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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시기 양양군의 군정 통치에 대한 고찰

    4. 세금을 배낭에 가득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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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4. 세금을 배낭에 가득


    이상억 (남, 79세, 서면 북평리)
    면담일 : 2015. 4. 10


    02.jpg


    - 특무대쑈리로들어갔다가무서워서도망치듯집으로왔다.

    인민학교5학년을마치고14살이던중학교2학년때6·25전쟁이일어났다.
    가을이 되면서 유엔군이 인민군을 밀고 북쪽으로 갔다가 중공군이 참전하면 서 다시 후퇴하게 되자 국군이 우리를 피난 가라고 해서 부모님이 나는 장남이 라살려야한다고나만데리고피난길을떠났다.
    먹을것이떨어져바다풀인보리해댕이를뜯어삶아먹고지냈다.
    수복이 되자 고향으로 돌아와서 집안일을 거들다가 특무대가 속초 동명동에 있었는데 어 면장의 사촌이 중령으로 그 부대 대장이었는데 그 소개로 쑈리로들어가게 되었다. 매일 잡혀오는 사람들을 조사하는데 조사원은 군복 입은 사람도있고민간옷을입은문관들도많았다. 취조실은잘가지않는데하루는물을 가지고 들어 오라하여 물을 바케쓰[양동이]에 담아가지고 가니 실신한 사람에게 부었다. 그러니 그 사람이 벌떡 깨어난다. 16세 어린 나는 엄청 놀랬고 무서웠다. 그래서 못 있고 도망치듯 집에 왔다. 잡혀온 사람들을 보니 지방 간첩, 불순분자라하는데그들은산나물꾼이나약초를캐는사람처럼보이는사람도 잡혀왔는데겁에잔뜩질려들어왔다.
    - 서면사무소소사가되어세금을배낭에가득넣고군청에갔다.
    고성에서피난온사람이사랑방에세를사는서면사무소산업계장이었는데 그분의소개로면사무소에근무하게되었다. 임무는면사무소의공문을가방에 매고 양양군청에 갔다가주고 공문을 받아 돌아오는 것이다. 군청에 갈 때는 공문이나 군청에 보낼 물건을 배낭에 지고 상평에서 양양까지 걸어서 다녔다. 한번은 면에서 세금을 받은 걸 자루에 넣어 배낭에 넣어 약초꾼처럼 지고 양양까지가는데돈도한가방가득하니무거웠다. 그런데무거운것보다괴한이나올까봐더겁이나고두려웠다.
    공무원은 돈으로 급료를 주는 것이 아니고 알랑미(안남미) 쌀을 주었는데 면장도 쌀 5~6말, 다른 직원들도 그 정도로 받았다. 쌀밥을 구경도 하기 어려운데 쌀밥을 먹을 수 있으니 참 좋았다. 다른 소사는 상평에 사는 김 ○○인데 나이 약 40세가 조금 넘은 사람이었는데 창고의 열쇠
    를 가지고 관리했고 점심도 그 아저씨집에서먹었다.
    다른직원들이 그아저씨를호랑이아저씨라 불렀다. 직원들은열쇠좀빌려달라고굽실덴다. 창고안에는구호품으로온쌀, 옷, 우유[종이로 된 드럼통에 든 분유]가 쌓여있었다. 열쇠를 얻어 창고에 들어가면 옷, 쌀, 기타 구호품들을 골라서 가지고 나올 수 있었다. 그의 권한이 대단하여 면사무소에서는그를부면장님이라부르며무서운존재였다.
    군정 때는 외국에서 구호품이 많이 나왔다. 트럭이 각 면마다 구호물자를 나누어주고 가면 사회계에서 각 마을에 구장을 모이게 하고 마을의 크기에 따라 옷, 우유(분유)등을나누어주면구장들은그것을마을에가서어려운사람들에게나누어주었다. 특히우유는전에는먹어보지못한음식이어서밥할때같이 넣으면딱딱한과자처럼되는데아이들은그것을가지고다니며갉아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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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면사무소 규휼미 배포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