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경비실 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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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자 연창리 김정환 73세)
사례 1 ◆ 양양철광 경비의 임무
68년부터 94년까지 재직 했다. 경비 업무는 광업소 재산보호와 외부인, 차량 출입 여부를 관여하고 자재창고 2동(값비싼 물건이 많았음)와 광산의 재산보호및 화재 예방 등의 업무를 수행했다.
경비는 초창기에 30여명이 근무하였으며, 초소는 3개(1초소, 2초소, 5초소)초소로 장승리가 1초소(3교대 1명), 작은 굴 쪽 2초소(3교대 1명), 사항골 산등에
5초소(3교대 1명)가 있었으며, 광업소 총무과 앞에 경비실(고정 3명, 3교대 7명)
과 야간에 화약취급소에 순찰조가 1명이 있었으며, 주간에는 8시간, 야간에는매 시각 광업소 창고의 보안단속을 주기적으로 점검하는 순환근무 수행 하였고, 항내를 제외한 모든 지역 순찰 하였다.
각 초소별 초소일지를 작성하였고, 경비실에서 총괄적으로 정리하여 상급에 보고를 하였다.
사례 2 ◆ 무장공비 침투 후 총과 실탄 휴대 근무
예비군 창설되고 1968년 1월 21일 북한에서 무장공비(김신조)가 침투 당시주 업무가 무기고 경비 업무였는데 M52라는 경비용 총(카빈총)과 실탄을 휴대 하고 경비를 섰으며, 기간은 대략 2~3년 정도이었고 경비 교대 시간은 아침 8 시, 오후 5시, 밤 12시였다.
도난사고에 대하여서는 가정에서 사용 가능한 소소한 물품을 가져가는 경우는 있었으나, 자재 등의 물건을 매매 용도로 훔쳐 가는 경우는 없었다.
양양광업소 극장에서 불이 난적 있었으나, 광업소 내 화재가 발생한 적은 없었음.
작은 굴 초소 옆에 있는 태평실 에서는 차량으로 광석을 측정을 하는 사람이 있었고 광석차는 측정 후에 전표를 끊어 갔다.
임금은 광업소 내 노동자에 비해 임금은 적었다. 경비실 근무자도 임시로 지내다가 고입으로 변경되는 자도 있었다.
명절 등을 포함해서 1년 내내 쉬는 날이 없었다.
임금은 적어도 출근하면 노동을 하는 근로보다 일이 수월하기 때문에 광업소에 있는 사람들이 선호하던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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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자 서문리 이정헌 75세)
사례 1 ◆ 오종(午鐘)이라고 불렀던 양양광산의 사이렌
한때 광산에서 1975~1979년도로 기억되는데 그때 경비실 소관일로 사이렌[그때 양양사람들은 주로 오종이라고 불렀음]을 울렸는데 비상계획부에서 실시하는 민방공훈련과 현충일행사 중 묵념을 할 때 울렸고 매일 정확화게 정오 12시가 되면 울렸는데 그 사이렌 소리가 양양은 물론 강현면 양은 들려 산과 들 논밭 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물론 일상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오종은 점심시간을 알리 기도 하는 애환이 서린 소리이기도 하였는데 그 사이렌은 1초소 뒤에 있었으며 광업소에서 폐석을 제재소 뒤에서부터 점차적로 내려오면서 버리게 되자 사이렌 설치대가 폐석 산 더미에 묻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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