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팽윤
페이지 정보
본문
○ 낙산사제영(洛山寺題詠) 희암(希菴) 채팽윤(蔡彭胤) 128)
푸른 바다 한쪽에 층진 봉우리 꽂혔는데 滄溟一面揷層峰
소나무, 계수나무, 우거져 자줏빛 녹색 이네 松桂陰陰紫翠濃
난간을 바라보니 규벽 움직이는데 試看欄頭奎璧動
누전의 상방에서 또 만나 뵈네 上房樓殿亦遭逢
『希菴集』
-----------------
128) 채팽윤(1669,현종10∼1731,영조7)의 본관은 평강(平康)이고 자는 중기(仲耆), 호는 희암(希菴)·은와(恩窩)이다. 1687년(숙종 13) 진사가 되고, 1689년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검열을 지낸 뒤 그해 사가독서(賜 暇讀書)하였다. 호당(湖堂)에 선임된 자들과 승정원에 나아가 시부를 지어 포상을 받았다. 그가 궐내에 노닐 때면 언제나 숙종이 보낸 내시가 뒤따라 다니며 그가 읊은 시를 몰래 베껴 바로 숙종에게 올리게 하리만큼 시명(詩名)을 날렸다.
1691년 세자시강원의 벼슬을 거쳐 1694년 정언(正言)에 있으면서 홍문록에 올랐으나, 이이(李珥)·성혼 (成渾)의 문묘출향(文廟黜享)을 주장한 이현령(李玄齡)의 상소에 참여했다 하여 삭제되었다.
1722년(경종2) 2월 양양부사로 도임하여 선정을 베풀어 선정비가 있다. 그 후 벼슬에서 물러나 제자들 에게 학문을 강론하며 지내다가 1724년 영조의 즉위로 승지에 제수되었다. 이듬해 도승지·대사간을 거쳐예문관제학에 임명되었다. 1730년(영조 6) 병조참판·동지의금부사·부제학을 역임하였다. 어려서부터 신동 이라 불렸고, 특히 시문과 글씨에 뛰어났다. 저서로 『희암집』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