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신묘제의 역사와 전승 양상』에 대한 토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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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승 범 (문화재청 연구관)
이 글은 고려시대 이래로 강원도 양양군에 존재했던 동해신묘(동해신사)에 대한 역사 및 그와 관련된 신앙 전통과 기록을 정리하고 동해신묘의 전승 양상을 소개하는 논문입니다.
동해신묘는 1908년에 훼철된 이래로 1993년에 복원되어 현재 東海神廟址와 남공철의 중수비는 강원도 지방기념물 제73호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저는 동해신묘에 대해서 역사민속학의 관점에서 마을신앙과 무속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토대로 발표자의 논문을 살펴보던 중에 다시한번 확인하고 싶은 대목들이 있어서 이를 중심으로 몇가지 의견을 여쭙고자 합니다.
첫째, 김도현 선생님을 비롯해서 지역의 동해신묘의 연구자들은 용왕과 海神을 동일시하는 전제로 논지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도 이에 대하여 큰 이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발표자께서도 꼼꼼하게 동해의 해신이 용왕으로 인식되고 있었다는 역사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고,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는 민간신앙과 무속의 사례를 통해서도 그러한 개연성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허균이 작성한「重修東海龍王碑文」이라 쓰여진 비문 제목과 내용, 울릉도 수토관들이 항해 중에 龍食을 바다에 흩뿌리며 기도하였다는 기록 일부를 빼면, 그 외의 기록에서는 동해신묘에 모셔진 해신이 용왕과 동일시 된 기록이 의외로 많지 않은 것같습니다. 토론을 맡은 제가 이 부분에 대해서 지식이 부족한 탓일 수도 있으나 해신을 용왕으로 곧바로 치환해도 좋을만한 추가 자료가 있으면 부연해서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발표자께서 더 잘 알고 계시는 부분이긴 합니다만, 민간신앙이나 무속에서 용왕은 下堂에서 주로 모셔 지며 바다에서 죽은 자를 관장하고 어업의 무사와 안녕을 주관하기 때문에 민간에서 관념하고 있는 용왕과, 고려시대 이래로 중앙 정부가 관여하고 있는 역사상의 동해신묘의 신격과는 미세한 차이점이 존재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사료에도 언급되듯이, 관료들이 백성들의 동해신사에서 행하는 신앙행위를 음사로 몰아서 비난하는 대목들을 보면 신분이나 입장에 따라서 동해신묘의 신격을 각기 해석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더 신중하게 접근하다보면 1993년에 복원된 동해신묘 내부의 당신도와 위패를 재점검하는 중요한 학술적 논의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더해서 현재 모셔진 동해용왕 당신 도는 어떠한 근거로 일월, 황룡, 청룡이 그림에 삽입되었는지도 궁금합니다.
둘째, 동해신묘의 현재 제의의 모습에 대한 발표자의 구체적인 견해를 여쭙고 싶습니다. 현재 복원된 동해신묘제는 양양문화원과 양양향교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의 유림이 중심이 되어 양양군수가 초헌관을 맡아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제의 절차와 진행은 홀기를 바탕 으로 오늘날의 유교식으로 진행되는 반면에 제상 차림은 유교식을 중심으로 하되 무속식의 혼합 형태로 보입니다.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서 발표자께서 동해신묘 제의에 대한 제언을 해 주시면 어떨까 합니다.
셋째, 양양이 강릉이나 속초, 나아가 삼척 등 동해안의 다른 지역과 관련해서 어떠한 성격과 특징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에 대해서 발표자께서 추가로 설명해 주실 수 있는 양양의 민속 신앙이 있으면 여쭙고 싶습니다.
끝으로, 저는 양양군에 동해신묘가 오랜 역사적 전통을 가지고 근대까지 존치했다는 사실만 으로도 동해 바다를 중심으로 하는 종교와 신앙 문화의 메카로서의 자리매김을 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나아가서 동해안의 어촌 신앙의 정서적 중심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 다.
앞으로도 이런 부분에 대한 발표자의 지속적인 관심과 연구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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