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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악산 시문

    유설악기(遊雪嶽記)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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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 유설악기(遊雪嶽記)

      

    내재(耐齋) 홍태유(洪泰猷)



     인제현으로부터 동북쪽으로 30리 가서 삼차령에 도착했다. 고개를 넘어가니 바로 골짜기가 매우 깊다. 양쪽 산은 벼랑처럼 서 있고 나무는 빽빽하고 숲은 울창했다. 아래서 하늘을 보니 겨우 베 한 필처럼 보였다. 해와 달이 하늘에 이르러서는 꼭대기에 이르러서야 빛을 비추니, 진실로 자오곡이라고 말한다.

     조금 내려가니 평탄하고 시냇물은 점점 많아졌다. 자주 빛이 그윽한 돌들이 있었다. 몇 리를 가지 않아 큰 계곡물이 서쪽으로 흘러와서 만난다. 곧 곡백담(曲百潭)의 하류였다. 언덕은 모두 하얀 자갈이 깔린 평지였고 모든 수많은 소나무가 짙푸르고 울창하였다. 소나무가 끝나자 비로소 밭이 있었다. 밭 가에 여덟아홉 집이 모여서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바로 난계역이다.

     또 10여리를 가서 시내를 건너 갈역촌에 닿았다. 마을에 거처하는 사람은 더욱 적었고 모두 판자집이었다. 앞은 고갯길과 통해서 장사가 끊이질 않았다. 항상 순박하고 화목하여 길가에 사는 사람들의 풍속 같지 않았다.

     이곳을 지나면서 길이 크고 험한 돌이 많아 말을 탈 수가 없었다. 비로소 짚신을 고처서 수선하여 걸어갔다. 마을 앞에서부터 시내를 돌아 들어갔다. 몇 걸을 가지 않아 곡백담에 닿았다. 갑자기 특이한 봉우리가 보이는데 죽순이 처음 나오는 것처럼 천길 우뚝 솟은 모양이 곧아 너무 기이했다. 

     아래에는 맑은 못이 맑은 못이 있고, 맑은 못 가와 위에는 돌이 희다. 물은 평평하게 펼쳐져 흘러가고 물고기 수십 마리가 아름답게 보였다. 이곳으로부터 산이 한 번 돌고 물이 한 번 굽으면 돌이 한번 기이함을 드러내었다. 얕은 못이 되고 깊은 초록빛 못이 되어 있다. 물은 발이 되고 내뿜는 폭포가 되고 누워 흐르는 폭포가 되었다. 너럭바위가 있고 겹겹 절벽도 있어 앉아서 구경할만하다. 처음에는 두루 다 셀 수가 없었다. 이것은 오히려 설악산의 얕은 경치일 뿐이다. 그 수석의 웅장함은 이미 사람의 가슴속을 상쾌하게 하였다.

     30리를 가자 모두 돌길과 위태로운 언덕이어서 부여잡거나 등지거나 안으며 발을 포개고 지나갔다. 그러므로 잔도에 등지고 돌고 안고 돌아간다는 이름이 있다. 돌길이 다하자 또 높은 고개에 닿았다. 고개가 끝나자 비로소 산이 열리고 골짜기가 넓어졌다. 마을에 서너 집이 있는데 시내 건너편에서 처음 고개 마루에서 인가에서 연기가 피어 오르는 것을 바라보니 황홀하여 신선이 사는 별세계였다.

     또 시내를 따라 5리를 가 심원사에 도착했다. 앞 봉우리는 자못 기이하고 높았다. 시냇물은 세차게 흐르면서 맑아 밤에는 소리가 들을 만하다. 심원사로부터 동쪽으로 겨우 몇 리 가자 김삼연(金三淵)의 정사에 닿았다. 기이하게 직서루에서 보면 한 줄기의 산등성이 비껴 펼쳐져 있는데, 마치 짐승이 웅크리고 앉은 것 같고, 날짐승이 돌아보는 것 같고, 사람이 갓과 면류관을 쓰고 걸어가는 것 같아, 그 모양은 백 천 가지였다. 빛깔은 또한 희고 깨끗했다. 밤의 밝은 달 같아 싸라기눈이 내린 아침과 같아 속세의 기운이 한 점도 없었다. 이런 곳을 얻어 살게 되면 지조 굳은 사람이 될 것임을 또한 알겠다.

     또 시내를 따라 1리 쯤 올라가자 유홍굴에 닿았다. 굴에는 말할 만한 기이한 경치는 없었다. 특별히 하나의 기울어진 돌이 반쯤 굽어 있어 감실을 이루었는데, 그 가운데에 몇 사람이 들어가도 받아들일 만하다. 옛날 유송당(兪松塘)이 이 산을 유람했는데 당시에는 쉴 만한 절이 없어 이 굴에서 묵었기 때문에 이것으로 이름 하였다.

     굴을 거쳐 오른쪽으로 한 줄기 가파른 비탈길을 돌아 십이폭동에 들어갔다. 이 시내와 바위의 경치는 곡백담과 비슷하였다. 더욱 맑고 밝았으며, 좌우의 설봉(雪峰)은 삼연정사에서 본 경치와 비슷하였으나 더욱 기이하고 웅장했다. 간간이 가파른 산이나 절벽이 있어 모여 솟거나 겹쳐 있었다. 나무는 모두 단풍나무와 노송나무인데 바야흐로 가을이라 선홍색으로 마치 그림 병풍을 꾸며 놓고 비단 병풍을 늘어놓은 것 같았다. 붉게 빛나는 것이 특별히 사람으로 하여금 놀라게 할 만하고 기뻐하게 할 만하였다. 매번 앉을 때마다 돌아보느라 차마 떠나지 못하였다. 이 골짜기에 들어와서 수십 리 사이를 오르내리면서 해가 보이지 않은 적이 많았다. 

     늦어서야 12폭에 도착하였다. 12폭은 모두 위쪽 폭포와 아래쪽 못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물이 제멋대로 세차게 흘러내려 형세가 격하고 소리가 웅장했다. 제4폭 이상은 폭포 세 개 폭포가 서로 이어져 있어 물이 베와 같았다. 가운데 좁은 곳은 통이 되어서 물이 못으로 떨어지는데, 그 빛이 바로 검어서 깊이를 헤아리기 어렵다. 제1폭은 좌우 두 줄기로 흐르는데, 오른쪽 물줄기는 길이가 수 백 척이고 왼쪽 물줄기는 오른쪽에서 3분의 1을 감한 길이였다. 그 사이가 또한 수십 보가 되지 않아 쌍 무지개가 서로 마주하여 햇빛으로 휘황찬란하였다. 아래에 돌이 모두 미끄러워 다가가 볼 수가 없었다. 오른쪽 가에는 앉을 만큼 조금 평평한 바위가 있었다. 바라보니 폭포와 거리가 멀었고, 날리는 물방울이 서늘하고 공중으로 안개가 질펀하여 입고 있는 옷을 적실 정도였다. 비록 그 기이한 경치를 사랑하여 배회하며 떠나가기 어려웠지만 너무 추워서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폭포 왼쪽에서 남쪽 벼랑을 올라갔다. 또 내려가서 상류를 따라서 갔으나 길이 끊어져서 찾을 수가 없었다. 오래도록 방황하다가 문득 시내 위쪽을 보니 바위에 포개진 돌이 있는데 마치 뜻이 없지 않은 것 같았다. 따라온 스님이 이것은 입정(入定)하기 위하여 앞에 오는 스님들이 오가며 놓은 돌인데 길 표시로 삼은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가는 길이 의심스런 곳은 번번이 모두 돌이 있어서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더욱 가파르고 험하여 우거진 초목을 헤치고 벼랑의 돌을 부여잡고 지팡이에 기대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한 후에야 겨우 고꾸라지는 것을 면할 수 있었다. 산수에 고아한 뜻을 두고 튼튼한 다리를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비록 오고 싶어도 불가능할 것이다.

     20리를 가니 항상 깊은 산과 어지러운 숲 가운데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해가 지려는 기색이 이미 어둑어둑 일어났다. 나오는 곳을 몰라 한창 근심하고 두려워하는데 갑자기 높은 산봉우리 사이에 작은 암자가 은은히 보였다. 깨닫지 못하는 사이 마음과 눈이 모두 마치 옛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밝아졌다. 암자에 도착하니, 암자는 비었으나 불이 아궁이에 있고 향이 불감에서 타고 있어 스님이 나간 지 또한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암자 이름은 봉정이고 설악산의 9/10 높이에 있다. 우러러보아 왔던 여러 산이 모두 그 꼭대기를 어루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뒤에 있는 봉우리를 비교해보니 더욱 높았다. 이곳에 도착하니 또한 몇 길 높이의 돌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암자가 높이 있음을 헤아려 알 수 있었다.

     처음 도착했을 때, 숲과 산이 고요하였다. 한밤중이 되자 바람이 크게 일고 온갖 구멍이 모두 소리를 내니 바위와 골짜기가 진동하였다. 그러나 하늘빛은 청명하였다. 위와 아래가 모두 반드시 이와 같지는 않을 것이니, 대개 또한 처한 지대가 높고 바다 바람이 격렬하였다.

     아침에 봉정암으로부터 왼쪽으로 탑대에 올라가니 큰 바위가 있었다. 그 위에 포개진 탑이 있는데 마치 부도와 같았다. 스님이 석가의 불사리가 이곳에 보관되어 있다고 말 하였다. 돌아서 오른쪽으로 향하니 더욱 높은데 앞이 확 트였다. 푸른 바다를 바라보니 아득하여 끝이 없었으니 또한 하나의 장관이었다. 

     이곳으로부터 절벽을 부여잡고 5, 6리 내려가니 조금 평평한 곳에 도착했다. 바위벼랑과 천석의 경치는 또한 12폭의 하류보다 못하지 않았다. 또 20리에 폐문암에 닿았는데, 이 골짜기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양쪽 벼랑이 깎은 듯이 서 있고 가파르게 우뚝 솟아서 마치 빗장친 문과 같았으니 속세와 한계를 짓는 것 같았다. 

     폐문암으로부터 오른쪽으로 험준한 봉우리를 넘으니 오세암이었다. 기이하고 빼어난 산봉우리는 삼연정사에서 보는 경치보다 더욱 뛰어나다고 한다. 그러나 비를 만나 낭패하여 찾아보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 시내를 따라 내려가니 다시 유홍굴과 만났다. 유람하는 일은 또한 여기에서 끝났다.

     무릇 봉정암을 유람하는 자가 유홍굴로부터 왼쪽으로 가면 폐문암을 먼저 보고 12폭을 뒤에 본다. 유홍굴로 오른쪽으로 가면 12폭을 먼저 보고 폐문암을 뒤에 본다. 유람하는 순서를 말하는 것이 대개 이와 같다.

     설악산은 웅장하게 관동과 관서에 걸쳐 있다. 북쪽은 양양이고 남쪽은 인제이다. 양양의 경치는 식당폭과 계조굴을 말하지만 내가 아직 보지 못한 것들이다. 인제의 경치를 말하는 것은 곡백담, 심원사, 삼연정사, 12폭, 봉정암, 폐문암인데 모두 내가 이미 자세히 본 것들이다. 만약 봉우리와 천석의 기이함을 논하자면 12폭이 최고이다.

     나는 명산을 많이 보았다. 오직 금강산이 이 산과 비슷하다. 기타 다른 산은 설악과 맞설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러나 금강산의 명성은 중국까지 퍼져 이 산의 경치는 비록 우리나라 사람들이라 하더라고 아는 사람이 적으니, 이 산은 실로 또한 산 가운데 은자(隱者)이다. 그러므로 나는 설악의 경치을 이와 같이 자세히 서술하여, 장차 향리의 유람하는 벗들에게 자랑하여 보여주고, 또한 세상에 이름난 산수를 찾아다니며 아직 설악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주려 한다. 

     나와 함께 유람한 사람은 종인(宗人-한 조상에게서 태어난 자손들 가운데 비교적 촌수가 먼 일가)으로 수보가 그의 자이며, 이종 동생 임군은 도언이 그이 자이다. 사촌 형제의 아들 이군은 진백이 그이 자이며, 따라온 스님은 성문과 의준이다. 

     

    『耐齋集』




    「遊雪嶽記」


    由麟蹄縣東北行三十里. 抵三叉嶺. 旣踰嶺則谷甚深. 兩山壁立. 樹密而林鬱. 自下視天. 僅如匹練然. 日月至子午而始光照焉. 眞所謂子午谷也. 稍下而平. 溪水漸大. 往往有蒼然之石. 未數里. 値大溪水. 西流而合. 卽曲百潭下流也. 岸皆白礰平地. 皆千章之松. 蒼老鬱然. 松盡而始有田. 田上八九家. 聚成一村. 卽亂溪驛也. 又行十里餘. 渡溪得葛驛村. 村居益寥落而皆板屋. 前通嶺路. 商賈不絶. 而尙能淳欵. 不似路傍人風也. 過此則逕多嶄巖之石. 不可以馬. 始理屐而行. 自村前循溪而入. 未數步. 得曲百潭. 忽瞻特峯. 矗矗然千丈直聳. 如竹笋之初生. 奇已甚矣. 其下澄潭. 潭上白石. 水平鋪而流. 有魚數十. 方洋洋而遊. 自是山一回水一曲. 石一逞奇. 而爲淺潭爲深綠之潭. 爲水簾爲噴瀑爲卧流之瀑. 爲盤石爲疊壁. 可坐而可玩者. 殆不可周數也. 此猶雪嶽之淺境耳. 其水石之壯. 已爽人襟抱矣. 行三十里. 皆石路危崖. 攀緣負抱. 重足而過. 故棧有負回抱回之名焉. 石路竆而又得一峻嶺. 嶺竆而始得山開而洞豁. 有村三四家. 隔溪而居. 初自嶺上. 望有人煙. 怳然以爲僊源別界也. 又循溪行五里. 得深源寺. 前峯頗奇峻. 溪流激激然淸. 夜尤有聲可聽. 由寺而東僅數里. 得金三淵精舍. 其異者直書樓. 有峯一帶橫開. 如獸蹲. 如禽顧. 如人冠冕而行. 其狀百千. 色又皎潔. 如明月之夜. 如微霰之朝. 無一點塵埃氣. 得此而居者. 亦知爲高人也. 又循溪而上里餘. 得兪泓窟. 窟無異勝可言. 特一偃石半俯而成龕. 其中可容數人. 昔兪松塘遊此山. 而時無寺可休. 乃經宿於窟. 以是名云. 由窟而右轉一危磴. 入十二瀑洞. 其溪石之勝. 類曲百潭. 而愈益淸瑩. 左右雪峯. 類三淵舍所見. 而愈益奇壯. 間有高嶂絶壁. 攢聳重疊. 樹皆楓栝. 方秋鮮紅. 如糚畫障而列繡屛. 炫煥詭特. 令人可驚而可喜. 每坐處. 眷顧不忍去. 入此洞上下十數里之間. 失晷爲多也. 晩乃到十二瀑. 皆上瀑下潭. 橫放峻盪. 勢激聲壯. 第四瀑以上. 三瀑相連. 流如布練. 中狹成槽而墜之潭. 其色正黑. 不可測其深也. 第一瀑. 左右雙流. 右長幾百尺. 左長三減其一. 間又不能數十步. 而雙虹相對. 耀日炫彩. 下石皆滑. 不可迫視. 右邊有巖稍平可坐. 而望去瀑遠. 飛沫凄凄. 漫空霧靄. 尙能潤人衣裾. 雖愛其奇徘徊難捨. 而過淸不可久也. 由左瀑而南登崖. 又下循其上流而行. 路斷不可尋. 彷徨者久之. 忽見溪上. 巖有累石. 若不無意者. 從僧言此入定僧前往還時所置. 以爲路標也. 由是以往路疑處. 輒皆有石. 賴以不迷. 然益峻險披薈翳. 攀崖石扶杖愼足. 而後僅免顚仆. 非雅意山水有濟勝具者. 雖欲至而不能也. 行二十里. 尙不離乎竆山亂林之中. 而暝色已蒼蒼然起矣. 方憂恐不知所出. 而忽有一小菴隱見於巖巒間. 不覺心眼俱明如逢故人矣. 至菴. 菴空火在竈. 香炷佛龕. 知僧去亦不多時也. 菴號鳳頂. 高得雪嶽十之九. 諸山之前所仰而視者. 皆若撫其巓. 後峯較尤高. 而至此則亦不過數仞石耳. 其巍然可測而知也. 初至時. 林巒寂然而已. 及夜半. 風大作萬竅俱號. 巖壑爲動. 然天色淸明. 上下未必如此. 蓋亦處地高. 海風相激而然也. 朝自菴左登塔臺有大石. 其上累塔如浮屠. 僧云釋迦佛舍利藏於是. 轉而向右. 益高而豁前. 望滄海迷茫無際. 亦一壯觀也. 自此攀壁而下五六里. 至稍平處. 巖壁泉石之勝. 亦不下於十二瀑之下流. 又二十里餘. 得閉門巖. 最爲此洞佳處. 兩壁削立. 聳峙如門關然. 若與塵世限矣. 自巖而右. 踰一峻巘. 爲五歲菴. 峯巒之奇秀. 盡三淵舍所見而較優云. 逢雨狼狽. 不可歷尋爲可恨也. 循溪而下. 復與兪泓窟會. 遊事亦至此而竆矣. 凡遊鳳頂者. 由窟而左. 則先閉門而後十二瀑. 由窟而右. 則先十二瀑而後閉門. 言遊覽次第. 大抵如此. 雪嶽之爲山. 雄跨關東西. 其陰則襄陽. 其陽則麟蹄. 襄之勝. 稱食堂瀑戒祖窟. 而余未見者. 麟之勝稱曲百潭, 深源寺, 三淵精舍, 十二瀑, 鳳頂菴, 閉門菴. 而皆余之所已詳者. 若論其峯巒泉石之奇. 十二瀑爲最也. 余見名山多矣. 惟金剛可與此山相伯仲. 其他無有能與抗者. 然金剛名播中華. 而此山之勝. 雖東人. 知者蓋寡. 則此山實亦山之隱者也. 故余詳敍其勝如此. 將以誇視鄕里之朋遊. 而又開夫世之求名山水而未盡知者. 同遊者. 宗人受甫其字. 姨弟任君道彦其字. 從姪李君振伯其字. 從僧省文義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