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 낙산이대성(洛山二大聖)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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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낙산사를 창건한 의상대사(義湘大師)의 설화
낙산사(洛山寺)는 워낙 우리나라 동해안의 이름난 대찰(大刹)이다 보니 고승대덕(高僧大德)들의 발자취가 끊이지 않는 곳이다.
낙산이대성 의상(義湘)과 원효(元曉)뿐 아니라 ≪삼국유사≫‘洛山二大聖 觀音 正趣 調信’편에 기록된 낙산사에 정취전(正趣殿)을 세웠다는 범일국사(梵日國師), 세규사(世逵寺)의 승려 조신(調信) 그리고 고려시대 몽골군[서산대병(西山大兵)]의 침략으로 낙산사의 두 성전[대웅전, 정취전]이 불탈 때 활약한 ‘주지선사 아행(住持禪師 阿行)’과 ‘절의 종 걸승’의 설화가 양양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이번 호에는 낙산사를 창건한 의상에 관한 설화를 살펴보자.
의상대사 진영
의상을 향한 선묘낭자(善妙娘子)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
당나라에 유학을 온 의상을 보자마자 첫눈에 반해 짝사랑하던 신실한 불자 선묘낭자는 현세에서 이룰 수 없는 사랑임을 알고 내세에서 비익조가 되어서라도 함께 하기를 기원하였다. 그 후 의상이 10년간 삼장(三藏)을 공부하고 신라로 돌아간다는 소식을 듣고 손수 지은 가사장삼을 전해주고자 바닷가로 갔으나 이미 배가 항구를 떠나고 있었다. 이에 선묘는 가사장삼이 전달되기를 빌면서 배를 향하여 던지니 무사히 의상의 품안으로 떨어졌다한다. 의상과 함께 할 수 없게 된 선묘는 바다의 용이 되게 해달라고 하늘에 빌면서 황해에 몸을 던졌다. 하늘이 감동하여 용이 된 그녀는 의상이 무사히 신라에 당도하도록 배를 수호하였다고 한다.
의상이 귀국 후 처음으로 양양에 낙산사를 창건하였는데 아마 용이 된 선묘의 넋을 기리기 위해 바닷가에 세웠는지도 모른다.
원통보전내의 비익조
관음을 친견하려고 양양에 오다
관음보살이 머무는 산을 보타낙가산이라한다. 양양 낙산사가 있는 산 이름이 낙산인 것은 이곳이 대자대 비(大慈大悲)하신 관음보살[白衣大士]의 진신이 거처하는 성지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항시 바닷물이 출렁거리고 파도가 심하여 일찍 아무도 들어가 본 사람이 없는 곳이기에 불교의 성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의상대사는 강원도 양양 낙산에 성지가 있다는 말을 듣고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신라에 돌아오자 가장 먼저 대비진신(大悲眞身.관음보살)에게 예불하기 위해 양양을 찾아왔다.
관음보살을 친견하다
의상은 이곳에 이르러 목욕재계 후 바닷물에 돗자리를 깔고 올라앉아 기도하니 7일째 새벽에 용천팔부[龍天八部, 불법(佛法)을 지키는 신장(神將)들, 곧 천(天)·용(龍)·야차(夜叉)·건달바(乾●婆)·아수라(阿脩羅)·가루라(迦樓羅)·긴나라(緊那羅)·마후라가(摩睺羅伽)의 팔신(八神)] 시종이 굴속으로 의상을 인도하였다. 공중을 향하여 예배를 드리니 수정염주(水晶念珠) 한 꾸러미를 내어주므로 받아들고 물러나 나오는데 동해의 용이 또한 여의보주(如意寶珠) 한 알을 바치므로 이것도 받들고 나왔다. 다시 7일을 수행하여 드디어 관음의 진용을 뵈었는데 말씀하기를,“ 이 자리 위의 꼭대기에 한 쌍의 대나무가 솟아날 것이니, 그 땅에 불전을 지음이 마땅하리라. 그곳이 바로 금당(金堂) 자리니 그곳에 절을 지으면 불법이 크게 일어날 것이다.”라고 하였다.
관음의 뜻을 받들어 낙산사를 창건하다
의상은 바로 낙산에 올라가 관음이 일러준 자리를 이리저리 찾아보았으나 대나무 같은 것이 보이지 않았다. 실망하여 한참 동안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멀리 바라보이는 동해에서“대사는 너무 성급하게 찾지 마시오. 때가 되면 찾을 수 있을 것이요.”라는 말소리가 바람결에 아련히 들려왔다. 의상은 느낀 바 있어 그 자리에 앉아 염주를 굴리면서 때를 기다리고 있노라니 바로 눈앞에서 두 그루의 붓끝 같은 대순이 솟아오르기 시작하더니 곧 큰 대나무가 되었다. 의상은 그제야 마음을 놓고 “바로 이곳이 금당 자리로구나!” 하늘을 우러러 소리치며 합장 기도하고 곧바로 땅을 고르고 재목을 다듬어 금당을 짓고 관음상을 빚어 모시니 그 원만한 모습과 고운 자질은 하늘이 낸 듯하였다.
그곳의 대나무는 다시 없어졌다. 그제야 이곳이 관음보살께서 지내시는 곳임을 알았다.
이로 인해 그 절 이름을‘낙산사’라고 하고, 의상은 관음굴에서 받은 구슬을 성전에 모셔두고 남쪽으로 떠났다.
홍련암(관음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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