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원통암(圓通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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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1년(정종 5년, 辛丑)에 연파(蓮坡) 대선사가 원통암(圓通庵)을 창건하고 관음상(觀音像)을 조성, 봉안하 였다. 1849년(헌종 15년)에 원통암(圓通庵)이 소실되어 곧바로 중건하고, 1853년(철종 4년)에도 원통암(圓 通庵)이 소실되어 중건하였다.
그러나“1860년(철종 11) 윤 3월 17 일 강원 감사 김시연(金始淵)의 보고에 의하면 영북지방에 큰불이 나서 양양부 의 소실(燒失)된 가옥이 551호나 되었 으며, 통천군 472호, 간성군 486호가 소실되었음을 아뢰니 이천 부사 남종순 (南鍾順)에게 위유사(慰諭使:위로하고 타이름) 벼슬을 내려 위유(慰諭)하게 하 였다.”56)이날 명주사는 물론, 원통암 (圓通庵), 청련암(靑蓮庵), 운문암(雲門 庵), 향로암(香爐庵)이 모두 소실되는 큰 피해를 입었다.
이로부터 4년 후인 1864년(고종 원년)이 되어서야 학운(鶴雲) 대사가 사재(私財)를 털어 원통암(圓通庵)을 중건하였다.
1897년(대한제국(大韓帝國) 광무 원년)에 명주사가 또다시 소실(燒失) 되자 원통암에서 명주사를 대신하여 절의 사무를 대행하다가 1906년(대한 광무 10년, 丙午)에 원통암을 확장·중건하여 30간의 건물이 되었다. 이때 추사의 무량수각(無量壽閣) 현액으로 고쳐 달게 된다. 이후부터는 원통암이 곧 명주사의 지위를 갖게 되었다.
원통암은 다른 암자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늦은 시기에 창건되었음에도 여러번의 소실과 중건을 거듭하다 가 1918년(戊午)과 1925년(乙丑)에도 명주사(원통암)를 크게 수리하였다.
그러나 6·25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명주사는 폐허가 되어 한동안 방치가 되다가 1963년 주지 수룡(壽龍) 스님이 중건하였으며, 1979년 주지 마근(麻根) 스님이 법당과 삼성각, 추성각(秋聲閣, 주지 스님이 거주), 종 각, 요사(寮舍) 등을 크게 고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림 14〉1928년 옛 명주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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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哲宗實錄 卷12, 11년 潤 3月 17日 江原道監司金始淵以襄陽府燒戶五百五十一戶 通川郡燒戶四百七十二戶 杆城郡燒戶四百八十六號啓 伊 川府使南鍾順慰諭使差下之馳進慰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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