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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 6백년 미래를 잇는 양양문화원

    낙산사 시문

    홍인우

    페이지 정보

    조회 397회

    본문

     

    ○ 『관동록(關東錄)』      치재(恥齋)  홍인우(洪仁祐)


    우리 세 사람은 각각 한 봉우리를 차지하고 앉아 감상하였다. 이때, 바다와 하늘은 밝고 아름다웠다. 만 리의 창주가 훤히 드러났다. 자시 뒤에 동풍이 갑자기 일어나 성 난 파도가 해안에 부딪히니 마치 수천의 병사와 수만은 군마가 달려드는 듯하였다.

    다시 한 동산의 호수를 지니고 솔밭 깃을 20리나 가서 청간역에 도착하였다. 역은 바 다와 겨우 10보 거리에 있었다. 조금 동쪽으로 우뚝 솟은 봉우리가 있었다. 높이가 수 십 길이나 되었다. 봉우리 위에는 구불구불한 소나무 10여 그루가 있었다. 그 아래는 어지러이 바위가 울퉁불퉁 바닷가에 솟아 있었다. 바다를 굽어 보니 맑기가 거울과 같 았다. 바람과 파도가 바위에 닿으면 흩날리는 눈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동쪽으로 바다와 하늘을 바라보니 석양이 밝고 아름다웠다. 서쪽으로 설악산을 바라보 니 비를 머금은 구름이 어두워졌다. 어부 몇 명이 깊은 파도 속으로 들어가 전복을 잡 았다. 이는 김군수가 우리를 위해 준비한 것이다. 이날 바닷길을 4 5리나 갔다.

    3일(무신). 새벽에 안개가 짙어 일출을 볼 수 없었다. 하늘은 내가 장대한 감상을 하 도록 해주지 않았다. 북쪽으로 돌아가니 다시 남쪽으로 5리나 가서 넓은 호수를 지났 다. 또 10리를 가니 영랑호를 지났다. 영랑호의 둘레는 20여리나 되었다. 호숫가는 굽어 져 있고 바위는 기괴하였다. 호구 동쪽의 작은 봉우리가 호수 가운데 잘린 듯 잠겨 있 었다. 바닷길에는 방풀나물이 어지러니 있었다. 몸종에게 수백뿌리를 캐도록 하였다.

    또 5리를 가서 쌍성호를 지났다. 호수 서쪽으로 10여리를 가니 바위 봉우리를 가로질 러 있어 울타리 같았다. 이것이 바로 이산이다. 속세에서는 읍산이라고도 한다. 호수 동 쪽으로는 또 바위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었다. 길이 실처럼 가늘게 육지와 연결되었는데 바로 비선대이다.

    또 23, 24리를 가니 낙산동으로 들어가 서쪽으로 갔다.다시 동쪽으로 쇼속 길을 들어 가 낙산사에 이르렀다..절은 동쪽은 큰 바다가 있어 경관과 흥취가 감상할 만하다. 시구 가 떠올라 동행한 이에게 보여 주었다.

    시는 가음과 같다.


    하늘이 물위에 떠 있어 땅은 감로인 듯하고 地疑甘露天浮水

    바다가 이웃해 경치가 고소산보다 뛰어나네 境勝姑蘇海作隣 


    이 날 바닷길로 60여리를 가서 낙산사 동쪽 별채에서 묵었다. 창문을 열고 멀리를 보 니 문득 뭇 고래가 물을 뿜는 모습이 보였다. 또한 장관이다.

    4일(기유). 새벽에 또 바다가 어두워져 일출을 볼 수 없었다. 하늘의 뜻이다. 이 날 아 침 동쪽으로 작은 고개를 넘었다. 솜대를 헤치고 1리쯤 가자 두 칸짜리 절이 굴 위에 있었다. 파도가 늘 그 아래로 들락거려 소리가 진동하고 물결이 세차게 솟아 올랐다.

    깊이는 헤아릴 수 없다. 주지 휴정은 자못 학문에 통달했지만 교만하여 나는 그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이 날 낮에 7, 8리를 가서 대포를 지났다. 대포는 만호의 진영이다. 다시 5리쯤 가자 큰 시내가 있었다. 시냇가에서 쉬며 밥을 먹었다. 저녁에 양양에 이르렀다.


    5일(경술) 비가 왔다. 저물녘에 김기복이 만류하여 사문 남 부사에게 술대접을 받고 취 하여 쓸어졌다.


    6일(신해). 비가 왔다. 앞에 있는 강물이 심하게 불어나 건닐 수 없었다.


    7일(임자). 날씨가 개지 않았다. 또 술에 취해 다시 쓰러졌다.


    8일(계속). 김기복은 풍악산으로 향했다. 우리 세 사람은 남부사와 작별하고 찰방 김자 정과 더물어 배를 타고 남천을 건넜다. 25리를 가서 상운역에서 묵었다. 박자정은 상운 역을 담당하고 있었다. 많이 취하였다.


    9일(갑인) 15, 16리를 가서 관란정에서 쉬었다. 정자는 바다에 접해 있고 큰 소나무 만 그루가 동남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정자의 서쪽으로 2리를 가자 동산관이 있었다. 다 시 가서 연곡현의 경계에 이르렀다.


    바닷가 곳곳에 기암괴석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었다. 모래는 회고 바다가 푸르러 맑은 홍취에 정신이 없었다. 나는 갑자기 말에서 내려 모래 위로 뛰어들어 몸을 굴리며 누웠는데 마치 미친 사람 같았다. 소나무 사이로 큰 호수가 은은히 비쳤다. 허국선과 남 시보가 말하기를 이곳이 경포가 아닙니까"라고 하였다. 나는 그들을 속여 말하기를 "아 니네"라고 하였다. 수백 걸음을 가서 솔숲을 지나서 밝은 모래가 끝없이 펼쳐 있는데 거 율을 갓 닦은 듯하였다. 봉우리가 굽이신 물가를 두르고 있는데, 둘레가 20여 리였다.

    허국선과 남시보가 말하기를 진짜 경포입니다."라고 하였다. 나는 손벽을 치며 한바 탕 웃었다. 함께 말에서 내려 강문교를 거널었다. 조금 뒤에 조각달이 소나무와 바다 사이에 빛나고 있었다. 어둠을 타고 강으로 가서 묶었다. 이 날 바닷길 90여리를 갔 고, 육지로 10여리를 갔다.


     吾三人各占一峯坐玩. 是時. 海天明媚. 滄洲萬里. 軒豁呈露. 俄而. 東風忽作. 怒濤衝岸. 如千兵萬馬馳突. 又過一苑湖. 行松逕二十里. 抵淸澗驛. 驛亭距海纔十步. 小東有峯㟮起. 其高數十仞. 上有虬松十餘株. 其下亂石嵯峨. 聳揷海澨. 俯見海水. 淸如銅鏡. 或風濤觸石. 飛雪四散. 東望海天. 落日明姸. 西望雪岳. 雲雨潑墨. 海夫四五. 沒入千尋之浪. 採石決明. 是金斯文爲吾儕供. 是日. 海行四十五里. 戊申之曉. 霧暗. 不得觀日出. 天其使余不遂壯賞也. 北旋而行. 又南五里. 過廣湖. 又十里. 過永郞湖. 湖周可二十餘里. 汀回渚曲. 岩奇石怪湖東小峯. 截入湖心. 海路處處. 防風亂生. 令僕夫採數百根. 又五里. 過雙城湖. 湖西十餘里. 有石峯. 直橫如藩. 卽籬山俗云泣山. 湖東. 又有石峯峭拔. 有徑如線連陸. 卽秘仙臺. 又二十 三四里. 入洛山洞. 西行. 又東入林路. 扺洛山寺. 寺東. 臨大洋. 景趣可翫. 得句示同行云. 地疑甘露天浮水. 境勝姑蘇海作隣. 是日. 海行六十餘里. 宿東別室. 開窓遠眺. 忽見群鯨噴水. 亦壯玩. 己酉曉. 又海暗不得見日出. 天乎天乎. 是朝. 東踰小峴. 披綿竹一里許. 佛宇二 間. 構在窟上. 海濤常出. 入其下. 聲振洶湧. 深不可測. 住持休靜. 頗通其學. 稍驕點. 余不 與之語. 是午. 行七八里. 過大浦. 浦. 萬戶營也. 又五里許. 有大川. 憩川邊攤飯. 夕抵襄陽. 庚戌. 雨. 向晩爲金基福所挽. 被主倅南斯文酒. 醉倒. 辛亥. 雨. 前江甚漲. 不得渡. 壬子. 不晴. 又被酒再倒. 癸丑. 基福向楓岳. 吾三人辭南斯文. 與朴察訪子正. 同舟渡南川. 行二十五里. 投祥雲驛. 子正. 主人也. 柀酒劇甚. 甲寅. 行一十五六里. 憩觀瀾亭. 亭臨海. 長松萬株. 擁抱東南. 亭西二里. 有銅山館. 又行至連谷縣境. 海曲處處. 奇岩怪石. 不知其幾. 沙白海碧. 淸興難收. 余忽下馬投沙上. 轉身而臥. 若狂者焉. 人或謂之狂. 自連谷. 又十五六里. 見松間有大湖隱映. 國善, 時甫曰. 此非鏡浦乎. 余謾之曰. 非也. 行數百步. 纔過松林. 明沙無際. 鏡面新磨. 峯回渚曲. 其周可二十餘里. 國善, 時甫曰. 眞鏡浦也. 余拍手一笑. 共下馬. 散步江門橋. 有頃. 殘月已映松海間. 乘昏投江陵. 是日. 海行九十餘里. 陸行十餘里.


    『恥齋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