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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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유헌(臥遊軒-양양의 관아) 송재(松齋) 이우(李堣) 139)
영공(嶺空) 서쪽서 당기고 바다는 앞에서 당기는데 嶺空於西海控前
누대에서 노래 부르고 피리 불며 노년을 보내네 樓臺歌吹度長年
섣달 거센 바람 오봉의 눈 탐하는데 臘深風嗇五峯雪
밥 짓는 새벽 온 마을 연기가득하네 炊曉村橫百里烟
높은 파도 북쪽에서 밀려와 지축을 흔들고 鯨浪北來坤動軸
장기(나쁜 기운) 품은 구름 동쪽에서 걷혀 달 하늘에 떴네 瘴雲東捲月生處
낙산의 절은 임금이 다녀가신 곳 洛山紺宇宸遊處
온 골짜기 솔바람소리 샘물소리 낸다네 萬壑松濤殷石泉
『江原道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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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이우(1469,예종1~1517,중종12)의 본관은 진보(眞寶)이고 자는 명중(明仲), 호는 송재(松齋)이다. 조카가 이황(李滉)이다. 1498년(연산군 4)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권지부정자로 기용된 뒤 검열·대교·봉교를 지냈다. 1506년 동부승지로 있을 때 중종반정이 일어나자 이에 가담하여 정국공신(靖國功臣) 4등으로 청해 군(靑海君)에 봉해졌다.
139) 그 뒤 우부승지·진주목사·동지중추부사·호조참판·오위도총부부총관·형조참판·강원도관찰사 등을 지냈다.
1514년에 중종반정 당시 윤장(尹璋)·조계형(曺繼衡) 등과 함께 입직승지(入直承旨)로서 공을 세운 것처럼
가장했다는 김은(金銀)의 상소로 녹권(祿券)을 빼앗기고 삭직되었다. 이듬해 안동부사로 기용되었다. 시문에 뛰어나 강원도관찰사로 있을 때 관동지방을 유람하면서 지은 시가 『關東行錄』에 전한다. 예안 청계 서원(淸溪書院)에 배향되었다. 저서로 『송재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