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사이트 내 전체검색
전체검색 닫기
양양문화원
HOME 문화원소식
  • 자료실
  • 蘘陽의 漢詩
  • 자료실

    정명 6백년 미래를 잇는 양양문화원

    蘘陽의 漢詩

    104. 차낙산현판(次洛山懸板) / 부휴당(浮休堂) 석 선수(釋 善修)

    페이지 정보

    조회 20회

    본문

    달빛을 등불삼아 이화정에 앉아서

    적적한 봄의 회포 노승과 함께 풀었네

    바다의 창룡(四神중의 하나)은 때로 물을 뿌리고

    우레 같은 파도소리 밤에 스님이 찾아왔네

     

    梨亭獨坐月爲燈 

    寂寞春懷語老僧 

    碧海蒼龍時打水 

    驚波雷吼夜來僧


    절의 문 앞은 푸른 바다이고

    아득한 물결은 하늘에 닿아있네

    외로운 섬 밖에 고깃배 뜨고

    석양의 하늘가에 새 한 마리 울며 나는구나

     

    滄溟近在寺門前 

    萬里鯨波杳接天 

    數點漁舟孤島外 

    一聲啼鳥夕陽邊

     

    『金剛山詩』集下篇

     

    선수(중종 38년, 1543년~광해군 7년, 1615년)는 조선 중기의 고승으로, 성은 김이고 호는 부휴당(浮休堂)이다. 20세에 지리산에 들어가 신명(神明)의 제자가 되었고 부용(芙蓉)의 밑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전국의 유명 사찰을 찾아 수행하였고 임진왜란 때는 의병장으 로 나섰다.

    명나라 장수 이종성(李宗城)이 찾아와 법문을 듣고 가기도 했으며, 광해군은 스님을 초 빙해 설법을 듣고 가사, 푸른 비단장삼, 푸른 비단바지, 금강석 염주와 진완(珍玩)을 주 었고, 봉인사(奉印寺)에 재(齋)를 두고 그를 증명으로 삼았다. 1614년 조계산에서 방장산 칠불암으로 옮겼으며 다음해 제자 각성(覺性)에게 교단의 책임을 맡긴 뒤 그해 11월 1일 임종게(臨終偈)를 남기고 입적했다. 제자들이 해인사•송광사•칠불암•백장사 등에 부도(浮 屠)를 세웠으며 , 광해군은 부휴당부종수교변지무애추가홍각대사선수등계존자(浮休堂扶宗 樹敎辯智無礙追加弘覺大師善修登階尊者)라는 시호를 내렸다. 저서에 『부휴당대사집』 이 있다.

    첫 수의 燈, 僧, 增의 운자를 썼다 시는 선수스님이 낙산사를 찾아 깊은 밤에 찾아, 이 화정에 앉아 달빛을 벗 삼아 노승과 함께 봄의 적적한 회포를 풀며 밤늦게까지 담화를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두 번째 수는 前, 天 邊의 운자를 썼다. 석양 무렵에 절 앞의 바 다를 보며 바다와 하늘이 맞닿아 있어 아름다워 분별할 수 없고, 넓은 바다의 외로운 섬 그 곳에 고깃배가 있고, 석양에 새 한 마리 나는 모습을 고요하고 평온하게 표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