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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 6백년 미래를 잇는 양양문화원

    낙산사 시문

    유희경

    페이지 정보

    조회 440회

    본문

     

    ○ 양양도중(襄陽途中)     촌은(村隱) 유희경(劉希慶) 159)


    유희경은 제복장(祭服匠)으로 호는 촌은(村隱)이다. 일찍이 이이첨(李爾瞻)과 사귀었는데, 뒤에 이이첨이 모후(母后)를 폐하자는 의론을 주장하자 이내 절교하였다. 그는 양양 도중(襄陽途中)이라는 시가 있는데 다음과 같다.


    산은 비 기운 머금고 물은 연기를 머금었는데 山含雨氣水含煙 

    청초호 백로 졸고 있네 靑草湖邊白鷺眼

    해당화 길을 따라 내려가니 路入海棠花下去

    꽃잎이 채찍에 걸려 떨어지네 滿地香雪落揮鞭


    『靑莊館全書』 卷之三十五 淸脾錄 卷之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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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9) 유희경(1545-1636)의 본관은 강화(江華)이고, 자는 응길, 호는 촌은이다. 촌은의 부친은 품계로 종칠품인 동계공랑이었다는 것만 전할 뿐, 그의 자세한 가계는 알 수 없다. 서경덕(徐敬德)의 문인이었던 남언경(南彦 經)에게 문공가례를 배우게 되었다. 국상 때나 혹은 사대부가에서 상을 당하면 촌은을 부르곤 했으므로당시 "양예수(楊禮壽)가 뒷문으로 나가면, 유희경(劉希慶)이 앞문으로 들어온다"라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촌은은 이처럼 상례에 밝아 치상에 불려 다닌 외에도 곧은 절개로 칭송이 있었고, 임란 때는 의병에 참여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시문학에 능해 당시에 쟁쟁한 사대부들과 교류하였다. 촌은은 신분이 미천하여 벼슬에 나가지는 못했는데, 생전에 가의를 제수 받았다. 이것은 대질(80세 노인)로써 얻은 품계인데, 그전에 통정에 해당하는 품계를 받은 적이 있었다.

    광해군 때에 폐모를 상소하라는 이이첨의 청을 물리치고 은거하였다. 저서로 『촌은집』, 『상례초(喪禮抄)』가 있다. 이 시는 양양을 찾아 청초호와 해당화의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느낀 감회를 표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