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 양양의 동해신묘(東海神廟) 제향(祭享)에 대해 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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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년봄·가을관찰사가국태민안과풍농풍어를빌던곳이다.
예전부터 하늘과 땅, 산, 바다, 강 등에 제사 풍속이 있었는데 고려 및 조선시대는 국가 제사에 규범과 규정이 그 규모에 따라 대사(大祀)·중사(中祀)·소사(小祀)로 나뉘었다. 세종실록 오례의(五禮儀)에 제사(祭祀)의 예(禮)는 천신(天神)에 사(祀) 지기(地祇)에 제(祭), 인귀(人鬼)에 향(享), 문선왕(文宣王)에 석전(釋奠)이라 했다.
조선 태종 14년(1414) 8월 예조에서 동해는 양양(襄陽), 남해는 나주(羅州), 서해는 풍천(豊川)으로 정하고 치제를 관에서 주관하였다. 동해신묘는 중사(中祀)로 관리된 곳으로 매년 나라서 향축(香祝)을 내려 보내 세수(歲首)는 별제(別祭), 2월과 8월은 상제(常祭)로 관찰사가 동해신에게 국태민안과 풍농풍어를 빌던 곳이며 사당의 명칭은 고려 때는 동해신사(東海神祠)라 했고 조선으로 이어지면서 동해신사당(東海神祠堂)→동해신단(東海神壇)→동해묘(東海廟)→동해신묘(東海神廟)로 변천하였다.
◆ 동해신묘 제향기록(祭享記錄)
세종 19년 3월 양양의 동해는 중사(中祀)이고 사묘위패(祠廟位牌)는 동해지신(東海之神)이라 하였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양양도호부 산천과 사묘 편에 동해신사는 부 동쪽에 있고 중사(中祀)이며 봄, 가을 향축을 보내 제사를 지낸다고 했다.
세조 12년(1466)에 동해신묘에 제사하도록 명하였고, 영조 18년(1742) 1월 기사에 향축을 내려보내 풍농을 빌도록 전교하였다. 정조 24년(1800) 4월 기사에 동해신묘에 제향을 드리는 예법이 나라의 법전에 실려 있을 만큼 이곳을 중시하였다. 이외에도 다수의 기록이 있다.
◆ 동해신묘제례의식(祭禮儀式)
『세종실록』에 양양부의 동해는 중사(中祀)로하고, 세수 제향(歲首祭享)을 별제(別祭), 중춘 중추(仲春仲秋)에 좋은 날을 점쳐 지냈는데 상제(常祭)라 하였고, 제사의식은 세종오례의(世宗五禮儀)에 수록된 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제사시일 (祭祀時日)〉
서운관(書雲觀)에서 한 달 전에 음력 2월(仲春) 초하루에서 초열흘(上旬)사이로 날짜를 잡아서 예조에 보고한다. 그러면 예조에서 중앙에 알리고[啓聞] 해당 관청[攸司]에 준비를 서두르라는 통고[散告]에 따라 제각기 맡은 대로 준비를 한다.
사묘(祠廟)의 위판은 밤나무로 쓰되 바탕은 흰색으로 하고 검은 글씨로 동해지신(東海之神)이라 쓰며 높이가 2척 2촌, 너비가 4촌 5푼, 두께가 9푼, 좌고가 4촌 5푼, 두께가 4촌 5푼이라 하였고, 묘 축판은 소나무로 만드는데 높이는 1척 2촌이요, 폭은 8촌, 두께는 6푼이다. 축문은“국왕 (성)(서명) 감소고”라 쓴다. 축문은 기일 전에 관원이 받들어 바치는데, 근신(近臣)이 전해 받들어 이를 바치면 전하가 서명하고 이를 마치면 친히 사신(使臣)에게 준다.
〈재계 (齋戒)〉
제사 전 5일에 행사할 집사관(執事官)은 모두 그중 3일 동안 산재(散齋)하는데, 정침(正寢)에서 유숙하고, 2일 동안 치재(致齋)하는데, 1일은 청사(廳事)에서 1일은 제소(祭所)에서 하며, 무릇 삼가하고 제사에 참예할 사람은 제사 전 2일에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는다. 소재관이 제사를 행하는 데는 헌관(獻官)은 제복을 입고, 집사와 교생(校生)은 유관(儒冠)을 쓴다. 행사집사관은 헌관(관찰사가 하는데, 만약 제소가 겹치면 수령을 나누어 보낸다), 축(祝), 장찬자(掌饌者), 사준자(司尊者), 찬창자(贊唱者), 찬례자(贊禮者)이다.
〈진설 (陳設)〉
제사 전 2일에 유사(有司)가 단(壇)의 안팎을 소제하고, 여러 제관(祭官)의 막차[次]를 설치한다.
또 찬만(饌●)을 설치하되, 동문(東門) 밖에 땅의 형편에 따라서 적당하게 한다. 전 1일에 신좌(神座)를 단상(壇上)에 설치하되, 북쪽에 남향하게 하고, 자리[席]는 왕골[莞]로 한다. 유사(有司)가 생(牲)을 이끌고 제소(祭所)로 나아가고, 헌관의 자리를 단하(壇下)에 설치하되, 동남으로 서향하게 한다.<이하생략>
<행례 (行禮)>
제삿날 축시(丑時) 전 5각(刻)에 장찬자(掌饌者)가 들어가 제수를 찬구(饌具)에 담기를 마치면, 집사자가 그 의복을 입고 올라와 신위판(神位版)을 자리[座]에 설치한다. 찬례자(贊禮者)가 헌관을 인도하여 남쪽 섬돌[南陛]로 해서 올라가서 진설한 것을 점검해 보고 도로 나온다.<중략> 찬창자(贊唱者)의 홀기에 따라 초헌례·아헌례·종헌례를 행한 후 찬례자의 인도 하에 내려와 자리로 돌아간다.<중략>
찬례자가 헌관의 왼쪽으로 나아가서“예(禮)를 마쳤다”고 아뢰고 나서, 헌관을 인도하여 나가고, 찬창자는 본디 자리로 돌아간다. 끝으로 집사자가 신위 판을 간수하고, 예찬(禮饌)을 거두고 내려와서 물러가면 제례행사가 끝난다.
〈동해신묘 축문〉
〈전통 찬실(진설)도〉
〈1872년 지방지도(양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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