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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 6백년 미래를 잇는 양양문화원

    양양지방의 영(嶺)

    Ⅰ. 머리말

    페이지 정보

    조회 26회

    본문

    소동라령(현  북암령)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세종실록지리지』 양양도호부편에서 “요해(要害)는  본부(府)  서쪽으로부터 인제  경계 바드라재[所等羅嶺]로  가는데 36리이 다.65) 『신증동국여지승람』 양양도호부편에는 “소동라령은 부 서쪽 60리에 있으며 겹치고 포개진 산맥에 지세가 험하고 외따로 떨어져 구석지고 몹시 으슥하다. 예전에는 서울로 통하는 길이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66)  라는 기록이 있는 등 소동라령에 대한 역사기록들은 많이 남아있다. 그러나 소동라령(所冬羅嶺)이 현재의 한계령이었다는 기록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역사기록에 보면 분명히 오색령, 소동라령, 옛 한계령은 모두 다른 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상에서는 마치 오색령(한계령)과 소동라령이 같은 영으로 소개되고 있으며 “『세종실록지리지』(1454년)의 바드라재[所等羅嶺]”가 근거인 양 포장 까지 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국가기관인 국토해양부 국토지리정보원이 2008년도에 발간한 『한국 지명 유래집』 에도 한계령이 “옛날에는 소동라령이라고 불리었다”67)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설악산은 중추가 되면 눈이 내리기 시작하여 여름에 이르러 녹으므로 설악, 설산, 설화산으로 불리었고 소동라령도 같은 뜻으로 지어진 이름으로 자연스럽 게 한계령으로 바뀌었다”68)는 막연하고도 근거 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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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1> 『신증동국여지승람』 권지44 산천조에 표기된 소동라령 (자료:규장각한국학연구원)

     

     

    그럼에도 인터넷에서 ‘소동라령’을 검색하면 현재의 한계령이 옛 소동라령인 양, 왜곡되어 급속하게 퍼져나가고 있다.

    이에 소동라령의 주변 환경을 살펴서 한계령과 그 의미를 비교하고, 고지도와 문헌 을 통해 경계, 하천, 거리 등을 고증하고자 한다. 또한 소동라령을 실사한 기록을 토 대로 잘못 알려진 사실과 위치에 대한 왜곡을 바로잡고 소동라령의 역할을 재조명하 여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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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5)  要害, 自本府西去麟蹄境所等羅領三十六里。※ 要害 : 적을 막기에는 편리하고 적이 쳐들어 오기에는 불리하게 지 세가 험한 곳, 바드라재는 한국고전번역원법(2007년 제정)에 의해 설립된 『한국고전번역원』의 공식 해석이다.

    66) 所冬羅嶺。在府西六十里。重巒疊嶂,地勢險阻。舊有路通京師,今廢。

    67) 『한국지명유래집』 국토해양부 국토지리연구소, 2008. 제5부 강원도 인제군 689p

    68) 『지금의 한계령과 오색령에 대한 연구』 최병헌, 2012, http://blog.daum.net/bhunc1/8224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