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효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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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산사 향로봉에서(洛山寺香罏峯)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 63)
무성했던 만물이 근본으로 돌아가니 芸芸物歸根
지는 해는 맑은 경치 펼쳤네 落日展淸眺
바람이 불어 맑은 거문고 울리고 風進淨琴張
높은 산 뾰쪽한데 맑고 흰 달이 작구나 山尖白月小
『秋江先生文集』卷之三, 詩
○양양 바닷가에서(襄陽海邊)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 64)
어촌의 집들 나무껍질로 지붕 덮고 漁家木皮蓋
소금 굽는 장막에는 흰 연기오르네 鹽幕白煙斜
푸르디푸른 빛은 동해의 바닷물이요 重碧東溟水
연분홍 고운 빛은 서안에 핀 꽃이네 輕紅西岸花
둘러선 바위에는 해달이 울고 廻巖鳴海獺
저무는 길에 명사십리는 메아리치네 暮路響鳴沙
산봉우리들 푸름이 다하지 않는데 峰巒靑不盡
만 겹의 산이 눈 앞에 지나가네 萬疊眼中過
『秋江先生文集』卷之二, 詩
○ 해초 스님께 드림 (贈海超)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 65)
푸른 산에 에워싸인 낙산사 靑纏洛山寺
어제 저녁 홀연히 투숙했네 昨暮忽暝投
주지인 지둔스님의 승려들이 主人支遁徒
손님 맞아 갖가지 음식 마련했네 邀客具庶羞
내뱉는 말씀 내 게으름 일깨우니 出言起我懶
맑은 서리 가을 하늘에 걸린 듯 淸霜橫素秋
새벽 종소리 깊이 반성하게 하더니 晨鍾發深省
새벽빛이 벌써 누각에 밝았구나 曙色已明樓
『秋江先生文集』
○ 낙산사에서 성휴 스님께 드림(洛山寺 贈性休)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 66)
나는 강호로 떠도는 나그네 我是江湖客
그대는 불제자의 스승이라오 君爲釋者師
푸른 등불 한밤중에 밝히고 靑燈明半夜
약속대로 불교교리를 말씀하시네 法語果幽期
창밖은 기암절벽이고 囱外奇巖老
뜰 앞에는 잣나무 제격이라 庭前柏樹宜
탕휴가 내 시심 일으켜 湯休起我病
미소 지으며 시 지으라 하네 微笑索題詩
『秋江先生文集』
○ 낙산사(洛山寺) 향로봉(香罏峰)에서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
무성했던 만물이 뿌리로 돌아가니 芸芸物歸根
떨어지는 햇빛에 맑은 경치 펼쳤네 落日展淸眺
바람이 불어 맑은 거문고 울리고 風進淨琴張
높은 산 뾰쪽하여 흰 달이 작구나 山尖白月小
『秋江集』
○ 낙산사에서 성휴 스님께 드리다(洛山寺 贈性休)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 67)
나는 강호로 떠도는 나그네 我是江湖客
그대는 불제자의 스승이라오 君爲釋者師
푸른 등불 한밤중에 밝히고 靑燈明半夜
약속대로 함께 담론하노라 法語果幽期
창밖에는 기암절벽 예스럽고 囱外奇巖老
뜰 앞에는 잣나무 제격이라 庭前柏樹宜
탕휴 스님 내 시심 일으켜서 湯休起我病
미소 지으며 시 지으라 하네 微笑索題詩
『秋江先生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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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남효온(1454년~1492년)의 본관은 의령(宜寜)이고 자는 백공(伯恭), 호는 추강(秋江), 행우(杏雨), 최락당(最 樂堂), 벽사(碧沙)이다. 생육신 중의 한 사람으로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다.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 조신(曺伸), 이윤종(李允宗), 주계정(朱溪正), 안응세(安應世) 등과 사귀었다. 소릉 복위 주장은 세조 즉위와 정난공신(靖難功臣)의 명분을 간접적으로 비판했던 것이었으므로 훈구파(勳舊派)의 미움을 받았다.
이에 세상에 뜻을 두지 않고 전국의 명승지를 두루 찾아다니는 유랑생활로 생을 마쳤다. 죽림칠현(竹林七 賢)을 자처하면서 세상일을 가볍게 여겼다. 사육신(死六臣)의 절의를 추모하고, 그들의 충절이 세상에 전해지지 않음을 염려하여 『六臣傳』을 저술하였다.
「弔義帝文」이 문제가 되어 무오사화(戊午士禍)가 일어났을 때, 김종직의 문인으로 지목되었다. 1504년 연산군의 어머니 윤씨(尹氏)의 복위문제로 갑자사화(甲子士禍)가 일어나자, 소릉 복위를 상소했던 일이 다시 논죄되었다. 고양에 있던 그의 묘가 파헤쳐지고 시체는 양화도(楊花渡) 나룻가에 버려졌으며, 아들 충서(忠恕)도 사형 당했다. 숙종 대에 이르러 함안 백이산(伯夷山) 밑에 서산서원(西山書院)을 세워 원호(元昊)·이맹전(李孟專)·김시습·조여(趙旅)·성담수(成聃壽) 등과 함께 배향되었는데, 이들을 생육신이라 일컫는다. 1782 년(정조 6)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저서로 『추강집』·『秋江冷話』·『師友明行錄』·『귀신론』·『육신전』 등이 있다.
고양 문봉서원(文峰書院)·장흥 예양서원(汭陽書院)·영월 창절사(彰節祠)·의령 향사(鄕祠) 등에 제향 되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64) 양양은 예부터 바닷가의 풍경이 절경이다. 어촌의 촌가는 나무껍질로 지붕을 덮었고 소금 굽는 장막에 흰연기가 피어오르는 표현은 한 폭의 그림처럼 느껴진다. 바다는 푸르고 푸른빛으로 빛나고 해안가의 고운연분홍 꽃이 피어 봄의 흥취를 돋운다. 바위 위에서 해달이 소리 내고 저무는 길에 명사십리는 메아리친다. 푸르름을 드러내는 많은 산들이 눈에 들어오는 관동지방을 유람하며 추강의 심회를 노래하였다.
65) 추강은 김종직은 문인이고 생육신의 한사람으로 강개한 선비이다. 푸른 산에 둘러 쌓인 낙산사에서 하루 유숙하면서 지둔스님의 제자인 혜초스님이 좋은 음식으로 대접하면서 하시는 말씀 마다 맑고 곧아 자신의 게으름을 일깨워 준다. 새벽까지 스님과의 담론에서 새벽 종소리에 깊이 깨닫고, 아침 해가 누각을 비추는 풍경 속에서 가신의 심회를 표현하였다.
66) 추강은 생육신으로 강호를 떠돌다 낙산사를 찾았다. 성휴스님과 한 밤중까지 불을 밝히고 약속대로 법언을 하였다. 창밖은 기암절벽으로 법당 앞의 잣나무는 제격이다. 이런 풍경 속에서 탕휴스님이 자신의 시심을 불러일으킨다. 탕휴는 당나라 시승(詩僧) 湯惠休를 말한다. 불가에서 시를 잘하는 스님으로 탕휴가그 시초로 미소 지으며 시를 지으라고 하기에 시를 지어 성휴스님께 주었다.
67) 남효온(南孝溫)은 세상에 뜻을 두지 않고 전국의 명승지를 두루 찾아다며 방랑생활을 하다 일생을 마쳤다.
이 시는 낙산사와 오색역에 묵으며 쓴 시로, 혜초스님을 만나 함께 밤을 지새우며 스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게으름을 깨닫고, 새벽 종소리에 깊은 반성을 하게 된다. 또 성휴스님을 만나 한밤중까지 담론을 주고받으며 자신의 시심을 일으켜 시를 짓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