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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악산 시문

    경종 2년 임인(1722) 2월 21일(병자) 세제 시강원 진선 김창흡의 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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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종 2년 임인(1722) 2월 21일(병자) 세제 시강원 진선 김창흡의 졸기 



     세제 시강원(世弟侍講院) 진선(進善) 김창흡(金昌翕)이 졸(卒)하였다. 김창흡의 자(字)는 자익(子益)이고, 호(號)는 삼연(三淵)으로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의 아들이다. 

     타고난 자질이 아주 뛰어나 젊은 날 협기(俠氣)를 드날렸으며 약관(弱冠)에 진사(進士)가 되었다. 일찍이 장자(莊子)의 글을 읽다가 마음속에 황홀하다 깨달은 바가 있어 이때부터 세상일을 버리고는 산수 사이에 방랑하며 고악부(古樂府)의 시도(詩道)를 창도(唱導)하여 중흥조(中興祖)가 되었다. 또 선가(仙家)‧불가(佛家)에 탐닉하여 오랫동안 스스로 돌아오지 않았데, 가화(家禍)를 당하자 비로소 그 형 김창협(金昌協)과 함께 학문에 종사하여 그 견해가 때로 크게 뛰어났다. 

     만년에는 설악산(雪嶽山)에 들어가 『주역』을 읽었는데 스스로 정자(程子)‧주자(朱子)가 이르는 곳이라면 또한 이를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성품이 과격하다. 무릇 시론(時論)에 대하여 혹은 팔을 걷어붙이고 장서(長書)를 지어 당로(當路)를 알척(訐斥)하여 말이 걸핏하면 다른 사람들의 선조(先祖)를 범하여 자못 처사로서 의논을 함부로 한다는 이름을 얻어 사람들이 이를 많이 애석하게 여겼다. 

     조정에서 유일(遺逸)로 여러 차례 헌직(憲職)을 제수하였으나 나가지 않았다. 이때에 이르러 졸하니, 나이 70세였다.


    『景宗修正實錄』 



    世弟侍講院進善金昌翕卒 昌翕字子益, 號三淵, 領議政壽恒子也 天資卓犖, 少日俠氣翩翩, 弱冠成進士 嘗讀莊子書, 怳然有契, 自是遺棄世事, 放迹山水間, 倡爲古樂府, 詩道爲之中興 又耽嗜仙釋, 久不自反, 及遭家禍, 始與兄昌協, 從事於學, 其見解往往超詣 晩入雪嶽山, 卜居讀《易》, 自言: "若程、朱見到處, 則亦能見到" 云 然其性近於乖激, 凡於時論, 攘臂作長書, 訐斥當路, 語輒犯人先故, 頗得處士橫議之名, 人多惜之 朝廷以遺逸, 屢拜憲職, 不起, 至是卒, 年七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