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 양양 진전사에서 시작된 한국의 조계종
페이지 정보
본문
양양은 명실공히 불교의 성지이다. 법성종을 창종(創宗)한 원효는 설악산 신흥사에, 화엄종의 개조인 의상은 해안절벽 오봉산 낙산사에 그리고 조계종의 종조인 도의는 설악산 화채봉 자락 진전사에 깃들었는데 진전사는 선교일치(禪敎一致)를 표방하는 대한불교조계종의 모태(母胎)다.
도의선사는 당나라에 유학하여 달마로부터 내려온 면 벽(面壁) 수행법을 익힌다. 깨우침을 얻은 그는 ‘누구든 참선만으로 성불할 수 있다’는 선종의 교리를 전파하고자 귀국하나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교종으로 부터‘마귀의 소리’를 지껄인다고 배척받는다. 유랑길에 오른 도의는 신라의 북쪽 변방 설악산 아래 외진 마을 둔전리에 진전사를 창건한 후 40년을 지내며 수도하다 열반한다.
경전을 공부하지 않고도 성불할 수 있다는 선종의 구도방식은 글을 배우지 못한 불제자들 마음속에 복음처럼 파고들었고 내 마음이 곧 부처[자심즉불:自心卽佛]라는 생각은 대중을 매료시켰을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직지인심:直指人心] 문자를 넘어[불립문자:不立文字]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여[이심전심:以心傳心] 본래 지닌 인성을 살펴 부처에 다다르자는[견성성불:見性 成佛] 선종의 교리는 신라 말에 번성하여 고려 창건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런 도의의 사상과 수행법은 염거에게 전해지고 염거의 가르침은 다시 체징에게 전해지는데 체징은 가지 산문(迦智山門)를 이룬다. 이런 연유로 도의는 장흥 보림사 가지산문의 개조(開祖)가 되고 후에 조계종의 종조로 추앙받는다.
진전사, 진전사지
진전사지 삼층석탑
진전사의 명운
진전사는 낙산사보다 150년 이상 늦은 9세기경 통일신라 때 세워졌는데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이 계를 받은 곳이기도 하다. 고려의 국사(國師)를 지낸 일연은 진전사의 교세 확장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렇듯 건재하던 진전사가 조선조에 들어 언제 어떤 연유로 폐사되었는지도 모르는잊혀진 절이 되었다. 절터 발굴과정에서 진전(陳田)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가 발견된 후 고증을 통해 도의선사가 머물던 진전사로 밝혀졌다. 진전사가 조선조에 쇠멸하였다면 억불정책과도 연관 지어볼 수 있겠으나 낙산사와 견주어볼 때 그것만으로 해석하기에는 석연치 않은데 구전에 의하면 화적의 습격을 받아 패망하였다고도 한다.
낙산사는 이성계의 증조부 익조가 정숙왕비와 함께 관음굴(홍련암)에서기도하여 이성계의 조부인 도조를 잉태하였다는 설화가 있을 정도로 조선건국 전부터 이씨 가문과 인연이 깊다. 이런 관계 때문인지 억불 군주인 태조는 낙산사에 행차하여 법회를 열고 세조는 사찰을 크게 중창한다. 낙산사는 왜란, 호란 및 몇 차례 화재를 겪으며 소실되었으나 그때마다 왕조의 후원을 받았던 반면 진전사는 부지불식 몰락해버렸다. 혹시 낙산사와 진전사 두 사찰 사이에 갈등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산속 묵정밭에 애써 일구었던 사찰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명운을 도의선사는 미리 예견했던 것인가. 묵을 진(陳) 밭 전(田) 절 사(寺), 이름이 운명을 좌우한다던데 묵정밭절이라니. 하기야 묵정밭이나 절이나 부처가 계시기는 매일반일 터이니…
진전 명 와편
도의선사 옛 부도
진전사지 부도탑을 돌며
한상호
1
설악산 영봉靈峯
화채봉 가는 길
신라 선승 도의
걸음 멈추다
2
생각 끊고 마음 이어
조근조근 돌계단 쌓았으리라
한 칸 한 칸 지은 산속 절간
무처불통無處不通 큰 바다를 꿈꾸었을 것이다.
3
오오,
허물어져 세워진 큰 문자
묵을 진陳, 밭 전田, 절 사寺
묵정밭이 곧
절집인 것을
천경天經 그 만론萬論이 모두
바람에 이는 파도*인 것을
* 조오현, <파도> 일부
【참고 1】도의국사의 출생과 사망 연대는 기록이 전하지 않는다. 성은 왕 씨이고 도의는 법명이다. 신라 선덕왕 5년(784)에 당나라에 가 37년을 공부하고 헌덕왕 13년(821)에 귀국하였다.
【참고 2】진전사지 발굴 시 출토된 기와에 적힌 중국연호를 대조해보면 1467년 조선 세조 13년에 해당한다. 이로 미루어 진전사는 최소한 그때까지 존속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 이전글
- 7월 - 낙산이대성(洛山二大聖) (2)
- 23.02.03
-
- 다음글
- 9월 - 영혈사(靈穴寺)의 영천(靈泉)에 얽힌 설화
- 23.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