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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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산사제영(洛山寺題詠) 소하(小荷) 조성하(趙成夏) 248)
낙산사에 비 뿌리는데 落山寺裏雨蕭蕭
불경소리만 쓸쓸히 울리는 구나 貝葉傳經轉寂廖
가을 풀 뜰에 가득 스님 보이지 않는데 秋草滿庭僧不見
누구 꽂아 놓았는지 향불만 타네 誰將一炷佛香燒
자비심 발한 곳 쌍죽(雙竹)이 솟고 慈心發處湧雙竹
법력으로 구슬 두 개 거두었네 法方收時藏二珠
분명 정령(精靈)이 있다면 知是精靈應自在
절 쇠잔해지데는 보시(報施)는 없을까 寺殘堪惜捨施無
『江原道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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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 조성하(1845,헌종11∼1881,고종18)의 본관은 풍양(豊壤)이고 자는 순소(舜韶), 호는 소하(小荷)이다. 병조판서 병준(秉駿)의 아들로 신정왕후(神貞王后) 조씨(趙氏)의 친정 조카이다. 1861년(철종 12)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1865년 이조참의가 되었으나 이후 중용되지 못하고 있다가 민비세력과 결탁, 대원군 실각후 1874년 평안도관찰사가 되었다. 1876년 지경연사(知經筵事)로 특탁(特擢)되고 이어 공조·예조의 판서를 거쳐 세자시강원좌부빈객(世子侍講院左副賓客)이 되었다. 1879년 이조판서, 이어 판의금부사에 임명 되고 1881년 의정부좌참찬에 이르렀다. 저서로 ≷金剛山記≸가 있고 시호는 문헌(文獻)이다.
산사는 비가 오면 적막하다. 비오는 낙산사 법당에 불경소리 울리는데 쓸쓸하고 뜰에는 가을 풀이 가득하여 더욱 외로워 보이는데 스님은 보이지 않는고 법당에 향불만 피어오르는 모습이 허무하여 표현하였다.
두 번째 수는 낙산의 오랜 역사와 유래인 관음사의 친견, 쌍죽의 모습, 수정염주는 모두 불교의 성지인깨달음의 공간이다. 하지만 조선조 말기 불교가 힘을 잃어 쇠잔해져 옛날의 모습을 그리워하며 표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