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오색령 2등도로 개착을 요구하는 진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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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령을 2등도로로 개착(開鑿)하기 위해서 진심을 다한 이웃 7개 군과 함께한 노 력과 추진 내용에 대한 기사를 아래에 정리하였다.
▪ 襄陽直通의 必要로 春川에서도 陳情
▪ (양양 직통의 필요로 춘천에서도 진정 1922. 12. 6)
京城五里津線이 杆城線으로 變定됨에 對하야 方今 襄陽으로 陳情委員이 上道하얏다 함은 旣報와 如하거니와 此에 對하야는 春川一般이 擧留贊助 하는바 異口同說로 春川 發展策은 寧히 杆城을 開鑿함보다 襄陽을 開鑿함이 必要라 云하는바인대 勿論 春川入 場으로는 杆城도 開鑿하고 襄陽도 開鑿되면 더욱이 滿足타 謂할지나 若杆城만 開通되 고 襄陽은 開通치 아니하면 도리혀 襄陽으로 開鑿함이 春川에서 하는 影響이 多하다. 認하는 同時에 本 月 日에는 春川邑內 有力者 多數가 春川郡廳에 集會하여 萬端協議 한 結果 陳情委員을 選定하야 上道하얏스며 又는 左와 如한 陳述書 까지 提出 하얏다 하더라.
경성∼오리진선25)이 간성(杆城) 노선으로 변경 확정됨에 대하여 방금 양양의 진정 위원들이 강원도로 올라갔다고 하는 것은 이미 보도된 바와 같다. 이에 대하여 춘천 의 일반주민은 모두 함께 찬성하고 돕고자 하는 바인데 물론 춘천의 입장으로는 간성 도 개착하고 양양도 개착되면 더욱이 만족스럽다 이르겠으나 만약 간성만 개통되고 양양을 개통치 아니하면 도리어 양양으로 개착하는 것이 춘천에 끼치는 영향이 더 많 다는 것을 인정하는 동시에 본 월 일에 춘천 읍내 유력자 다수가 춘천 군청에서 집 회하여 여러 가지를 협의한 결과 진정 위원을 선정하여 도청으로 올라갔으며 또한 좌 측과 같은 진정서를 제출하였다. 하더라.
陳情書(진정서)
京城東海岸間의 路線에 對하야 釋컨대 地方 發展策 特히 春川의 發展策으로하여 卑見 을 陳하야 當局의 諒解를 求코자하오니 賢察하야 주시기를 望하와 左記 理由를 具하 야 陳述함.
경성에서 동해안 간의 도로 노선에 대하여 풀어 보건데 지방발전대책, 특히 춘천의 발전대책으로 우리의 의견을 진정하니 업무를 맡은 기관의 양해를 구합니다. 현명하 게 살피시기를 바라며 좌측에 기록하여 이유를 자세히 진술합니다.
1. 春川의 位置에 對하야 論하면 春川은 西으로 京城이 二十餘里 東으로 東海岸 三十 里北은 華川이 十里 南은 洪川이 十里 인바 西,南,北의 交通 不完全의 時代에는 春川邑內戶數 三四百戶에 不過하더니 交通機關이 完備된 今日에 在하야는 頓然히 一千五六百戶에 達하얏스니 若 今日로 東海岸을 直通될時는 不過 幾年에 幾千百戶 에 達할줄로 預想함.
2. 春川 物貨 輸入先을 論하면 第一位는 東海岸인바 東海岸 中要地는 襄陽으로 (大浦 의 築港은 旣히 成立되고 注文津도 將來 大大로 擴張될터인대 其 距離로 하야도 襄陽이 最近한 地方이라) 第二位는 京城, 第三位는 華川, 第四位는 洪川인바 西,南, 北은 旣히 交通이 便利하게 되얏슨즉 更論할바이 無하나 東海岸에 就하야 論하면 江陵, 襄陽, 杆城, 通川의 物産은 京元線 汽車로 京城을 經하여 京春線 馬車로 春 川에 到達됨으로써 海陸 産物이 腐敗毁傷의 慮를 免키 難함은 ㅁ陳을 不要하거니 와 右四郡中 最히 重要한 地方은 江陵, 襄陽인데 此 兩郡으로 京城, 春川까지 人 馬의 通行 貨物의 運輸는 襄陽邑으로 五色嶺을 經하야 通行하는것이 直經이라 云 하겟는대 今에 珍富嶺을 通하야 杆城에 二等路線을 設定케된다하면 江陵, 襄陽으 로의 旅行 及 貨物로 하야금 長距離를 ㅁ上하야 更히 南에 回ㅁ 하야 通行케되니 江陵은 大關嶺에 襄陽, 高城으로는 京元線을 經하야 京城에 通行케 될것이니 此의 路線은 杆城에 限하야 施設함에 不過하다 云하노라
3. 經費關係로 論하건대 珍富嶺을 通하면 工費가 少하고 五色嶺을 通하면 工費가 多 大하다하나 地方發展을 主로 함에 는 工費의 多少에 拘泥할것이 안일줄로 思하거 던 又況 襄陽人民으로서 15萬圓을 自擔하기로 旣히 上申이 有한 듯하니 然則 工 費에 對하야서도 別로 憂慮가 無할 쥴노思하노라
4. 珍富嶺과 五色嶺과의 比較를 論하면 珍富嶺은 路面이 狹隘하여서 四里에 亘하도록 圓寂할 뿐 아니라 風致, 景色, 産物 等 可取할것이 無하나 五色嶺은 人家連接하고 左右 風致景色이 恰似 金剛山의 趣味가 有하고 且 五色泉의 特産燒酒는 自古로 全 鮮에 特殊 且 貴重한 佳釀이라 云하에 將來 益益 更히 發現하여서 世界에 美名을 振할 豫想이 有하다 云함.
5. 二等路 開通 後 春川에 及 할 影響을 論하면 江陵은 大關嶺을 經하야 京城에 直通 함으로써 며 此道路가 珍富嶺을 開通한다하면 旣 通行에는 毫도 利害關係가 無함 으로 春川에는 何等效力이 生치아니하니 五色嶺을 通하야 襄陽에 開通할시는 江 陵, 襄陽 全部의 人馬 貨物은 擧皆 春川을 經하야 京城에 通行될것이오 從하야 高 城, 杆城도 亦然 할지니 如此則 春川으로는 此에 無上의 幸福이될줄로 思하노라 (春川)
▪ 五色嶺 道路에 關한 陳情
(오색령 도로에 관한 진정 1923. 2. 5)
京城으로 春川 麟蹄를 經하야 嶺東海岸에 中心地인 襄陽郡에 直線되는 五色嶺 開鑿 問題에 對하여 該 郡旣成會로 陳情委員이 上道함은 旣報와 如하거니와 同郡 人民의 一心期成할 希望熱은 益益 激甚하야 今 又 陳情次로 一月 三十日에 同會 副會長 金翼濟外 四氏가 雪堀을 踏破하고 上道하였는대 此에 對하야 襄者 春川郡 有志로 贊同하 야 陳情書를 旣히 提出한바이오 麟蹄, 楊口, 洪川, 等 三郡 有志도 各其 郡物産 貿遷 의 共公利益과 京春聯合의 交通便宜를 條條說明한 陳情書를 本道廳에 陸續提出하얏고 追 又 傳聞에 의하면 江陵, 三陟, 蔚珍 等 郡에서도 亦 將同聲 協贊 云하니 此에 對 하야 襄民一同의 熱誠渴望은 고사하고 四郡陳述과 三郡協贊을 隨聞推測하면 該 五色 嶺 道路 開通은 東西 各郡의 通商及 交通發展上에 最大機關으로 確認할뿐 不 ㅁ 라 襄陽郡民에 對하야는 死活問題에 屬함이 無疑한 것은 以上으로 推測하더라(春川)
경성에서 춘천 인제를 경유하여 영동해안의 중심지인 양양군으로 바로 가는 노선인 오색령 개착 문제에 대하여 춘천군의 기성회 진정 위원들이 도청으로 올라간 것은 이 미 보도한 바와 같다. 춘천군의 인민이 한마음으로 목적한 희망의 열기는 더더욱 격 심하여 지금 다시 한번 진정을 하려던 차에 1월 30일에 춘천군 진정위원회 부회장 김익제 외 4명이 눈 속을 뚫고 험한 길을 끝까지 걸어갔다 왔는데 이에 대하여 양양 사람들은 춘천군 유지들이 찬성하고 동의하여 진정서를 이미 제출하였고 인제, 양구, 홍천 등 3개 군의 유지도 각기 자기 군의 물산을 무역하고 옮기는 것에 대하여 공공 의 이익과 경춘 연합의 교통편의를 조목조목 설명한 진정서를 강원도청에 계속하여 제출하였다고 하였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서 전해 들은 바로는 추가로 강릉, 삼척, 울 진군에서도 역시 장래에 한목소리로 협조하고 도울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에 대하 여 양양군민 모두의 열렬한 정성과 갈망은 고사하고라도 4개 군의 진술과 3개 군의 협찬으로 들은 바를 헤아려보면 마땅히 오색령 도로 개통은 동서 각 군의 통상과 교 통발전 분야에서 기관에게는 최고로 큰 사업임을 확인하였을 뿐만 아니라 양양군민에 대하여는 사활의 문제에 속함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니 그 이상으로 헤아려야 하더라.
▪ 五色嶺道路 開鑿과 洪川郡民의 希望
(오색령 도로 개착과 홍천군민의 희망 1923. 2. 8.)
襄陽 直通인 五色嶺 二等道路 開通에 對하야는 洪川郡民도 希望하는바 有하야 郡有 志 金聲遠 外 64人은 連名하야서 道에 陳述書까지 提出하얏다는 대 그 陳述의 內容 은 如 左하더라(春川)
양양으로 직통하는 오색령 2등 도로 개통에 대하여 홍천군민도 희망하는 바가 있 어, 군의 유지 김성원 외 64인이 연명하여 도에 진정서까지 제출하였다는데 진술의 내용은 좌와 같더라.
陳述書(진술서)
本地方 發展策으로하야 京城으로 東海岸에 直通하는 道路 開通에 對하야 左의 卑見을 具陳컨대
1. 洪川郡은 東은 襄陽이 二十八里 西는 京城이 二十八里 南은 原州가 十一里 北은 春川이 十里 인바 道路는 春川 原州 兩地에 二等 道路가 通하되 東西에 通하는 道路가 缺함을 因하야 運輸 交通의 便을 不得함으로 豊富한 本郡의 産物이 空에 遺棄케되며 産業도 亦是 遲遲不進하야 오직 環境 各郡의 隆盛를 仰示할뿐이라 今 에 此의 頹勢를 挽回치아니하면 本郡의 發展을 期키 難한바이라 故로 此에 郡民은 京城 襄陽線 二等道路의 開通을 請望하야서 本郡뿐아니라 地方의 發展에 資 코자 함.
2. 江原道의 東部 海岸地方은 所謂 嶺東으로 一地域을 劃케됨은 地勢에 因한바이라 此가 嶺西地方에 通하는 道路가 不在함에 因하야 南北 及 北部에는 漸次開通을 見하되 中央部에는 一線도 不存한바 京城으로 最短距離인 直通線으로하여금 最히 必要로 認하는바 其 開通의 際에는 交通運輸의 便이 增進하야 地方의 開發은 勿 論 嶺의 東西地區는 益益接近하야 共榮의 實을 擧케됨.
3. 本郡과 襄陽郡과는 古來 密接의 關係가 有한바 山地인 本郡과 沿海인 襄陽과는 物 資交換 有無相通은 自然의 勢라 云하겟스나 本地方의 大市場인 原州와의 中繼地가 되야 兩方面의 物資는 當地를 經由케됨으로 俗語에 洪川은 襄陽의 出品場이라 云 함에 其關係는 可以 推知할바이라 함. 兩地間에는 道路가 二線이 有한바 一線은 五色嶺을 越하야 麟蹄郡을 通過하는바 何時던지 車輛이 不通하는 故로 一朝車道의 開通이 될 바에는 通商 殷賑을 極할바이라함.
4. 聞하건대 襄陽民은 工費를 負擔하야 本道로 開鑿을 企圖하기로한 한즉 此가 實로 經濟的으로 東西를 連絡하자함이니 此가 現下 急務이며 地方發展策으로도 此가 急 先務라할지라 附近 各郡民의 共鳴함에 至함이 豈非當然事之理乎아 殊히 그 沿道는 物産이 夥多함으로 市場이 多有하고 地方에는 景致豊富하며 五色里의 藥水 及 溫泉 等은 其名이 世에 高하니 실로 本 線路는 經濟的 又는 文化的 急速開通의 必 要가 有하다 信함.
右의 次第로 特別히 御銓諾로써 本線開通의 途를 開하기를 望함은 此가다만 一部 地 方民의 幸福에 止치안을 줄로 思하노라 右를 陳述함.
洪川郡 金聲遠外 六十四人
▪ 五色嶺道路開鑿과 麟蹄郡民의 陳述
(오색령 도로 개착과 인제군민의 진술 1923. 2. 10)
<그림 8> 1923년 2월 10일 매일신보 기사
五色嶺 道路 開鑿에 對하여 麟蹄郡民도 左와 如히 陳述書를 提出하였더라
/ 오색령 도로 개착에 대하여 인제군민도 좌와 같이 진술서를 제출하였더라.
陳述書(진술서)
麟蹄郡 發展策을 爲하야 京城으로 東海岸에 達하는 江原道 橫端道路 開鑿에 關하여 左의 事由를 具하야 陳情함.
1. 麟蹄郡은 江原道의 中部山間에 在하야 東은 襄陽郡 西는 春川郡 南은 洪川郡 北은 楊口郡에 境한바 道路는 春川方面을 除外한 西에는 車輛을 通치 못함으로 交通이 不便하야 開發의 程度가 他에 比하여 甚히 劣勢에 處하얏슨 즉 本郡의 發展策으로 는 第1로 道路開通에 在하다 請함.
2. 交通上 密接의 關係가 有한 春川 襄陽으로 本郡 及 兩地 間에 人馬의 往來는 頻繁 하나 道路의 不備로 遠이 元山을 迂廻하여 海路에 依하는 境遇가 多한지라 故로 襄陽方面에 二等 道路가 開通되면 但 兩地뿐만안이라 南北 各地方과의 交通도 增 進連絡될지니 地方의 幸慶이 此에 及할지며
3. 物資 移出入 關係로 云하건대 本郡으로 移出物品은 主로 襄陽市場에 搬出되고 海 産物雜貨 等의 必需品은 殆히 全部들 襄陽郡으로서 移入되는 現況임으로 商業의 取引은 同地를 第一位로함 他日에 本 道路가 開通되어 車를 通함에 至하면 大貨物 은 船便에 依하여 襄陽에 揚陸되고 同地로 搬入되는 物貨는 多量이오 具廉價를 得 할지니 然則郡民의 利益이 多大함으로 商工業은 一層盛大에 至할지며
4. 京城으로 東海岸에 達하는 二等 道路는 京城 五里 津線이 有하야 旣히 一部를 起 工케되얏스나 襄陽郡은 通過치 안음으로 曩에 襄陽郡은 奮起하야 本郡으로 直通하 는 二等道路 開鑿을 絶叫하매 春川郡民도 此에 共鳴하야 其速成을 期待河는바인대 其中間地인 本郡으로는 此가 眞實로 本郡의 發展上 緊急 切實의 問題라 思하고 雙 手를 擧하야 贊意를 表하며 具實現을 期하는 바이라.
5. 五里 津線은 東北方 巨津港에 出한다하나 其 經過地에 는 市場으로도 可見할 處이 無히고 又 同方面과 交通은 從來密邇치 아니한 바이오 若 襄陽線이 開通되면 商圈 은 江陵方面에도 擴大케 될지며 延하야 産業振興 地方開發等과 其他利便이 甚大케 될것은 敢히 贅陳을 不要할줄로 信함. 右에 次第로 陳述한바이온 즉 願컨대 郡民 의 願望을 採擇하며 本線이 開通되도록 御銓諾를 仰코자 玆에 陳情함.
麟蹄郡 李明榮外 88인
▪ 五色嶺道路 開鑿과 楊口郡民의 希望
(오색령 도로 개착과 양구 군민의 희망 1923. 2. 17)
襄陽 直通인 五色嶺 二等道路 開鑿에 對하야는 楊口郡民도 贊同 希望하는바 亦是 此에 對한 陳述書까지 提出 하얏는데 陳述書는 左와 如하더라(春川) / 양양 직통인 오색령 2등 도로 개착에 대하여는 양구군민도 찬동 희망하는 바로 역시 이에 대한 진술서까지 제출하였는데 진술서는 좌와 같더라.
陳述書(진술서)
楊口郡은 本道 中部山間에 僻在하여 交通 不便의 所致로 郡勢不振하여 交運의 程度 他郡에 비하야 甚히 劣함은 郡民이 深히 遺憾으로 思하는 바이라 所聞에 依한 則 京城으로 本道 東海岸에 達하는 道路開通에 關하여 襄陽及 春川郡民이 共同하여 極力 盡瘁 한다. 하옵는바 此가 本地方 開發上 平素待望에 迎合한 計劃으로 又 本郡民도 多年 宿望을 特達 할바임으로 此에 對한 左記卑見을 陳述하오니 御監察하여 주시기를 望함.
1. 本郡은 四邊 山岳으로써 圍하야 郡內는 大槪 道路 不良함으로 車를 通함은 僅히 春川及 華川郡에 達하는 線路뿐으로 本道로는 此가 卽 他日 東海岸까지 開通되야 京城과 連絡할 道內 主要線路인卽 本郡의 發展도 第一 本線에 懸하얏으니 開通의 速成됨을 切望함.
2. 本郡産物로 利出되것은 穀物 大麻 蜂蜜 等이오 移入品은 雜貨 海産物 등인데 道 路不良의 致로 遠히 他郡을 迂廻 함으로 運賃이 亦 多額이 되야 物價는 出貨는 低 廉이고 人貨는 昻騰하야 甚히 不利한 狀態에 在한 故로 海岸線이 開通되면 一轉하 여 商圈의 擴大並産業의 興隆에 至하야 其 便益이 至大함에 達할지며
3. 京城東海岸線 二等道路로 曩에 京城 五里津線이 決定되얏으나 同線路는 沿道 落漢 하고 産物이 稀少하야 到底히 襄陽線과 比較를 不得함.
4. 襄陽方面과는 從來 交通 運輸上 密接의 關係가 有하야 物資의 交換이 最多하고 特 히 海物은 唯一의 供給地가 되는지라 그럼으로 同地는 高城, 江陵과는 海陸 共히 交通의 便이 有하고 從하여 本線路가 開通될 時는 兩地方의 物貨 襄陽을 經由하야 移入할 지니 商業取引은 大히 隆盛을 見함에 至하야 眞實로 經濟的 線路를 體現함 에 至할터인즉 工費의 多額을 要한다고 할지라도 福利增進에 比하야 亦可라 信함.
楊口郡 安植 外 二十人
貨物亦 襄陽을 經由하야 移入할 지니 商業取인은 大히 隆盛을 見함에 至하야 眞實로 經濟的 線路를 體現함에 至할터인卽 工費의 多額을 要한다고 할지라도 福利增進에 比 하야 亦可라 信함.
楊口郡 安植 外 28
▪ 五色嶺 開通으로 郡民大會, 襄陽郡民의 熱狂的 渴望으로 繼續 進行
(오색령 개통으로 군민대회, 양양군민의 열광적 갈망으로 계속진행 1923. 4. 7)
<그림 9> 1923년 4월 7일 매일신보 기사
五色嶺 道路 開通에 關한 種種의 事實과 情況은 本紙에 累報한바어니와 關係 各郡 의 熱誠希望과 該郡民의 熱狂的인 渴望은 有始有終의 決心으로 積極的 目的達成에 努 力하는 中에 甚至於 郡民이 全擔 修繕 하겠다는 決心으로 當局에 對하야 但 實地調査 와 線路測量을 要求한 結果 今般 本府로 小林 金兩技手와 紫田道技師가 該 線路 實地 踏査次로 襄陽郡에 出張하얏는데 此를 承聞한 該郡內 各面 有志 八十餘名은 呼訴次 會集하야 郡에 入하얏스나 調査員 一行은 旣히 出發 後인 故로 禾及之嘆으로 各自 散 歸하얏셧던바 更히 三月 三十一日에는 大大的 郡民大會를 開催하고 本 目的을 達成하 기까지 繼續進行할 今後方針에 到하야 徹底的 協議가 有한後 散會하얏다더라(春川)
오색령 도로 개통에 관한 각각의 사실과 정황은 본지에서 여러 번 보도한 바 있거 니와 관계 각 군의 열성적 희망과 해당 군민의 열광적 갈망은 시작한 일을 마무리할 결심으로 적극적으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중이다. 심지어 군민이 전담 하여 수선하겠다는 결심으로 해당 부서에 대하여 단지 현장 조사와 노선 측량을 요구 한 결과 이에 본부에서 고바야시(소림)기원과 김씨 기원 2명과 시비다(자전) 도청 기 사가 현지 답사차 양양군에 출장하였다. 이런 좋은 소식을 들은 당해 군내 각면 유지 80여 명은 호소차 집회하여 군청에 들어갔으나 조사원 일행은 이미 출발한 후인 까 닭에 고개를 숙이고 탄식하며 각자 해산하여 돌아갔다. 다시 3월 31일에는 대대적으 로 군민대회를 개최하고 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계속 진행할 금 후 방침에 대하 여 철저한 협의가 있은 다음에 산회하였다더라.
▪ 五色嶺路 開鑿의 目的 貫徹로 更히 陳情코져 上京
〔오색령로 개착의 목적 관철로 갱히(다시) 진정코져 상경 1923. 5. 1〕
江原道 襄陽郡 五色嶺은 二等道路에 除外 되어 嶺東 嶺西에 在한 産業消長에 至大 한 關係가 有함으로 襄陽郡民은 五色嶺 二等道路 開鑿期成會를 組織하고 總督府와 江 原道廳에 陳情한바 有할뿐아니라 隣接地되는 麟蹄, 楊口, 春川 等 郡에서도 五色嶺 開鑿을 要望으로 去 三月에는 本府로부터 技手26)가 出張하야 實地調査 한 바도 有하 야 郡民은 此際目的을 貫徹키爲하야 道 評議員 李鍾漢 氏를 上道케하야 道當局과 數 日에 亘하야 意見을 交換한바 有한대 意와 如히 進捗치 아니함으로 同 氏는 本府에 陳情키 爲하야 二十八日 當地를 出發하야 京城으로 向하얏더라(春川)
강원도 양양군 오색령이 2등 도로에서 제외되어 영동 영서에 있는 산업의 성쇠(盛 衰)에 지대한 관계가 있으므로 양양군민은 오색령 2등 도로 개착 기성회를 조직하고 총독부와 강원도에 진정한 바가 있을 뿐만 아니라 인접지인 인제, 양구, 춘천 등의 군에서도 오색령 개착을 강력하게 요망하니 지난 3월에는 본부로부터 기원이 출장하 여 현지를 조사한 바도 있다. 군민은 이 기회에 목적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강원도 평 의원 이종한씨를 도청에 가도록 하여 도의 해당 부서와 수일 동안 극진한 의견을 교 환한 바 있으나 뜻대로 진척되지 아니하여 이의원은 본부에 진정키 위하여 28일 양 양을 출발하여 경성으로 향하였더라.
▪ 五色嶺에 二等道路를 만들어 달나랴고 陳情委員上京
(오색령에 2등 도로를 만들어 달라고 진정위원 상경 1923. 6. 13)
강원도 양양군에서 요구하는 오색령이 이등도로에서 제외되어 그 고을 인민은 기성 회를 조직하고 수차 도청과 총독부에 진정한 바 있었으나 아직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여 이번에 또 군민을 대표하여 이홍영(李鴻榮)씨 외 수명이 입경하였는데 이씨는 말하되 “양양군은 강원도 동해안 중부에 있어 일반산업이 비교적 진보되고 또 보통학 교도 4개소에 달하여 일반문화는 날로 향상될 뿐 아니라 소위 영서 일대는 양양의 어염(魚鹽), 마포(麻布), 생우(生牛) 등을 수용하지 못하면 생활이 불가능한 바, 그 중에 중요한 곳은 오색령이오 또 오색리 약수는 세상에 유명함으로 칠천 명이 모여들고 경치도 설악산이 금강산에 지지 아니할 절경이거늘 이등도로로 편입되지 못하면 양양 인의 사활의 문제와 중대한 관계가 있는 고로 총독부에 다시 진정하여 목적을 달성하 기까지는 군민 전부가 상경할 예정이라” 하더라.
▪ 五色嶺道路 改修 陳情委員 歸鄕
(오색령 도로 개수 진정위원 귀향 1923. 6. 19)
江原道 襄陽郡民 代表 李鴻榮 氏 外 數名은 旣報와 如히 五色嶺을 二等道路 改修 問題에 對하여 齋藤總督을 始하야 各 關係局 部長을 訪問하고 陳情한바 有하얏는데 모다 同情하야 郡民의 實情을 聽取하얏승으로 更히 道知事에게 陳情하야 所期의 目的 을 貫徹할 決心으로 陳情員 一行은 十八日 京城을 出發하야 春川으로 向하얏더라.
강원도 양양군민 대표 이학영씨 외 수명은 이미 보도한 바와 같이 오색령을 2등 도로로 고치는 문제에 대하여 사이토 마코토총독을 비롯하여 각 관계국 부장을 방문 하고 진정한 바 있는데 모두가 동정하며 군민의 실정을 청취하였으므로 다시 도지사 에게 진정하여 소기의 목적을 관철할 결심으로 진정원 일행은 18일 경성을 출발하여 춘천으로 향하였더라.
⇒ 1923. 6. 15일자 동아일보에는 2등 도로 기성회 대표자 이홍영(李鴻榮)과 이석범 (李錫範)은 총독과 만나는 자리에서 20만원의 공사비를 양양군민이 부담할 것을 밝혔다.
▪ 明年度 豫算에 編入을 企待 襄陽郡民의 渴望하든 五色嶺道路 踏査 道에서 實 地로 踏査키를 通達
(명년도 예산에 편입을 기대 양양군민이 갈망하든 오색령도로 답사 도에서 실지로 답사키로 통달 1931. 11. 21)
[襄陽] 襄陽郡民으로 하야금 十有 餘年으로두고 熱望하던 西路 開鑿 問題는 지금으 로부터 襄陽麟蹄 兩郡社會에 好 消息을 傳하게 되었다. 本 道 當局으로부터 該 直路 踏査의 下命이 있음으로 襄陽郡守 朴在洙 氏는 지난 十一月 八日 淸水道技手와 當地官民有志 四五名을 帶同하고 西路인 鳥砧嶺을 越去하야 麟蹄郡 縣里를 經由하고 그곳 서 麟蹄郡 庶務主任을 相逢하야 모든 山水와 道路狀況을 聽取하고 同郡廳 所在地까지 踏査하고 該 郡 郡守 金極一氏와 圓滿한 協定을 마친 후 五色嶺 道路 鬱密한 良材良 木을 視察하고 同 十四日 歸廳하였다. 郡民一般은 明年度 道豫算中에 編入해 주기를 渴望하는 중이다.
양양군민이 10여 년을 열망하던 서쪽 도로 개착 문제는 지금 양양과 인제 양군 사 회에 좋은 소식을 전하게 되었다. 강원도에서 오색령 직로 답사의 하명이 있어 양양 군수 박재수씨는 지난 11월 8일 시스미(淸水) 도청 기원과 양양군 관민유지 45명을 대 동하고 서쪽 영로인 조침령을 넘어 인제군 현리를 경유하여 그곳에서 인제군 서무 주 임을 만나 산수와 도로 상황을 청취하고 인제군청 소재지까지 가서 인제군수 김극일씨 와 원만한 협정을 마친 후 오색령 도로의 울창하고 빽빽한 좋은 목재를 시찰하고 14 일에 귀청하였다. 군민 모두는 내년도 강원도 예산에 편입해 주기를 갈망하는 중이다.
▪ 麟襄線 道路 問題로 洞民 當局에 陳情 五色嶺으로 고쳐달라고 800名 洞民 連署로
(인 · 양선도로 문제로 동민 당국에 진정 오색령으로 고쳐 달라고 800명 동민 연서로, 동아일보 1932. 3. 15)
<그림 10> 1932.3.15기사
강원도 인제 양양 간 도로는 총경비 20만원의 예산으로 벌써 설계해 놓고 아직까 지 공사를 착수하지 아니하였던바 금년도 인제지방은 대흉작으로 말미암아 수만 이재 민이 아사선상에서 헤매는 현상이므로 군 당국에서는 각 면에 구제회를 조직하고 각 방면으로 맹렬히 활동함은 물론이거니와 궁민(窮民) 구제책으로 인제 양양 간 도로공 사에 착수하기를 도에 신청하여 불원간(不遠間) 착수하게 되었다는데 현재 설계한 것 은 인제읍에서 기린을 거쳐 양양으로 관통하게 되었다 한다.
8백여 명은 연서 날인하여 전기(전에 설계된 기린 노선)의 예산은 불가하니 인제군 북면 원통리를 중심으로 오색령(五色嶺)을 관통케 해달라고 군 당국과 도 당국에 진 정서를 제기하였다.
▪ 四個面 聯合으로 五色嶺 道路 修繕 探勝客에 便宜不少
(4개면 연합으로 오색령도로 수선 탐승객에 편의 불소 1938. 12. 6)
<그림 11> 1938년 12월 6일 매일신보 기사
[襄陽] 五臺山 落脈인 襄陽郡 西岳山 一帶에는 無盡藏의 森林 藥草와 古蹟이 있고 襄陽邑에서 西面을 經由하야 約 四里를 入山하면 五色里가 있어 西便山壁에 五色藥水 가 있어서 每年 春夏期에는 數千의 患者와 探勝客이 集散하게되나 道路가 不完全하야 車馬通行이 不能함으로 此를 遺憾으로 生覺하는 地方民 等은 今月 上旬부터 工事를 着手할 豫定이라는데 隣面인 巽陽, 降峴 兩面에서도 多小夫役의 補助가 있을 模樣이 라고 한다.
오대산 낙맥인 양양군 서쪽의 설악산 일대는 무진장의 산림과 약초, 고적이 있다. 양양읍에서 서면을 경유하여 약 4리를 입산하면 오색리가 있고 서쪽 편 산 벽에 오 색약수가 있어 매년 봄과 여름에 수천의 환자와 탐승객이 방문하게 되나 도로가 불완 전하여 차마의 통행이 불가능하다. 이를 유감으로 생각하던 지방민 등은 금월 상순부 터 공사를 착수할 예정이라는데 인근 인 손양면, 강현면에서도 다소의 부역 보조가 있을 모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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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서울에서 오리진까지의 도로로 오리진은 지금의 고성군 죽왕면 오호리로 속칭 오리진(五里津)이라고도 했다하며, 조선총독부 관보 제1070호(1916. 3. 1일)에 간성군 죽왕면 사무소가 1916년 2월 5일 같은 면의 오진리(五里津)로 이전했다.(杆城郡竹旺面事務所ハ本年2月5日同面五里津里ニ移轉セリ)는 기록이 전한다.
26) 기수(技手)는 과거 기술직 8급 공무원의 직급을 칭하던 기원(技員)의 옛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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