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용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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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산사(洛山寺) 호곡(壺谷) 남용익(南龍翼) 137)
거울같이 맑은 물결이 없어 기상은 한가롭고 鏡水長波氣像閑
하조대는 저 멀리 아득하네 河臺極目渺茫間
종용과 활원을 다 갖추어 從容闊遠兼斯二
우주의 기관은 낙산이 으뜸일세 宇宙奇觀最洛山
『壺谷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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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남용익 (南龍翼)1628(인조 6)~1692(숙종 18).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운경(雲卿), 호는 호곡(壺谷). 아버지는 부사 득붕(得朋)이다. 1646년(인조 24) 진사가 되고, 1648년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시강원설서·병조좌랑·홍문관부수찬 등을 지냈다. 1655년(효종 6) 통신사의 종사관으로 일본에 다녀와 사가독서(賜暇讀書)했다.
1656년 문과 중시(重試)에 장원하여 좌참찬·예문관제학 등을 지냈다. 1683년(숙종 9) 예조판서, 1687년홍문관과 예문관의 대제학을 지낸 뒤 이조판서가 되었다.
1689년 숙종이 장희빈의 아들을 세자로 삼으려하자, 서인이 이를 반대하다가 남인에게 정권을 빼앗긴 기사환국으로 명천에 유배당하여, 그곳에서 죽었다. 저서로는 자신의 시문집인 〈호곡집〉과 신라시대부터 조선 인조대까지의 명인 497인의 시를 모아 엮은 〈기아 箕雅〉와 〈부상록 扶桑錄〉이 있다. 글씨로는 〈예판남선비 禮判南銑碑〉·〈도검제남은표 都檢制南誾表〉가 있다. 시호는 문헌(文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