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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 6백년 미래를 잇는 양양문화원

    양양에서 영서를 잇는 백두대간의 영(嶺)

    1. 고문헌 속 필여령

    페이지 정보

    조회 31회

    본문

    고문헌 중에 필여령(弼如嶺)에 대하여 가장 먼저 나타나는 문서인『여지도서(輿地圖書)』와 양양부읍지(襄陽府邑誌)는 거의 동시대인 18세기 중반의 기록으로 내용도 비슷하다.

    이중 여지도서가 좀 더 세밀하다. 고문서에 대부분은 필여령(弼如嶺)으로 나오지만 『관동지(關東誌 1829∼1831)』,「청구도(靑邱圖1834)」, 『대동지지(大東地志 1866)』, 「동 여도〔東輿圖 19세기 철종(哲宗) 연 간〕」,「청구요람(靑邱要覽1895)」 등에는 필노령(弼奴嶺)으로 되어 있다.

    또한  1834년도  김정호가  제작 한  청구도를  보면  귀둔까지는  인 제현 관할이었으나, 기린면 진동리 는  당시  춘천부  관할  기린현(猉麟縣)에  속해  있었고, 구룡령  너머 홍천(洪川)과  평창(平昌)의  일부 지역은  강릉대도호부(江陵大都護 府)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필여령 은 인제계(獜蹄界)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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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1〉「조선팔도지도」의 필여령(弼如嶺)



    가. 여지도서(輿地圖書)


    1757년∼1765년에  발간된『여지도서(輿地圖書)』의  양양  관애(關阨) 편에는 ‘오색령은 양양부  서쪽  50리에  있으며  설악  남쪽  가지에  접하고  인제와  경계를  이룬다. 필여령은 부 서쪽 40리 정도에 있으며 오색령 남쪽 가지와 접하고 춘천부 기린과 경계이다. 소동라령은 부서쪽 60리 정도에 있으며 필여령 남쪽 가지에 접해 있고 기린계로 서울로 통 하는 길이었으나 지금은 폐지되었다.(생략) 형제 고개는 부 서쪽 40리 정도에서 오색령 길로 향할 때 있으며 두 고개가 마주하는 언덕으로 서로 닮았다 하여 이름하였다. 양한 치 고개는 부 서쪽 20리에 있으며 구룡령을 향하는 길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필여령을 춘천부 기린과 경계”라고 한 것은 단목령과의 혼돈(混沌)에서 비롯된 것으로 인제와 경계라야 맞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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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2〉형제현 전경



    ■ 형제현(兄弟峴)

    44번 국도의 온정2교 뒤편에 휴식공간에서 남쪽으로 보이는 두 봉우리로 첫 번째 봉 우리는 만경대가 있는 봉우리고 또 하나는 용소폭포 탐방지원센터 동남쪽 봉우리로 서로 마주하고있다. 과거에도 두 봉우리를 넘어 다녔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으며, 위의 기록과 같이 오색령으로 향할 때 있는 봉(峰)으로 두 봉의 사이에 길이 있어서 이 길로 다녔을 것으로 사료된다.



    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1861년  고산자  김정호(金正浩)가  제작한 「대동여지도」는  우리나라의  대  축적  지도로 자신이 제작한「청구도」를 증보 수정한 지도첩이다. 양양의 영(嶺)으로는 오색령·필여령 (弼如嶺)·구룡령 세 개의 영(嶺)이 북에서 남으로 차례로 열거되어 있다.

    특히, 미시령(彌矢嶺)을 연수파령(連水坡岺)으로 표기하였는데 연수파령(連水坡岺)을 동 방문화대학원 권상호 교수는“물길이 이어지는 고개”로 풀이하였다.



    다. 만기요람(萬機要覽)과 청구요람


    1808년『만기요람』군정편 4(軍政編 四) 관방(關防) 강원도에는 ‘양양부 영로는 오색 령·필여령, 기린(猉麟)로는 소동라령·조침령, 구룡령은 강릉과의 경계이다. 형제현(兄弟 峴)·양한치(兩寒峙)는 모두 서쪽 통로다.’라 기록되어 있다.

    청구요람은  1834년  고산자  김정호가 제작한 「청구도」를 1895년에  모사(模寫)한 이본(異本)으로 오색령, 한계산과  고성[(古城:한계산성)], 필노령(弼奴嶺 ), 형제현, 정족산(鼎足山)과 이어진   연수령(連水嶺), 박달산(朴達山)의  기록이  지도에  잘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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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3〉『만기요람』9 양양영로 (자료 : 규장각한국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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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4〉「청구요람」의 필노령(弼奴嶺)



    라. 증보문헌비고 권28(增補文獻備考 卷二十八)


    1903년부터 1908년 사이에 편찬된『증보문헌비고』양양 산천편(襄陽山川編)에는‘오 색령은 양양부 서쪽 50리에 있는데 높아서 모든 산을 볼 수 있어 기록한다. 영로인 오색 령은  현재  양양영로(襄陽嶺路)임을  알  수  있다. 필여령과  함께  서쪽  도로는  소동라령과 조침령이다. 구룡령은  강릉으로  가는  도로이다. 형제현과  양한치도  함께  서쪽  도로이다. 인제  영로(麟蹄嶺路)는  미시령과  흘이령, 탄둔령, 두모치, 건리치이고  오색령은  지금의 양양  영로로  서파령(지금의  미시령)과  함께  동로이다. 가노치는  남로, 진보령은  북로이 다.’로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