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장암 스님 자계에게 준 서(贈三藏菴上人慈洎序)
페이지 정보
본문
▪ 삼장암 스님 자계에게 준 서(贈三藏菴上人慈洎序)
어우당(於于堂) 유몽인(柳夢寅)
옛날 간이옹(簡易翁) 최립(崔立)은 나에게 말하기를,
세상에서 금강산을 천하에서 제일로 아름다운 산이라고 말하지만 아마도 그렇지 만은 아닌 것 같다. 무릇 산이라는 것은 바위도 있고 흙도 있고 크고 깊고 넉넉한 중에 종종 기이한 절경이 있다. 이 때문에 그 귀하게 기이함을 여긴다. 진실로 이 산은 단지 기이한 절경만이 모여 산 전체가 되고 동서로 수십에서 백 리에 불과하다. 문장으로 비유하자면 고인의 기어(奇語)를 모아 소편(小篇)이 되고 선집(選集)의 산이라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지금 내가 보니 이 말은 비록 대단하지만 그 견해는 작다. 나는 일찍이 함경도, 평안도, 강원도, 경상도 등의 땅을 두루 유람하였다. 그 산천의 맥락들을 자세히 알고 있다. 우리나라는 외지고 작아 들을 그어 고을을 나누었기에 자못 협소하다. 금강산은 동쪽으로 고성(高城)이고 서쪽으로 회양(淮陽)에 그친다. 두 고을 사이에 기이한 바위가 전부 모여 작은 산을 이루었다. 그 밖의 동서남북 백여 리에는 기이한 절경이라 할 만한 것이 전혀 없다. 그러나 산의 지맥(支脉)은 한 나라의 절반에 사방으로 분산되어 있으니, 강물이 바다로 흘러들어가 모이고 별이 북극성을 향하듯이 이 산을 향해 뻗쳐있다고 할 수 있다.
북측으로는 철령이 가로질러 있고 함관(咸關)의 요덕(了德)까지 이어지는데 요덕의 서쪽으로 높은 산과 깊은 골짜기가 깊고 삼수(三水)와 영원(寧遠)을 거쳐 묘향산에 바로 닿는다. 그 사이에 승려는 사찰을 지을 수 없고 백성은 집과 농사지을 수 없어 험하고 좁은 공터만이 광활하다. 남측으로는 백 리 길도 안 된다.
거리에 한계령과 설악산, 미수파(彌水坡)와 천후산(天吼山)이 있고 또 백 리 길도 안 되는 거리에 오대산(五臺山) 대관령이 있고 구불구불 태백산과 조령(鳥嶺), 속리산을 거쳐 두류산까지 이어진다. 자손 산맥으로 흩어져 가야산과 계룡산까지 뻗어 이어지는 것이 어찌 한정이 있겠는가.
서측은 낭천(狼川), 인제(麟蹄), 양구(楊口), 춘천(春川) 지역으로, 산에 숲은 없고 모두 바위인데 폭포는 여산(廬山)의 배이며 기이한 봉우리는 천태산을 닮아 이루 다 기록할 수 없다.
곧장 달리면 청평산이 되고 따로 뻗어나가 천마산과 성거산이 된다. 모두들 소금강(小金剛)이라 부른다. 실제로는 진짜 금강산의 지맥임을 알지 못한다. 그 동쪽으로는 큰 바다가 있으니, 이른바 원수대(元帥臺), 총석정(叢石亭), 군옥대(群玉臺), 만경대(萬景臺), 의상대(義湘臺), 하조대(河趙臺), 경포대(鏡浦臺), 삼일포(三日浦), 선유담(仙遊潭), 영랑호(永郞湖), 화진포(花津浦)가 모두 바닷가의 빼어난 돌과 맑은 모래로 이루어져 다 옥과 같이 진귀하고 기괴한 형상이다. 바다로 들어가면 십주 삼산(十洲三山)이 아스라하게 있으니 도록(圖錄)에 기록되어 있다.
금강산 아래 북남서동 수천 리 간에 비록 큰 지역은 도(道)라 하고 작은 지역은 읍(邑)이라 한다. 모두 사람들이 구분한 것이다. 하늘이 안개처럼 펼쳐서 베풀어 놓은 것은 모두 금강산에서 연원한다. 저 묘향산과 두류산의 승경은 금강산과 견주어 보면 단지 하나의 여대(輿儓)일 뿐인데도 각기 뿌리가 서로 구불구불 이어져 000 동국에서는 웅장하다. 어찌 금강산이 천하제일로 금강산이 동서로 점거한 것이 단지 두 고을에 그칠 따름이겠는가. 동국의 산천 이름은 산인(山人)과 승려에게서 나온 것이 많다. 혹 산천의 일면 내지 반면만 보고 나누어 구별하였으니, 큰 금강산의 전체가 온 나라의 절반에 두루 뻗어 있는 것은 전혀 알지 못하였다.
저 태산은 얼마나 큰가. 岱宗夫如何
제나라와 초나라에 걸쳐 가없이 푸르구나 齊魯靑未了
라고 하였다.
지금 금강산으로 하나를 들면 셋을 알 수 있으니, 제나라와 초나라에 걸쳐 있는 태산에 가깝지 않겠는가. 이제부터라도 동서남북의 산을 모두 금강산에 통합하고, 산의 이름을 봉우리 이름으로 바꾸어 한계봉, 설악봉, 오대봉, 태백봉, 두류봉, 청평봉, 천마봉, 성거봉, 묘향봉이라 부르는 것이 옳다. 예부터 ‘금강산 일만 이천 봉우리’라 불렀지만, 이 허다한 산이 모두 만 이천 봉 중에 모조리 들어가서 높고 낮으며 멀고 가까운 봉우리가 되지 않는 줄 어찌 장담하겠는가.
요즘의 시속에서는 이를 살펴 알지 못한다. 문장에 비교하자면 「우공구주(禹貢九州)」가 한 편이요, 「홍범구주(洪範九疇)」가 한 편이요, 한유의 「남산시(南山詩)」 오십 운이 혹 한 편이요, 구양수의 「취옹정기(醉翁亭記)」 이십 운이 또 한 편인데, 이제 만약 이 작품들을 나누어 떼어 놓고 어찌 문장이 기이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나는 그 때문에 “최간이(崔簡易)의 선집의 산이라는 주장이 그 말은 비록 대단하지만 그 견식은 작다.”고 한 것이다. 아. 그의 문장 또한 이와 같을 것이다.
혹자가 말했다.
“금강산이 비록 동국의 제일가는 산이라 일컬어지지만 예부터 인재 하나도 내지 못했다. 인재는 두류산 아래에서 많이 나왔으니 두류산을 제일이라 일컫는 것이 마땅하다.”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렇지 않다. 온갖 나무의 꽃이 뿌리에서 나지 않고 가지에서 나듯, 두류산 또한 금강산의 가지임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지금 스님이 금강산에 몇 년째 있으면서 멀고 가까운 여러 산에 지팡이 짚고 가지 않은 곳이 없으면서도 유독 이 점에 대해 몽매한 것은 어째서인가.
예전에 어떤 사람이 자기의 아이를 잃어버리고 사방으로 찾아다녀도 찾지 못했다. 혹자가 웃으며 말하길 ‘아이는 너의 등에 업혀 있는데 어디에서 찾고 있길래 찾지 못했다는 것이냐.’라 하였다.
지금 스님이 금강산에 머물면서도 금강산의 전체 모습을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아이를 업고 있으면서 아이를 찾아다닌 것과 다름이 없지 않은가. 한번 비로봉과 제일봉에 올라 내려다보라. 이 산의 맥락은 너무 뚜렷해 두 눈에 보이지 않을 수 없다.내 말이 허언은 아니다.
『於于集』
「贈三藏菴上人慈洎序」
昔者簡易翁崔立之謂余曰. 世稱金剛山天下第一佳山. 殆不然. 凡爲山或石或土. 雄深渾厚. 往往有奇絶處. 所以貴其奇也. 此山只聚奇絶爲全軆. 東西不過數十百里. 譬猶爲文章. 集古人奇語爲小篇. 眞箇抄集之山也. 今以余觀之. 其言雖大. 其見者小也. 余嘗遍遊咸, 平, 江, 慶諸道之地. 其山川脉絡. 細知之矣. 我國偏小. 畫野分州頗迮隘. 金剛爲山. 東高城西淮陽而已. 兩邑之間. 全聚奇石爲小山. 其外東西南北百許里. 皆無奇絶可稱. 而支脉四散於一國之半. 朝宗星拱于此焉. 其北則橫截爲鐵嶺. 綿延於咸關了德. 而了德之西高山濬壑
通三水寧遠. 直接于妙香. 其間僧不能刹. 民不能宅又田. 曠曠爲險隘之空墟. 其南則不能百里. 爲寒谿爲雪嶽爲彌水坡爲天吼山. 又不能百里. 爲五㙜山大關嶺. 逶迤至太白, 鳥嶺, 俗離山而窮於頭流山. 雲仍之派散而之伽倻, 鷄龍者何限. 其西則狼, 麟, 楊, 春之境也. 皆山無麓木全石. 飛瀑倍廬山. 奇峰像天台. 不可勝錄. 直走而爲淸平. 別騖而爲天摩, 聖居. 人皆稱小金剛. 而實未知眞金剛之孽枝. 其東則大海也. 所謂元帥叢石羣玉萬景義尙河趙鏡浦之亭㙜. 三日仙遊永郞花津之湖並海之秀石明沙. 皆瓊玖恠狀. 入海而爲十洲三山在縹緲之中. 圖錄所記也. 金剛之下北南西東數千里間 雖大而道. 小而邑. 皆人之所區分. 而天之施設霞布▦錯者. 盡源於金剛. 彼妙香, 頭流之勝. 視金剛特一輿儓. 而猶各根蟠▦▦▦. 東國稱其雄. 豈以金剛天下之甲. 東西所據只兩邑而已乎. 東國山川之名. 多出於山人釋子. 或見其一面半面. 分而別之. 殊不知大金剛全軆彌亘於一國之半. 杜子之詩曰. 岱宗夫如何. 齊魯靑未了. 今以金剛反其三隅. 則不幾於齊魯之泰山乎. 繼自今宜總東西南北之山. 皆統於金剛. 而變山號爲峯名. 如曰寒豀峰曰雪嶽峰曰五㙜峰曰太白峰曰頭流峰曰淸平峯曰天摩峯曰聖居峯曰妙香峯可也. 古稱金剛萬二千峯. 安知此許多山不盡入於萬二千之中. 爲高下遠近之峯. 而今之俗未知省也. 比之文章. 禹貢九州爲一篇. 洪範九疇爲一篇 南山詩五十或爲一篇. 醉翁亭二十也爲一篇. 今若分而離之. 夫豈曰文章之奇乎. 余故曰. 崔簡易抄集山之論. 其言雖大. 其見者小也. 惜乎. 渠之文章. 亦猶是也. 或曰. 金剛雖稱東國第一山. 而自古不産一人才. 人才之出. 多集於頭流之下. 宜稱頭流爲第一. 余曰. 不然. 百木之花. 不生於根而生於梢. 頭流爲金剛之梢無疑也. 今上人在金剛幾年. 遠近諸山. 杖錫無不及. 而獨昧於此何耶. 昔有人失其兒. 四求不得. 或笑曰. 兒在爾背上. 何求而不得. 今上人處金剛. 不覺金剛之大軆. 得無異夫負兒而求兒者乎. 試登毗盧第一峰俯視之哉. 玆山脉絡. 了了不廋於兩目. 余言之不誣矣.
-
- 이전글
- 구룡연〔九龍淵〕
- 24.02.06
-
- 다음글
- 동방석각(東方石刻)
- 24.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