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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 6백년 미래를 잇는 양양문화원

    양양에서 영서를 잇는 백두대간의 영(嶺)

    Ⅰ. 머리말

    페이지 정보

    조회 36회

    본문

    소동라령(현 북암령)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세종실록지리지』 양양도호부편에서 “요해(要害)는  본부(府) 서쪽으로부터 인제  경계  바드라재[所等羅嶺]로  가는데 36리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양양도호부편에는 “소동라령은 부 서쪽 60리에 있으며 겹 치고 포개진 산맥에 지세가 험하고 외따 로 떨어져 구석지고 몹시 으슥하다. 예 전에는 서울로 통하는 길이었으나 지금 은 없어졌다.”라는 기록이 있는 등 소동 라령에 대한 역사기록들은 많이 남아있 다. 그러나 소동라령(所冬羅嶺)이 현재의 한계령이었다는 기록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역사기록에 보면 분명히 오색령, 소 동라령, 옛 한계령은 모두 다른 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상에서는 마치 오색령(한계령)과 소동라령이 같은 영으로 소 개되고 있으며“『세종실록지리지』(1454년)의 바드라재[所等羅嶺]”가 근거인 양 포장까지 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국가기관인 국토해양부 국토지리정보원이 2008년도에 발간한『한국 지명 유래집』에도 한계령이“옛날에는 소동라령이라고 불리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설악산은 중추가 되면 눈이 내리기 시작하여 여름에 이르러 녹으므로 설 악, 설산, 설화산으로 불리었고 소동라령도 같은 뜻으로 지어진 이름으로 자연스럽게 한 계령으로 바뀌었다”는 막연하고도 근거 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인터넷에서 ‘소동라령’을 검색하면 현재의 한계령이 옛 소동라령인 양, 왜곡 되어 급속하게 퍼져나가고 있다.

    이에 소동라령의 주변 환경을 살펴서 한계령과 그 의미를 비교하고, 고지도와 문헌을 통 해 경계, 하천, 거리 등을 고증하고자 한다. 또한 소동라령을 실사한 기록을 토대로 잘못 알려진 사실과 위치에 대한 왜곡을 바로잡고 소동라령의 역할을 재조명하여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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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1〉『신증동국여지승람』권지44

    산천조에표기된소동라령(자료:규장각한국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