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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양철광산의 문화사 [증보판]

    11. 궤도설치

    페이지 정보

    조회 247회

    본문


    (구술자 논화리 황종근 74세)


    사례 1 ◆ 철길을 놓는 궤도부(레일의 종류와 공구)

     

    궤도(철로)를 놓는 레일는 24파운드, 18파운드, 12파운드짜리가 있는데 철을 캐먹는 통로가 생길 때 마다 놓는데, 레일을 놓는 일은 레일를 휘(굴곡)는 작업이 제일 어렵(주기술)다. 괘도를 설치하는 자재는 레일, 침목, 징구루, 스파킹, 벤시, 볼트가 있고 공구는 빠루, 홉빠(괭이), 게이지, 망치 등이 있다.

    24파운드는 삭꼬 경사용 광차 선로이므로 견고하여야하기 때문에 무거운 것을 쓰는데 2인 3개조 6명과 운반 부 인원이 모두 모여서 1구미(조)를 놓는데 하루 종일 걸린다.



    사례 2 ◆ 막장의 레일운반 너무 힘들어


    18파운드는 막장으로 들어가는 수평용으로 1개조 2명이 레일를 까는 시간이약 2시간 반정 걸리고 12파운드는 만천판 2중단에서 사다리를 이용해서 45도경사로 레일를 올려가지고 놓는데 일의 단도리(준비)가 다 됐으면 1시간이면 놓고 네루를 휘어서 일할 때에는 약 2시간 걸리는데 오전 1구미를 놓고 오후에 1 구미를 더해서 2번 놓는데 굴속의 레일(철로)길이는 철을 캐먹는 막장 굴속까지는 약 100m에서 150m 이다. 그리고 레일를 중단 막장으로 올리데 천판이 낮은 데는 고개를 옆으로 찌구레야되고 또 깐드레 까지 들고 들어가야 되는데 거기 다가 굴 안이 꾸불꾸불하니 레일 이 이쪽으로 부치고 저 쪽으로 부치고 머리 다가 쓴 화이봐가 벽에 막 부딧치기 때문에 애로사항이 많았다.



    사례 3 ◆ 깡 심지지 너무 짧아


    입사 한지 열흘도 안됐는데 운반부 때 나보다 한 30살이 더 먹은 분이 나보고 따라오라구 그리는데 가서 굴천장 꼭대기 위를 치다보니 어르신이 대구리를 가지고 망치로 뚫어서 깡 심지를 다 쑤세 박았는데 구멍에 열 다섯개 박아 놓았더라고 그리구 사다리로 올라가서 내려다보고는 내가 불을 다 붙이거든 나하고 사다리를 치우고 나가자고 그러는데 심지에 불을 붙여 놘 것을 보니 너무 짧게 해가지구 불을 붙여서 가슴이 두근두근 그리는데 그때 어린 맘에 근방 터질 것 같아 눈 깜짝 할 사이에 사다리고 뭐이고 심지를 확 잡아 댕기고 어른이야 죽건 말건 고구찌(坑口) 쪽으로 쫓겨 갔다. 예전에 황어를 깡으로 잡을 때심지를 짧게 붙이는걸 봐왔는지라 저기 터지면 돌이 무너져 내려 내가 죽을 것같더라고 고구찌에서 한참 있어도 안 터졌는데 얼마 있다가 몇 방 터지는 소리가 들리는데 이양반이 깡이 터져 죽은 게 아니라 사다리가 치워져서 떨어져 죽은 것만 같더라구. 나중에 죽기 살기로 들어가니 그 어른이 호인인데 에이 이사람아 하고 말아요. 그 어른도 미쓰를 했지. 심지는 1m50cm 이고 구멍속으로 거의 다 들어가기 때문에 피할 시간도 충분하다고 설명을 했어야지.

    운반부 때 2중단에서 굴이 싹 우루루 무너져서 내렸는데 이슬이 내리는 것을 사전에 발견해서 빨리 피해라 해서 사고를 미연에 방지했으니 망정이지 그렇치 않으면 사람이 싹 죽을 뻔 했지, 그때 표창도 받았었지. 그리고 처음 들어가서 운반부 때 어레이를 가지고 오라고 그리는데 어레이를 오리로 들었으니 생전에 오리가 어디 있어야 말이지 그런 일이 다 있었지.



    사례 4 ◆ 일제 때 굴속 괴인 물에 오리를 키웠다


    일제 때 광업소 댕기던 분들이 우리사랑방에서 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굴속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니 굴속에 물이 괴어 있는 데가 많았는데 거기다가 오리를 키웠다는 예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사례 5 ◆ 천양회사와 덕대


    출퇴근은 대부분 걸어서 했는데 간혹 퇴근 시에는 논화항 에서부터 논화리 가제 골까지 관통(1965년경에 약 600~700여m)을 시킨 맞창이 난 굴이 있는데 추운 겨울에는 굴속이 뜨뜻하고 더운 여름에는 시원하여 퇴근할 때에는 간드 레를 들고 퇴근을 했는데 약 30여분 정도 걸렸다.

     

    219_1.jpg

    <사진 20> 광산 논화갱과 연결되어 있는 논화리 가재골갱



    사례 6 ◆ 한국전쟁 시 가재골의 실화


    논화리 입구에서부터 마을을 지나 약 3km지점의 가재골에는 일제 때 개발을 하려고 뚫은 굴이 3군데나 있는데 그중에 가운데에 굴은 쌍 굴이고 길이는 대부분 10여m 미만의 굴들이 있는데, 한국전쟁 당시 논화리 마을에 저의 가족을 포함한 3~5가구의 15여명이 이 굴들 중에서 제일 아래에 있는 굴에 피난을 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국군들이 와서 총으로 공포를 쏘는지라 사람들이 굴 밖으로 나오자 국군들이 몸수색을 하는데 저의 부친(황봉염)이 공민증(북한에서만 17세 이상의 성인에게 주어지는 신분증명서)을 미처 버리지 못했지만 다행스 럽게도 국군에게 총의 개머리판으로 맞았지만 다행스럽게 위험한 고비를 넘긴후 오랫동안 몸이 아파 고생을 한 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