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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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자 현북면 장리 이선권 67세)
사례 1 ◆ 초창기에는 산업별 노동조합체제 였다.
1980년 이전에는 노동조합 산업별 노동조합체제로 양양광업소의 노조명칭은 “전국광산노동조합 양양철산지부”로 대표자를 지부장이라고 하였습니다. 1960년도 이전은 대표자가 누구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송기붕씨 라고 들었지요. 60년대 이후부터는 이경종→이방호→권영대순의 지부장이었고 울산광업소는 “전국광 산노동조합 울산철산지부”로 결개의 지부였지요. 1980년 5.17조치로 권영대 지부장이 장기연임 중 1980년 상반기에 불명예로 퇴진 하였으며, 다음에는 총무부장 박준기씨가 호자서 양양지부 사무실에서 몇 개월 동안 근무하였습니다.
사례 2 ◆ 1980년대에는 서울 본사에서 투표를 했다.
1979년 12.12 사태이후 1980년 5.17조치로 노동법이 대폭 변경되면서 노동조 합이 전국단위 산별체제에서 기업단위 노조로 전환되어 “삼미광업노동조합”으로 명칭변경과 함께 대표자를 위원장이라고 불렀답니다. 이에 “삼미광업노동조합” 이 1981년 1월 27일경에 출범하게되었습니다. 이때는 서울본사에서 선거(투표) 를 하였고 위원장에 문병천, 부위원장은 최선명, 이기호 두분과 총무부장에 이선권, 양양지부장은 김규섭, 울산지부장은 황규상으로 해서 노조전임자가 축소되어 새롭게 출범하였습니다.
그 후 3년 뒤에 문병천 위원장은 회사 정년으로 연임 할 수 없어 퇴임하고 1984년 1월 28일경 김규섭 양양지부장이 이기호 부위원장과 경합해서 노조위원 장에 당선되었고, 총무부장에 이동인, 양양지부장은 이선권, 울산지부장은 박경동으로 해서 새롭게 dfladnjs이 선출되었습니다. 이 무렵 회사 명칭이 “산미광업”에서 다시 “대한철광개발주식회사”로 변경되어 노동조합도 “대한철광노동조합”으로 변경 되었지요.
그리고 3년 뒤인 1987년 1월 28일경 김규섭 노조위원장은 재임에 성공하였 으나 1987, 1988년 전국적으로 들불처럼 번지는 노동자대투쟁의 소용돌이에 이용노조라는 조합원의 여론에 재임 1년여 만인 1988년 4, 5월경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직하였습니다.
사례 3 ◆ 양양광산 노동조합의 산 증인인 최후의 노동조합위원장
1988년도 에는 이인수, 김진학, 정연홍, 박용철, 권오복 등 대의원을 구축으로한 “대한철광노동조합 비상대책위원회”가 발족되었고 60년대 이 후 사라진 직선제로 규약을 개정하고 조합원의 직접선거를 1988년 6월 18일경에 양양과 울산에서 동시 실시하여 이선권, 최용규, 김승희의 3파전에서 제가 위원장에 당선 되었어요. 1990년 1월, 1993년 1월에 연이어 재선되었고, 양양광업소가 마지감 문을 닫을 때까지 노동조합위원장으로 일했습니다. 광업소가 폐광에 이르자 조합원들의 권익을 위해서 투쟁과 협상을 2개월여 동안 주도하여 전체노동자들에게 부족할지언정 실익이 돌아가도록 최종 정리하고 회사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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