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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시기 양양군의 군정 통치에 대한 고찰

    31. 방간 집에서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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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방간 집에서 공부


    김정식 (남, 80세, 양양읍 구교리)

    면담일 : 2015. 6. 3



    - 칡으로 가루를 내어 옥수수 가루나 산나물로 풀 죽을 쑤어 먹었다 .

    내가 어릴 때 우리 집은 가난하다보니 인민학교만 다녔고 초급 중학교엔 가지 못해 집에서 아버지를 도와 농사를 짓고 있었다 . 1951 년 1 · 4 후퇴가 시작되자 저녁때 군인들이 와서 피란가라고 하고 다녔다 . 우리는 보따리만 싸놓고 저녁 식사를 마치고 어둑어둑한데 군인들이 동네를 돌아다니며 왜 피란을 가지 않느냐 ? 하면서 공포를 쏘아대며 빨리 피란가라고 한다 . 그들은 마당 짚더미에서 짚단을 빼서는 불을 붙여 집에 대고 집을 태운다 . 우리 식구들은 중요한 가재도구도 꺼낼 사이도 없이 다급하게 집을 나와 논 두럭 가로 피하고 나니 삽시간에 마을은 불바다가 되었다 .

    동네 사람들은 졸지에 집을 잃고 밤에 남쪽으로 피란을 나가는데 사람들의 길을 메워 남쪽으로 가고 있다 . 인구를 지나 주문진에 오니 점점 늘어나는 피란민 들과 밤 재에 당도하니 남쪽에는 국군 선발대가 주둔하고 있고 , 북쪽에는 인민군이 지키고 있었지만 인민군은 숨어 있어 보이지 않았다 삼척 맹방에서 며칠을 지내다가 더 머무를 수가 없게 되자 시골로 더 들어가 겨울을 났다 . 옥수수 가루를 얻어다 끼니를 때우고 , 나는 할아버지와 나무하러 다녔고 칡을 파러 다녔다 . 아직 겨울이 가지 않은 이른 봄이라 양지쪽을 찾아다 니며 칡을 파서는 개울에 가서 깨끗이 씻어 방망이로 두드려 물을 내어 가라 앉혀 가루가 나오면 말렸다가 옥수수 가루나 산나물을 뜯어 섞어 풀 죽도 해먹고 밥도 만들어 하루 한 끼씩 끼니로 사용하였다 .

    이렇게 배를 골아가며 겨울을 나고 수복이 되어 간리로 돌아오니 피란 떠날때 땅속에 묻어두었던 쌀과 음식들이 누가 다 파내어 가져갔다 .


    - 지붕이 날아가고 벽만 남은 서성용이네 방간 집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

    아버지는 불에 탄 것들을 걷어내고 토담을 쌓고 할아버지는 산에서 나무를 찍어다 서까래를 올리고 기와조각을 주워 지붕을 덮었지만 그래도 비가 오면 비가 줄줄 샜고 밤하늘의 별도 보였다 . 그래도 공부는 해야 한다며 중학교에 다니게 해 주셨는데 교실은 다 타 없어지고 지붕은 날아가고 벽만 남은 서성용 [ 구교리 태산연립 앞 군청길 53 일대 ] 이네 방앗간 집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 선생님이 없어 피란민 중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을 선생님으로 모셨다 . 선생님 중에는 군인도 있었다 . 학생은 나보다 3~4 세 많은 학생도 있고 나보다 어린 학생도 있었고 학용품은 쌀을 팔아 살 수 있었다 . 이렇게 반년쯤 다니다 벽돌을 주워내고 공병대가 건물을 지어주어 중학교 2 학년 때는 지금의 중학교로 이사를 하게 되었 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