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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 6백년 미래를 잇는 양양문화원

    양양문화33호

    10월 - 朝鮮時代양양 독송정(獨松亭) 주변과 얽힌 사연(事緣)을 알아본다.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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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여기명품송(名品松)한그루가마치연리지(連理枝)처럼자랐었다.


    예전에 손양면 여운포리에서 남쪽으로 현북면 중광정리에 이르는 7번 국도변에 한 뿌리에서 세 가닥으로 자란 소나무가 있었는데 마치 다른 나무가 얽혀 자란 연리지(連理枝)와 같았다. 세월의 흐름 속에 우람한 낙락장송(落落長松)이 된 이 금강소나무를 뭇사람들은 속칭 삼 형제 소나무라고도 불러왔다.


    이 나무의 높이는 푸른 하늘을 찌르듯 하고 땅에 드리운 나무 그늘은 약 50여 평 주위를 덮으리만치 울창하여 사시사철 그늘이 떠나지 않으니 납양지(納涼地)로 적격이었다. 그래서 매년 한여름에는 피서 인파가 초만원을 이루었고, 그 앞과 좌우가 환하게 터져 뛰어난 경치는 양양을 모르는 나라 안사람도 독송정은 안다고 했다.


    한편 독송정을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저 멀리 앞바다에 줄지어 밀려드는 고래 등과 같은 파도가 무한한 동해를 열어놓고, 남쪽은 하조대를 마주 보며, 서쪽으로는 누룩 바위〔국암(麯巖)〕와 주천당(酒泉塘)이 있는 여운포리 호수의 맑은 호기(灝氣)를 실컷 마시고, 북으로는 수산리 봉수대와 석굴 그리고 오산봉(鰲山峰)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독송정엔정철(鄭澈)의시(詩)와풍수설(風水說)일화가있다.



    <鄭澈詩>


    폭도산수리 호기만한정 만리운개경 천년지유령

    (幅圖山水裡灝氣滿寒亭萬里雲開境千年地有靈)


    산수의 경치가 한 폭의 그림 같은 속에, 맑은 기운이 빈 정자에 가득하니.

    푸른 하늘 만 리에 구름 떠 있어, 천년 된 땅에 신령한 기운이 있도다.


    풍전금운담 월하주배정 고학남비거 해천일색청

    (風前琴韻淡月下酒盃停孤鶴南飛去海天一色靑)


    바람 앞에 거문고 소리는 맑고, 둥근달이 잔 속에 잠기는구나.

    외로운 학이 남쪽으로 날아가는, 바다와 하늘은 한빛으로 푸르기만 하다.



    <風水說>

    한편 송강 정철이 풍수에 상당한 실력자로 알려졌는데, 그가 강원도 관찰사로 재직 당시 양양에 내려와 있었던 일화를 소개한다. 박정수『살아있는 땅』1995. p22.에 의하면“한번은 송강이 상운리로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어느 곳을 가더라도 온 동네가 기와지붕으로 덮여 있고 상운리 사람들이 모두 천석꾼 이상으로 잘사는 것을 보고 이 동네가 왜 잘사는가를 살펴보니 상운리 맞은편 여운포에 누룩 바위가 눈에 들어왔지, 송강은 그 바위의 정기로 상운리가 부자가 되었다는 생각에 누룩 바위를 깨뜨려 산의 정기를 흩어버렸지”“송강이 왜 그랬을까요? 글쎄, 아마도 사람들이 부자가 되면 양반인 자신을 괄시할 것으로 생각해서겠지”라는 웃지 못할 소설 속 이야기가 있어 전한다.



    독송정의소나무를평양연광정(練光亭)으로옮겨갔다는일화


    구한국시대 평양 대동강 연광정(練光亭) 앞에는 심지도 않은 일체삼주(一體三株)의 천연송(天然松) 한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점차 자라면서 낙락장송(落落長松)이 되자 외피(外皮, 껍질)에 해동정송이래우차(海東亭松移來于此)라는 여덟 자의 큰 글자(八大字)의 흔적이 완연히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양양독송(襄陽獨松)이 옮겨간 것이 사실이라고 백여년(百餘年)을 두고 떠들던 시절도 있었다는 속설(俗說)이 있다.



    독송정과상운정에연접한소나무군락이10리나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44권 양양도호부 누정(樓亭) 편에“상운정은 부 남쪽 25리에 있다. 바다 곁엔 키 큰 소나무가 10리를 연달아 푸르게 그늘져서, 쳐다보아도 해가 보이지 않는다. 소나무 사이에 잡풀이 없고, 오직 산철쭉이 있어서 봄에 꽃이 피면 붉은 비단같이 화려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장구한세월을버텨온독송정을다시는볼수없다.


    손양면 승람지〔(巽陽面勝覽誌).1954年編纂〕에 의하면 독송정 소나무는 이미 오래전에 고사목(枯死木)이 되었다. 송강 정철이 이곳 독송정에서 시(詩)를 썼다는 해(1580년)로 기산(起算)해도 소나무의 나이는 줄잡아 300년이 훨씬 넘는다. 여기서“세월 앞에 장사가 없다.”라는 속담은 비단 사람뿐만 아니라 동식물도 피할 수 없다는 걸 새삼 느낀다.


    우리 선조들이 오랜 세월 정자(亭子)가 없는 곳에 한그루에서 세 가닥으로 자란 소나무를 보고 독송정(獨松亭)이라 불러왔었다. 그러나 실체(實體)가 고사 되어 뿌리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고 했는데, 그곳 주변에는 독송정이라는 자연부락이 형성되어 지금도 그 명맥(命脈)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 너무도 신기하고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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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양도호부 누정편 祥雲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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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송정 인근 해안변 松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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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송정 인근의 누룩바위(여운포리)>

     

    7302.jpg

    <獨松亭進入里程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