의 사저로 가져오는 것을, 공께서 굳게 사양하며 받지 않자, 대문을 지키며 버티고 있으므로 차마 바로 떠나오지 못하고 십여 일이 지나서야 떠났다.…』라 하였다



    ◆ 전라남도여수에도타루비가있다.

    전라남도 여수시 고소동 고소대에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여수타루비가 있다. 이순신이 세상을 떠난 지 6년 후인 1603년 이순신의 수하였던 좌수영의 군사들이 이순신의 공덕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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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산공원 선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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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일부사 선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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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산공원으로 옮긴 옛 연창리 비석거리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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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수 충무공 타루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