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명주사의 건축 규모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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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운(韓龍雲, 1879~1944) 선사께서 1928년『건봉사급건봉사말사적』을 작성하던 그 시점의 명주사는 속암들은 이미 폐허가 되어 없어진 것으로 확인이 된다.
1897년 이후 명주사가 원통암으로 이전하였는데도 그 주변의 전각을 합쳐 총 95간으로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당시에는 속암이 이미 폐지되었음에도 굉장히 큰 규모의 사찰로 건봉사 말사 8개소 중에서는 신흥사와 낙산사 다음으로 큰 규모의 사찰임을 알 수 있다.
당시 낙산사가 108간이었으니, 명주사가 어느 정도 큰 사찰인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토지도 68,652평(坪)에 임야가 246정(町) 45단(段)이나 된다. 그러나 6.25 이후 폐허가 되었으며 그 후에도 수해(水害)와 산불 등에 시달리며 오늘날은 규모가 매우 축소되어 극락전(極樂殿)과 삼성각(三聖閣), 종각, 요사(寮舍) 2동만이 현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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