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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 6백년 미래를 잇는 양양문화원

    양양지방의 영(嶺)

    [제2편] 7호선 국도로 이어지는 영(嶺)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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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7.jpg

     


    ○ 고송(古松)고개와 말령(末嶺)고개


    양양군청을 중심으로 남쪽을 향하는 영(嶺) 중 가장 첫 번째가 고송(古松)고개이다. 고송고개는 손양면 송현리(松峴里)와 손양면 간리(間里)의 접경지역에 있는 고개로 

    국도  7호선  양양대교  남단에서  102기갑부대  앞까지이다.  고개  이름은  일제강점기인 1939년에 지어졌다고 한다. 

    이곳은 신속하게 공문서를 전달하기 위해 설치된 역에서 사용하는 말(馬)이 사육되 고 전령(傳令)이 대기하고 있던 곳이다. 이 파말마(擺撥馬)들이 당도하는 지역의 고개 는 출발하는 지역의 이름을 따서 불려지기도 하는데 주문진에 있는 고개가  “양양고 개”로 삼척시에 있는 고개가 “명주고개”로 불리는 것이 그 예다. 

    고송(古松)  고개와  말령(末嶺)  고개가  이웃하여  있어서  같은  고개로  오해(誤解)를 하는데  말령고개는  간리에서  양양읍  월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군청의  안산(案山)110) 동쪽을 넘는 고개라 하여 “안산 앞고개”라고도 하였다. 

    말령고개는  오대산의  지맥(地脈)이  한  줄기는  정족산에서  혈(穴)을  맺고  한줄기는 서면 용천리(龍川里) 앞의 구탄봉(九嘆峰)에서 동으로 이어지다가 7번 국도로 인해 끊 어지니 마지막 고개라는 뜻으로 말령(末嶺)이 되는 것이다.



    ○ 밀양(密陽)고개


    국도 7호선 손양면 하왕도리(下旺道里) 양양국제공항호텔  앞에서 와리(瓦里),  밀양리(密陽里)를 통과하여 상양혈리(上陽穴里) SK주유소로 이어지는 3km 구간이다. 밀양 고개가 4차선으로 확·포장 되기 이전에는 눈만 내리면 차량이 체인을 치고도 고개를 넘지 못하여 발이 묶이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4차선으로 확·포장 되면서 곡선을 직 선화하고 정상부의 높이를 10m 이상 깍아 낸 이후부터는 이런 문제가 모두 해결되었 다. 

    고갯마루의 마을이 밀양리(密陽里 : 햇빛을 조밀하게 받는 마을)라 그런지 눈이 오 래도록 쌓이지는 않고 금방 녹는 특징이 있다.



    ○ 진등고개


    진등은 과거 일제가 수탈을 위해 개설한 신작로(新作路) 이전의 국도로 102기갑여 단 앞 산(국도 7호선 동쪽 손양면 송현리 산36-3임)에서 손양면 하양혈리 상운교(祥 雲橋)까지 이어지는 5.5km의 산길이다. 이 도로 인근 마을은 모두 이 도로와 이어지 는 지선(枝線)이 있었다.

    진등은 말 그대로 길이가 긴 고개〔嶝〕로 “장산등(長山嶝)”이라고도 하였다. 또 다 른 이름으로는 군청을 중심으로 진손(眞巽)111)  방향에 있는 언덕이란 뜻으로 “진손치 (眞巽峙)”라고도 하였다.

    신작로가 개설되면서 점차 이용 빈도가 줄어들다가 국도 7호선이 확·포장 되면서 사용하지 않게 되었으며 진등고개 마루에는 설해원(雪海園) 골프리조트와 양양국제공 항이 들어서면서 흔적마저도 사라졌다.



    ○ 만세(萬歲)고개


    국도  7호선의  현북면사무소에서  현북면  기사문리(其士門里)  어민복지회관까지  약 1.8km 구간을 말한다.

    본래  이  고개는  “기사문고개”,  또는  “관고개〔館峴〕”라고  부르다가  기미독립운동 당시인 1919년 4월 9일의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 대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그날의 사 건을 간략히 묘사한다.

    현북면의 600명 이상의 군중이 면사무소 주변에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양양면 으로 가려고 할 때 손양면 동호리 사람 김익제(金翼濟)가 양양면에는 이미 일본 경찰 수비대가 주둔하고 있다며 인명 피해를 우려하여 행진을 저지시켰다.

    이에 계획을 바꾸어, 기사문주재소 앞에 가서 만세를 부르기로 하였다. 하광정리와 기사문리 사이에 있는 해발 50m의 관(館) 고개로 이장들이 각 마을의 선두에서 “대 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올라갔다, 때마침 신작로에 가로수를 바쳐놓은 지주목이 있었는 데 일부 군중이 이것을 뽑아 들고 관 고개를 넘어갔다. 

    기사문주재소에는 며칠 전부터 현북면 일대의 만세운동 분위기를 짐작하고 강릉에 서 수비대가 도착하여 있었다. 군중이 주재소 전방에 있는 다리 부근에 이르렀을 때 주재소 순사 이홍근이 나와 선두를 막았다. 한참 동안 군중과 일경(日警)이 대치하며 옥신각신하다가 만세를 불렀고 분위기가 고조되자, 주재소 옆 개울가 언덕에 숨어 있 던 5명의 수비대와 일경이 발포하였다. 순식간에 선두에 있던 군중이 쓰러졌다. 현장 이 피바다가 되면서 군중은 흩어졌다. 이날 현장에서 9명이 사망하고 약 20여 명이 부상하였다. 

    그 사건 이후부터 이 고개를 “만세(萬歲) 고개”라 부르게 되었다. 



    ○ 잔교리(棧橋里)고개


    잔교리고개는  국도  7호선의  현북면  잔교리  38선교(三八線橋)에서  무궁화동산(경찰 전적비) 북단까지 약 1.5km 구간이다. 고개의 정상부에는 탱크 저지선이 있는 아주 낮은 고개이다.

    이  고개  동북쪽에는  기사문항이  있으며  그  남쪽에는  커다란  38선  표지석이  있는 38선 휴게소이다. 

    1945년 해방과 더불어 미국과 소련에 의지하던 정국은 북한은 1945년 11월에 보안 대(保安隊)를 조직하였고 남한은 11월 13일 국방사령부(國防司令部)를 설치하였다.

    1948년 8월 15일 남한의 정부 수립으로 38선이 고착되는데 동쪽 끝은 잔교천(棧橋 川)이 바다와 잇닿는 곳에서 잔교리 297번지를 관통하여 서쪽으로 지나다 보니 기사 문리는 북한이고 잔교리, 대치리와 명지리는 남한이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 이후 전세를 뒤집어 10월 1일 10시에 국군 제3사 단 23연대가 38선을 공식적으로 돌파한 바로 그 장소가 잔교리고개이다. 

    이후 1956년에 10월 1일을 “국군의날”로 지정하였으며 “양양군민의 날”이 되었다.



    ○ 동산(銅山)고개


    국도 7호선의 현남면 북분리 솔밭캠핑장 남단부터 동산리 죽도해양레포츠센터 앞까 지 약 1.3km 구간을 “동산(銅山)고개”라고 한다. 동산리에는 명주(溟州)의 속현인 동 산현(洞山縣)이  있었는데 고려 현종  9년인  1018년  양양의 옛 이름인  익령현(翼嶺縣) 에 내속(內屬)되었다.

    현이 있었던 이 고개를 중심으로 남쪽은 현남면, 북쪽은 현북면이 되었으며 동산의 한자도 고을을 뜻하는 동(洞)자에서 구리동(銅)로 바뀌었다. 

    요즘은 고개 동쪽으로 해수욕장도 2곳이나 운영하며 양양군의 많은 투자로 서핑의 메카가 되었다. 



    ○ 광진(廣津)고개


    국도 7호선의 현남면 인구리 해송교(海松橋)에서 광진리 현남중학교 앞까지 1.6km 구간을 “광진(廣津)고개” 혹은 “광나루고개”라고 한다. 이 고개의 정상은 휴휴암(休休 庵) 주차장 근처가 되는데 이곳은 광진리(廣津里) 소재이다 보니 광진고개라고 칭하 게 되었다.

    과거  광진리는  “큰  바다”라고  부르던  것이  한자표기로  바꾸면서  광진리(廣津里)라 부르게 되었고 “넓은 나루”라는 뜻에서 속칭 “광 나루”라고도 부른다. 



    ○ 남애(南涯) 고개


    국도 7호선의 현남면 남애리 포매교(浦梅橋)에서 남애1리 해수욕장 입구인 남애삼 거리까지 약 2km 구간이다. 정상 부근에는 일명 “미륭마을”이라는 자연부락이 있다. 과거  1970년대  중  후반에  당시  신작로(新作路)라  불리던  국도  7호선을  2차선으로 확·포장하면서 생겨난 이름이다. 

    이 사업은 지금의 동부그룹 전신인 미륭건설의 주도로 이루어졌는데 도로를 닦으면 서 고개 밑으로 보이는 남애항(南涯港)의 전경에 매료되어 후에 리조트 등 대규모 관광지를 꿈꾸며 이 지역의 많은 땅을 매입하면서 미륭마을이 되었다.

    이 고개에서 내려다보이는 남애항은 강원도 3대 미항(美港)으로 불릴 정도로 아름 다우며 주변의 백사장마다 해수욕장과 캠핑장, 서핑의 천국이 되었다.



    ○ 눈고개〔臥峴〕


    군청을 기준으로 북쪽으로는 별로 고개라 할 곳이 없는데 그중 유일한 곳이 눈고 개이다. 눈고개는 와현(臥峴)으로 누운고개이나 이를 줄여서 눈고개로 불린다.

    낙산사 주차장이 있는 4거리에서 동덕여자대학교 설악수련원(설악해수욕장 입구)까 지 약 1.5km 구간이다.

    이 고개의 동쪽은 오봉산(五峯山) 낙산사로 다섯 봉우리 중 마지막인 신선봉(神仙 峯)에 낙산사가 자리한다.

    낙산사 바로 옆 동네는 세 번째 봉우리 밑의 답리(畓里)로 “냉천(冷泉)”이 나오는데 신라 때 원효대사의 전설이 전해오고 있어 “냉장터”라고도 하는데 과거에는 피부병에 좋다고 하여 많이 이용하였다. 

    눈고개는 높지도 않은 고개인데 눈만 오면 차들이 고개를 넘지 못하고 길옆에 누 워있어서  이름이  “누운〔臥〕”  고개라  그렇다고  하다가  눈〔雪〕  고개라  그렇다고도 하였다. 

    요즘은 답리와 용호리(龍湖里) 사이로 기압골이 생성되어 눈고개는 다른 곳보다 눈 과 비가 더욱 많이 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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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0) 안산(案山) : 풍수지리에서 가택이나 묘택이 있는 혈 맞은편의 낮고 작은 산.

    111) 진손(眞巽)은 풍수지리의 8방 중 진실한 동남방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