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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양문화36호

    12월 : 오산리 유적으로 보는 신석기 시대의 이해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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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우리나라의 구석기 시대는 약 70만년 전의 중기 구석기부터 1만년 전까지이고, 신석기 시대는 1만년 전부터 청동기 시대인 4천년 전까지라고 한다.

    구석기 시대는 빙하기로 추웠으며 신석기 시대는 간빙기로 기후가 지금처럼 따뜻해지기 시작하였다.

    기후가 온난해지자 사람들은 밭농사 위주의 농경을 시작하고 가축을 키우면서 이동을 멈추고 움집을 짓고 정착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열매의 채집과 사냥, 고기잡이는 계속하였다.

    신석기 시대까지는 계급이 없는 평등한 공동체로 생활하였으나 청동기 시대부터는 농업생산력 증가로 사유재산이 생겼고 빈부격차와 계급이 발생하였다.

    움집은 주로 바닷가나 강가에 위치하는데 주변보다 낮게 움(구덩이)을 판 후 바닥을 다져서 가운데에 화덕을 설치하고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얹었다.

    구석기 시대의 뗀석기에 비하면 크기가 작고 모양도 매끄러운 간석기를 사용하였는데 지금의 믹서기 역할을 하는 갈돌과 갈판이 있으며, 돌낫과 화살촉 등이 있다.

    토기로는 바닥이 뾰족한 빗살무늬토기, 제주도 고산리1)유적의 이른 민무늬 토기, 덧무늬 토기를 이용하여 식량을 조리하고 저장하였다. 빗살무늬토기는 움집 바닥에 홈을 파서 세우는 방식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양양의 오산리 유적2)에서는 동해안 특유의『오산리식 토기』3)가 발견되었다. 옹기형(甕形) 토기가 주류를 이루는데 아가리 안쪽은 비스듬하게 처리하여 단을 이루고 있으며 바닥은 모두 평평하다. 손잡이가 달리거나 목이 있는 토기들도 있는데 문양은 항아리 아가리 쪽에 한정하며, 같은 문양을 눌러 찍는 방법이 이용되었다. 주요 문양의 형태는 평행으로 된 점무늬(點列文)나 짧은 빗금무늬(押印短斜線文) 및 손톱무늬(爪紋)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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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석기인 어로행위 모습



    094-3.jpg

    오산리 신석기인 생활 모습



    일반적으로 민무늬 토기는 청동기 시대의 유물로 바닥이 평평한데『오산리식 토기』도 바닥이 평평하면서 빗살무늬와는 다른 덧무늬 선진적 기술로 제작되었다.

    이 시대의 수공업 도구로는 실을 뽑는 가락바퀴가 있는데 뼈바늘을 이용하여 옷과 그물을 만들었다.

    오산리 유적지(사적 제394호)에서는 돌도끼, 결합식 낚싯바늘, 돌화살촉 등의 간석기와 그물추가 나왔으며 샤머니즘적 대표 유물로는‘곰 모양의 토우’와‘토제 인면상(土製人面像)’이 있다. 토제 인면상은 가로 4.3cm, 세로 5.1cm가량의 작고 둥근 점토판을 손가락으로 눌러 사람의 얼굴 모양을 만들었는데 생산과 풍요를 기원하고 재해가 빗겨 가길 축원하는 씨족 수호 신상(神像)으로 한반도와 함께 주로 동북아시아 일대 유적에서 출토되고 있어 그 가치가 매우 높게 평가된다.


     

    095-2.jpg

    오산리식토기(덧무늬토기)와 토제인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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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주 고산리 유적은 기원전 6,300년 이전 것으로 확인.

    2) 1981~1987년에 발굴되어 우리나라 내륙의 신석기 문화를 대표하며 2007년 기원전 6,000년 이전의 것으로 확인.

    3) 일반적으로 청동기 시대에 이르러야 바닥이 평평한 민무늬 토기가 만들어지는데 양양은 바닥이 평평한 신석기 토기가 발굴되어 따로 『오산리식 토기』로 명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