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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 6백년 미래를 잇는 양양문화원

    양양지방의 영(嶺)

    Ⅳ. 조침령로의 이용실태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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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1. 옛 조침령로 쇠나드리 


    현  조침령로(418지방도로)가  포장되기  이전의  옛  조침령(쇠나드리)은  양양군  서면 서림리에서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로 넘어가는 백두대간의 고개로 진동리와 방동리 일 대 주민들이 양양으로 장을 보러 다니던 길이기도 했다. 

    진동리에서 정상의 바람부리 쪽에서 쇠나드리를 넘어 옛길을 통하여 서림으로 내려 가는 계곡은 온갖 산나물과 야생화 군락지로 봄에는 계곡 전체가 꽃밭이 되며 야생화 가  만개하면  선경(仙境)이  따로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계곡  가장자리를  따라  계속 내려오다 보면 군데군데 축대가 남아있는데 이는 일제강점기에 목재 반출을 위해 만 든 산판(山坂)길 흔적이라고 한다. 

    과거 영을 넘나들던 장사꾼들은 인제에서 양양(영동)으로 넘어올 때는 밭곡식인 콩 과 팥 등을 싣고 오고 양양에서 조침령을 넘어 인제로 갈 때는 소금, 고등어, 꽁치, 미역 등을 가지고 가는데 주로 소금에 절인 고등어를 많이 가지고 갔다.

    선질꾼 1명의 짐은 대략 쌀 한 가마니인 100근(60kg) 정도의 짐을 지고 영을 넘어 다녔으며 힘이 좋은 선질꾼은 한 번에 고등어 100마리나 소금 한 가마를 지고 다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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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8> 옛 조침령 입구 서림 삼거리

     

     

    이들은 대부분 양양 서림에서 인제 기린까지의 약 6~7군데의 주막에서 묶는데 밥 값은 당시 화폐로 10~15전(9,600원~14,400원)108)을 받았다고 한다.

    서림리에서  옛  조침령으로  올라가는  골짜기  입구에는  마꾼이  말과  함께  묶을  수 있는  마방터(구룡령로  2081  일대)  가  있었으며  조침령  정상인  쇠나드리에도  마방이 있었다. 마꾼이나 선질꾼은 취급하는 품목이 같으며, 마꾼의 경우에는 말 한 마리가 선질꾼의 약 3배가 넘는 짐을 싣고 다닐 수 있었다. 콩과 팥을 각 10말씩 총 20말을 싣고 다녔다. 마꾼 행렬이 많은  경우에는 한 번에 20여  명이 약 25필 정도의  말을 몰고 다녔다. 이들은 선질꾼보다 더 많은 물건을 운반하기에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으 며 평지에서는 말을 타고 다니기도 하였다. 마꾼은 8.15해방 전후로 모두 없어졌다.

    당시 인제로 통하는 영로(嶺路) 중에서는 주로 조침령과 박달령을 많이 넘어 다녔 다. 조침령은 말은 다니기 쉬우나 거리가 멀었고, 단목령(박달령)은 말이 다니기에는 험하지만 거리가  짧아서 바꾸미들이 이 영을  넘나들었다. 특히  진동리(설피밭)는 한 때 약초 재배가 성행하면서 약초를 판매하려는 농장주가 많이 넘어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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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9> 조침령 정상



    2. 현 조침령로


    1984년  이후부터는  비포장 군사  도로를 이용하다가  2006년부터는 770m의  고개가 600m로 낮아지면서 모든 것은 차로 운반을 하게 되었다.

    이제는 조침령 마루금은 백두대간을 종단하는 대간꾼들의 발길만이 이어지는데 오 색령에서  단목령(박달령)까지  거리는  약  13km,  단목령에서  북암령(소동라령)까지는 2km, 북암령에서 조침령까지는 7.3km, 조침령에서 구룡령까지는 22.4km로 인터넷에 종단 후기와 코스를 안내하는 글을 자주 접할 수 있다. 

    조침령과 구룡령은 자전거 힐클라임에 도전하고 싶어하는 라이더에게는 손에 꼽을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매년 대회가 열리기도 하지만 한 번 도전하면 쉽사리 기억에 서 지워지지 않을 정도로 높고 험한 지형이라 완주의 자부심이 대단한 곳이다. 

    극한의 짧은 업(up)힐(hill)에는 조침령이 제격이며, 구불구불한 끝없는 오르막길에 서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고 싶다면 구룡령이 최고의 코스이다. 

    조침령은 마치 벽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듯 고개가 우뚝 솟아있어 라이더들은 이 고개의 모습을 보고 일명 ‘빡침령’이라고 한다. 오르막이 보통은 11~16% 내외의 경사 로 극한을 이룬다. 서림삼거리에서 조침령의 정상인 터널까지는 약 4.2km로 처음에는 직선의 길고 높은 경사도를 이루고 있으며, 이후부터 정상까지는 거의 300도 이상 의 코너링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상에 서면 막힘없이 뻥 뚫린 시야가 시원하게 펼쳐지며 긴 업, 힐에 지친 마음을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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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10> 눈 덮인 조침령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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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8) 1910년 당시 화폐가치는 금본위제로 환산하면 1원은 순금 2푼(750mg)의 가치로 발행되었으므로 1푼은 0.1돈이니 0.375g이다. 2024년 10월 현재 금 1돈에 480,000원이므로 당시 1원은 현재 96,000원의 가치이다. 따라서 당시 밥 값 10전은 9,600원이고 15전은 14,400원으로 어림하여 환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