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 朝鮮哲宗때 양양의 義人鄭元基에게 임금이 내려준 철비의 사연을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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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종11년(1860) 윤3월강원도와함경도지방에대형산불발생
지금으로부터 161년 전 철종 11년(1860) 윤3월에 관동지방에서 양양(襄陽)·통천(通川)·간성(杆城)에 대형산불이 발생했는데, 강릉(江陵)·고성(高城)·정선(旌善)의 화재도 모두 같은 날에 있었으며, 함경도의 안변(安邊)·덕원(德源)의 가호(家戶)가 연소(延燒)된 것도 같은 날이었는데, 강원도와 함경도의 여덟 고을에 화재를 당한 인가(人家)가 무려 2천여 가호였다.
당시 강원 감사 김시연(金始淵)은 양양부(襄陽府)에서 5백 51호(戶), 통천군(通川郡)에서 4백 72호, 간성군(杆城郡)에서 4백 86호(戶)의 민가가 연소 되는 사건이 발생했음을 임금께 아뢰었는데 보고를 받은 임금은 이천부사(伊川府使) 남종순(南鍾順)을 내려보내 재해를 당한 백성들을 위로하도록 하였다.
정원기는벼500석을, 그외주민들은소지한금전을출연
재해를 당한 백성들의 딱한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정원기와 성균관 진사로 있었던 그의 아들은 함께 논의하여 벼 500석을 내어 피해를 당한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 외 이 고장의 김연수(金演秀)·정우현(鄭禹鉉)·이민신(李敏信)·이검(李檢)·김동국(金東國)·김현규(金玄圭) 등도 각자 가세(家勢)에 따라 재해를 입은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 가지고 있던 금전을 출연(出捐)하였다.
강원감사김시연은양양부의상황을임금에게보고
강원 감사 김시연은 양양 부사(襄陽府使) 서경순(徐敬淳)의 보고내용을 올렸는데, 환란(患亂)을 당했을 때 서로 도와주는 것은 정말로 아름다운 풍속입니다. 고장의 백성들이 의연금을 출연하여 다급한 처지에 놓인 사람을 구해 주었으니, 그 뜻이 가상(嘉尙)하였기에 김연수 등 6인에게 그 공로에 상당한 포상으로 향임(鄕任)의 직을 파격적으로 우대하도록 조치하였습니다만, 정원기에 대하여는 의정부에서 관례를 상고하여 임금의 명을 받아 처리하도록 하였으면 합니다. 라고 상계(上啓)하였다.
비변사(備邊司)에서임금에게보고오위장벼슬을승인
역시 비변사에서도 향인(鄕人) 가선대부(嘉善大夫) 정원기(鄭元基)가 정조(正租) 5백 석을 의로운 마음으로 구급(救急)하였으니 그 뜻이 가상하여 특별히 보답하고 권장하는 은전이 있어야 마땅함으로 의정부로 하여금 전례를 상고하게 하였으며 품계가 이미 가선대부이니 실제로 근무하는 벼슬인 오위장(五衛將)의 직책이 어떻겠습니까?”라고 상계한바 임금께서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傳敎)하였다.
철종은정원기에게철비를하사(下賜)하다.
철종은‘많은 재물을 거듭 베풀어 백성을 구휼(救恤)하고 화재로 인한 나라의 재난을 극복하게 한 공로를 가상히 여겨 가선대부 오위장(嘉善大夫五衛將)의 관직을 특수(特授)하고 철종 11년 경신 12월(1860)에 가선대부오위장정원기불망비(嘉善大夫五衛將鄭元基不忘碑)라 양각 주조(陽刻鑄造)한 철비를 하사하니’주민이 자진 동원하여 강현면 석교리에 비각을 건립하고 기려왔다. 그러나 세월 따라 비각도 낡아 허물어지니, 1972년 8월 1일 공의 증손 정주화(鄭周和)의 주선으로 문중에서 양양읍 조산리 마을 안 아늑한 곳에 비각을 새로 짓고 공의 불망비를 옮겨 설치하였다.
정원기철비에양각(陽刻)된비문을살펴본다.
○앞면 : 嘉善大夫五衛將鄭元基不忘碑(가선대부오위장정원기불망비)
〈찬 시〉
倡義卹灾 彤庭褒功(창의휼재 동정포공)
재난을 정의롭게 구제하였으니, 나라에서 포상한다.
再施千貲 蒼生誦惠(재시천자 창생송혜)
천금의 재화를 거듭 베풀었으니, 백성들은 은혜를 칭송한다.
○뒷면 : 咸豊十年庚申十二月日竪(함풍십년경신십이월 일 수)
1860년 12월에 세움.
본 철비는 당시에 처참한 재해를 입은 백성들을 위해 사재를 아낌없이 내어준 정원기(鄭元基)의 갸륵한 뜻을 기리기 위해 나라에서 철비를 내린 특별한 경우이어서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적선(積善)의 표본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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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元基는 迎日鄭氏27代孫으로 조선 순조 1년(1801)에 태어나 고종 1년(1863)에 사망
하였으며, 字는 여경(汝經)이다. 공의 부인은 정부인안성이씨(貞夫人安城李氏)이다. 강현면 석
교리에서 생활하였으며 시문에 재능이 있고 풍류를 즐겼다고 알려져 있으며, 묘지가 강선리
뒷산 선영에 있다. 자식으로는 헌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진사가 된 정우용(鄭禹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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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망비 비각>
<불망비>
<영일정씨 정원기 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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