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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 6백년 미래를 잇는 양양문화원

    襄陽地域의 傳統寺刹

    [영혈사] 위치와 창건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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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양양군 양양읍 불당골길 346(화일리 산 323번지), 설악산 동남쪽 관모봉 아래에 자리한 대한 불교 조계종 제3교구 본사 신흥사의 말사이다.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설악산에 와서 처음 일출암(日出庵)을 짓고 주석하다가 2년 뒤인 689년(신문왕 9년)에 이 절을창건하였으며 이어서 청련암(靑蓮庵)을 세웠다고 전한다. 그러나 원효대사는 686년에 입적하였으므로‘영혈사 사적기’에 기록된 창건연대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또한 원효대사가 입적한 곳은 혈사(穴寺)라고 하는데 그 혈사가 바로 이 절이라고 하는데 이 또한 시간상 선, 후의 문제가 있다. 다만 영혈사의 끝 두 자가‘혈사(穴寺)’이고 이 절이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되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추정을 할 수도 있지만, 전국의 사찰 중‘혈사’라는 명칭이 많으므로 지금으로서는 단정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창건 이후 천년동안의 역사는 전하지 않으며, 1688년(숙종 14년)의 화재로 영혈사는 불타 버렸다. 1690년 취원(聚遠)스님은 절을 중건하고 법당 서쪽에 영천(靈泉)이 있음을 들어 절 이름을 영천사(靈泉寺)로 바꾸었으며 절의 동남쪽에 취원암(聚遠庵)을 창건하였다. 1716년(숙종 42년)에는 학천대사가 사찰의 북쪽 10여 리에 학소암(鶴巢庵)을 지었고 1764년(영조40년)에는 묘각 스님이 절의 서쪽 기슭에 백학암(白鶴庵)을 창건하였다. 사적기(事蹟記)를 통하여 볼 때 영혈사가 가장 활성화되었던 때가 이때로 보인다. 그러나 이후 영혈사의 사세는 차츰 줄어들었다.  1826년(순조 26년)에는 학소암을 폐지하였으며 1853년(철종 4년)에는 백학암이 무너졌다. 그리고 1881년(고종 18년) 신도 김중욱이 산신각을 중수하였다는 기록만 전한다.

    영천사에서 다시 영혈사의 이름을 회복해 부른 것은 1887년(고종 24년) 지하 스님과 도윤스님이 퇴락한 절을 일신 중수하고 난 다음부터이다. 그 뒤 1900년에는 신도 김우경이 산신각을 중수하였고 1903년에는 보훈 스님이 칠성계(七星稧)를 창설하여 28인으로부터 모은 곗돈으로 밭 75두락을 매입하여 이 사찰의 향(香) 공양이 끊이지 않도록 하였다. 그리고 1904년에는 신도 김우경이 퇴락한 건물을 중수하였으며 1912년 대본산 건봉사의 말사가 되어 명맥을 이어오다가 6.25 전쟁을 맞았다. 다행히 치열한 설악산 전투 속에서도 이 절은 기적적으로 피해를 면하였고 전쟁이 끝난 뒤 이 절에 봉안되어 있던 관세음보살좌상은 전화(戰禍)를 입고 다시 건립한 낙산사 원통보전으로 옮겨 봉안되었다.

    영혈사는 1887년의 중수 때 건립한 원통보전(圓通寶殿)과 선실 겸 요사로 사용하던 건물 2동뿐인 아담하고 자그마한 절로서 명맥을 이어오다가 1992년의 중건 불사를 통하여 새로운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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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혈사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