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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 6백년 미래를 잇는 양양문화원

    양양지방의 영(嶺)

    Ⅴ. 맺는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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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분명한 것은 지금의 한계령은 양양의 오색령이다. 우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오색 령(五色嶺)이 우리 지역의 고유한 지명이라는 당위성을 내 새워 복원해야 한다고 강 력한 주장을 피력(披瀝)해왔다.

    지난 2010년에 양양군지(襄陽郡誌)를 발간하기 위해 군지발간위원회에서 각종 영로 (嶺路)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일제가  조선  침탈의  목적으로  작전지도를 제작할 때 오색령을 한계령으로 뒤바꿔 놓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영(嶺)의 기능은 귀향보다는 상경(上京)하는 데에 더욱 큰 의미를 두었 다. 따라서 당시의 인제현과 양양부의 관점에서 볼 때, 인제현에 속한 한계리는 귀향 의 의미이고, 양양부에 속한 오색리는 상경의 의미로 영의 기능과 관련된 상경의 출 발지는 오색리라고 할 수 있다고 오색령 관련 심포지엄 때 강릉원주대 김무림 교수가 밝혔다. 

    오색령이 한계령으로 뒤바뀐 것은 일제의 잘못으로 인제군의 의도는 아니었을 것으 로 알지만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채 이미 100여 년이 지났는데도 ‘한계령이다’ ‘오색령이다’ 티격태격 자치단체 간에 갈등으로 남아있어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조속한 해결방안의 모색이 요구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오색령 도로가 3등 도로로 발표가 되자 2등 도로로 승급하여 개착하 기 위한 양양군의 노력을 보았다.

    당시 영서의 4개 군(춘천, 홍천, 양구, 인제)에서도 오색령 도로의 개착이 자기 군의 물산(物産) 이동에 크게 도움이 되며 특히 동해안의 싱싱한 해산물 유입을 위하여 강 원도에 진정서를 제출하였다. 그러나 끝내 2등 도로로의 승격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1932년  3월  15일  동아일보  기사로  인제군  북면의  800여  주민이  연명으로  오색령 도로를 개설해 줄 것을 인제군과 강원도에 진정서를 냈다는 사실도 이미 밝혔다. 

    오색령이 제자리를 찾기를 위해 지난 2010년에 양양군 주관으로 오색령 관련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하였다.  양양문화원  부설  향토사연구소는  양양문화원  관계자와  국토 정보지리원을  방문하여  자료수집과  한계령  지명에  대한  부당성을  호소한  바  있으며 지난  2012년에는  사무국장과  향토사연구원들이  옛  소동라령  도로를  현지  답사하여, 조선 성종 때 역로(驛路)가 폐쇄되어 미시령으로 옮겨 간 후 600여 년이 되어 감에 도, 영로에는 당시에 개설한 것으로 추정되는 도로의 형체와 영(嶺) 정상에는 인위적 으로 쌓은 이정표인 돌무지가 남아있음을 확인하고 소동라령의 확실한 위치가 지금의 북암령과 일치함을 발표하였다. 이때 오색역은 원암역으로 이전하였음도 확인하였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에도 국무원에서 전국의 지명조사를 할 때 인제군 북면에서 보고된  한계령은  “영동과  통하는  오색이영의  낮은  영으로써  한계  지역에  있다  하여 한계령이라고 하였다”는 보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영인 오색령으로는 복원되지 않았다. 

    그 후부터는  인제군은 한계령  유래를  “한계산에서  연유되었다고도 하고, 소동라령 [바드랏재]이 자연스럽게 한계령으로 되었다”는 근거도 없는 이론들을 사실인 양 강하 게 어필하고  있는데 이는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이런  출처도 밝히지 못하는 역사 적 태도에 의해 인터넷에 한계령이 소동라령처럼 비춰지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소동라령은 지금의 북암령(北庵嶺)으로 한계령에서 남쪽 방향으로 10km 이상 떨어 져 있으며 소동라령은 인제현(인제읍)으로 향하는 영이 아니고 춘천부 기린현(기린면 진동리)으로 향하는 영이었음을 분명히 밝혀둔다. 

    그리고 한국고전번역원법(2007년 제정)에 의해 설립된 한국고전번역원이 세종실 록지리지 양양도호부편에서  ‘소등라령(所等羅領)’을  ‘바드라재’로  번역하였다.  이것은 소동라령(현  북암령)이  바드라재라는 것이지  한계령이  바드라재로 번역된  것이  아님 을 다시한번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