襄陽地域의 傳統寺刹

[낙산사] 가람 및 전각(殿閣)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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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45회 작성일 2023-02-28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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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전각(殿閣) 

  

◈ 일주문(一柱門) 

일주문은 기둥이 한 줄로 되어 있는 데서 유래된 것으로, 일직선상의 두 기둥 위에 지붕을 얹는 독특한 방식으로 일심(一心)을 상징한다.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불법(佛法)의 청량수로 말끔히 씻고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가르침이 담겨있다. 건축양식은 다포계(多包系)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1990년 10월에 김학천(金鶴千)씨 시주로 도편수 홍완표가 완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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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 일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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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수각(洗心水閣)


◈ 세심수각(洗心水閣)

일주문을 지나면 옛 인월료(引月寮)가 나오고 거의 홍예문에 이를 때쯤이면 관세음보살 앞에 나서기 전에 마음을 씻도록 세심수각이 있다.  


◈ 부도군(浮屠群) 

일주문을 통과하면 길 좌측에 부도 6기와 임병준거사 공덕비, 1958년 시주에 대한 석물이 있다. 근세 부도 3기, 조선 후기 부도가 3기로 총 6기가 있다. 

근세 부도 3기에는 한계자 보산선사(閑谿子 寶山禪師), 서봉당 원철 대선사(瑞峰堂圓徹大禪師), 만옹당(晩翁堂)이 있으며, 조선 후기 부도 3기에는 정송당(靜松堂), 연하당(蓮河堂)과 오랜 세월로 당호가 육안(肉眼)으로 식별되지 않는 부도 1 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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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군

 


◈ 화재자료전시장(火災資料展示場) 

세심수각 언덕 밑으로 내려가면 6.25 때 소실된 낙산사를 재건한 재건공덕비와 2005년 화재를 복원한 후 화재를 연상케 하는 조형물 등이 있고 불탄 기와로 쌓아 올린 탑이 3기 있으며 정자도 있다. 


◈ 선열당(禪悅堂) 

본래 선열(禪悅)은“선정에 들은 즐거움”이란 뜻이나, 이곳이 공양간(供養間)으로 사용함으로“선정에 들은 즐거움을 맛보는 곳”이다. 낙산배 시조목 기념탑에서 우측으로 있다. 앞면 6칸, 옆면 5칸으로 1층은 공양간이고 2층은 요사채이다


◈ 취숙헌(聚宿軒) 

템플스테이를 운영하는 건물로 세심원(洗心院) 저온저장고, 해우소까지 갖추고 있다. 앞면 15칸 옆면 3칸으로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다. 선열당 바로 아래에 있다. 


◈ 심검당(尋劍堂) 

지혜의 칼을 찾는 집이다. 검(劍)은 마지막 무명(無明)의 머리카락을 끊어서 부처의 혜명(慧明)을 증득(證得) 하게 하는 취모리검(吹毛利劍)을 상징한다. 사찰의 선실(禪室)로 앞면 11칸 옆면 3칸의 ㄱ자 형태의 팔짝 지붕이다. 


◈ 범종루(泛鐘樓) 

사천왕문을 지나면 바로 왼쪽에 있으며 2005년 이후 새로 지었으며 복원된 낙산사 범종과 또 다른 종이 있다. 북, 목어, 운판도 걸려 있다. 특이한 점은 범종루의 한자가 불경 범(梵) 자가 아니라 물소리 범(泛)자를 썼는데 이는 낙산의 해조음(海潮音)을 상징한다고 한다.  


◈ 백화수각(白華水閣) 

원통보전을 바라보며 사천왕문 좌측에 대리석 수각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의 갈증을 풀어주고 아름다운 낙산사 경내를 장엄하는데 일조를 하고 있다. 백화수각은 백화도량을 나타낸 것으로, 수각을 디자인할 때 백화 의 전서체 형태를 사용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용의 입에서 물이 나오는 사각(四角)의 수각 부분은 흰 백(白)자모양으로 만들고 아랫단은 꽃 모양을 본떠서 만들어 흰 백자와 꽃 모양으로 백화도량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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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수각(白華水閣)

 


◈ 빈일루(賓日樓) 

빈일루는“동해에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는 누각”이란 뜻이다. 건물이 처음 지어진 시기는 정확하지 않다. 1767년 박종(朴琮)이 쓴 기행문인「동경유록(東京遊錄)」에는 빈일료(賓日寮)라고 하며, 서쪽에 있던 송월료(送月寮)와 동서로 짝을 이뤄 손님을 맞이하는 곳이라고 하였다. 숙종이 친히 쓴 어제시(御製詩)가 있었으며, 밖을 내다보면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고, 해와 달이 떠오르는 광경을 볼 수 있다고 하였다. 1928년 간행된『건봉사급건봉사말사사적(乾鳳寺及乾鳳寺末寺史蹟)』에는 1888년(고종 25)에 선학 스님이 고쳐 지었고, 1912년에 해성 스님이 고쳐지으며 남긴「낙산사빈일루중수기(洛山寺賓日樓重修記)」가 있다. 1928년에 빈일루 규모는 8칸이었다고 한다.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소실되어 복원되지 않았었다.  6.25 이후 없어진 건물을 2005년 화재 이후 낙산사 전각을 복원하면서 김홍도의 낙산사도를 토대로 발굴하여 2009년에 복원한 것이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로 2층 건물이며, 지붕 앞면은 팔작, 뒷면은 맞배지붕으로 설계하였다.

건물의 주초석은 양양 마을의 돌을 사용했고 누각의 기둥은 지난 2005년 화마를 견딘 느티나무와 소나무를 손질해서 세웠다. 현판은 총무원장을 지낸 가산 지관(智冠) 스님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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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숙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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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종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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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일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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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향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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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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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행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