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서별 업무현황 및 운영실태(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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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선광과
(1) 업무현황
① 채광과 각 항에서 채굴한 조광을 수광(受鑛)하여 기계 선별하여 제철 소에 보낼 최종산물인 정광(精鑛)을 생산하고
② 최종 선별되어 폐기하는 폐석은 골재로 출하하기도 하는 부서
③ 개광초기와 기계선광장 가동이전에는 수선(핸드픽킹)으로 선별하여 괴광기준품위(56% Fe 이상)의 괴 정광을 생산 육송 출하함.
④ 버려진 중광과 폐석을 재 선별하는 기선장외, 장외선별장도 있었음(장외 담당주임이 관리감독)
⑤ 최종산물 괴정광 56%Fe 이상, 분정광은 60%Fe 이상으로 생산하여 속초사무소까지 육송 출하함.
⑥ 육송은 트럭으로 하며, 한때에는 태평실에서 계근을 하였음.
⑦ 선광장 전 공정의 생산 및 폐기물에 대하여 시료(샘플) 채취하여 분석실(분석계)에서 성분을 분석 함.
⑧ 당일 생산량(정광)은 선광관리주임이 실수율 계산에 의하여 산출함.
<사진 4-5> 선광장 모습
◉ 선광계
① 선광과(選鑛課) 주무계이며 조광석(粗鑛石)을 선광장(選鑛場)에서 1일 3교대로 선별 처리하여 최종산물인 정광(精鑛)을 생산함. 생산 관리 공정별 교대 주임과 작업단별 감독, 기계 운전공 및 파쇄공 등으로 조직됨.
② 선광 기계와 장비의 유지 보수는 선광수리실(공무과 소속일 때도 있음)에서 함. 선광수리실에는 주임 1명, 감독 2명과 기계공으로 조직 됨.
③ 광석을 잘게 부수는 마광기(摩鑛機)인 볼밀(Ball Mill)을 설치 후에는 기존의 기계 선광장은 1공장, 볼밀 설치 공장을 2공장이라 칭하기도 함.
④ 선광 후 폐석은 도로포장 및 토건 골재로 판매람.
⑤ 폐석은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한창일 때는 지역사회에 무상으로 지원하기도 하였음.
⑥ 폐석은 전방 지역 군용 벙커와 강릉비행장 격납고 건설 당시 골재로 사용되었음.
※ 강릉비행장 격납고 건설시 고문관(미군 대령)이 골재 규격의 합격 여부(ASTM 미국공업규격)를 확인코자 직접 선광장을 방문하였음.
⑦ 큰 폐석인 대괴(大塊)는 새마을 축대용으로 반출되었음.
⑧ 장승4리 미나미골〔南村〕에 권양기(捲揚機)를 이용해 야적하였음.
폐광 무렵에는 골재 생산 현장으로 변모함.
<사진 4-6> 선광과 사무실(1960년경)
◉ 분석계
① 선광장 각공정에서 필요한 시료[시료공이 채취]를 채취하여 분쇄, 마광하여 분석실에 보냄
② 분석실엔 각종 시약(화학약품)이 비치됨
③ 시료에 대한 각종 분석방법을 적용하여 그 성분과 품위 철분 함양 비율을 확정함.
④ 계장, 주임들은 대학의 화학과 출신이었음.
◉ 출하계/육송계
① 선별 생산된 철광석을 트럭으로 속초사무소(저광장)까지 육송함.
② 육송차량(추럭)은 직영차량과 차입차량(용차라 칭함)으로 운행함.
③ 차입차량 차주들은 속초, 양양지역에서 트럭 소유자들이었음.
④ 가끔 육송직영차량기사들과 용차기사들과의 친목축구시합이 있었음.
⑤ 육송차량은 비공식적인 출퇴근용으로도 이용됨.
(2) 운영실태
① 기구 및 인원현황
1982년도 선광과는 선광, 분석, 육송부서에 소속된 종업원 수는 선광과장을 비롯한 사원 급이 8명이고 기운공 36명을 비롯한 고원은 80명으로 양양광업소 에서 두 번째로 많은 총 88명의 종업원들이 선광공정 및 선광방법에 의하여 고품질의 철광석을 생산하고 있었으며 인원현황은 <표 4-26>과 같다.
<표 4-26> 인원현황
② 선광시설의 변천과정
양양광산은 강원도 양양군 서면 장승리에 위치하고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철광석 생산광산이었다.
철광석은 도목갱, 논화갱, 양양갱, 수갱 등의 갱도에서 채굴한 모든 철광석은 선광장으로 운반되어 모든 공정(工程)을 거친 후에 정광(精鑛)을 생산하고 있었 으며, 선광장에서는 개광 이래 ′61년 8월까지는 노천(露天)에서 광부들이 수선 방법(手選方法)에 의한 선광조업을 하여 왔으나 당시만 하더라도 원광[조광(粗 鑛)]의 품질은 철 함양이 평균 45% 이상으로서 선별 상 문제점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저품위(低品位) 광석은 기술적으로나 경제적면에서 선별(選別)을 못하고 방치되어 중요한 지하자원의 손실을 가져왔었다.
따라서 선광장의 기존시설, 선광공정(選鑛工程) 및 선광 방법에 의하여 얻어진 조업결과와 문제의 저 품위 광석의 시험연구결과 자료들을 종합 분석하여 방치되어 있는 저 품위 광석을 처리할 수 있는 합리적인 선광시설, 공정 및 방법을 모색하여 새로운 설비 투자를 하여 차후 향상된 선광장 시설로 고 품위 철광석을 생산하여 보다 발전하는 양양광업소의 면모를 기대할 수 있게 만들어야 했었다.
이에 양양광업소 차체기술로 연구개발한 성과[논문(論文)]물이 인정되고 때마침 국가에서 제2차 5개년경제개발계획(第二次經濟開發計劃)의 일환(一環)으로 포항종합제철소가 건설이 되고 연구개발진의 기계화시설 개발에 편승(便乘)하여 볼밀(Boll Mill)기계가 도입되며 양양광업소의 저 품위 철광석 선광장이 건설되어 1일 1,500 M/T 의 원광(原鑛)을 처리하여 800여 M/T의 자철광을 생산하였다. 선광장에서 생산되는 철광은 수출하여 국가의 외자획득(外資獲得)면에서 큰비중(比重)을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내제철소의 원료공급원(原料供給源) 으로서도 중요시되었다. 양양광업소로 인하여 장승리 광산촌은 물론 양양 읍내와 속초까지도 지역경제가 활성화되며 큰 번영을 누리기도 하였다.
<사진 4-7> 선광 수선작업장(1960년경)
③ 선광장의 운영
양양광산의 광석광물은 자철석이 주이며 황철석, 자류철석(磁硫鐵石), 티탄철석 및 황동석이 소량 수반되고 각섬석(角閃石), 흑운모, 인회석, 석영, 녹니석(綠 泥石), 스핀 등이 같이 포획되어 산출되기 때문에 자력선별에 의해 선광을 하고 있다.
선광계통은 갱내에서 1차 파쇄되어 출광되는 100㎜크기의 수갱 조광과 양양 갱에서 출광되는 300㎜ 크기의 조광과 구분하여 저광한 뒤, 양양갱에서 출광된 조광은 36˝×24˝ 125㏋ 조크러셔에서 100㎜로 1차 파쇄한 후 수갱 조광과 혼합하여 급광(給鑛)콘베어로써 운반하여 50㎜ BAR GRIZZLY를 통과한다. 50㎜ over sige는 48˝×12˝ 75㏋ 조크러셔에서 50㎜로 파쇄한 후 200㏋ 콘크러셔를 거친 중쇄광석(中碎鑛石 : 캐낸광석을 두 번째로 잘게 부수는 일)은 Vibrating Screen에 의해 -10㎜ 분중광(粉中鑛)과 +10㎜ /-30㎜의 괴중광(塊中 鑛)으로 구분되며 괴중광은 건식 자선기로 2단계를 거쳐 중광과 괴정광(Fe 50%)으로 구분되여 괴정광으로 생산된다.
단체분리(單体分離 : 작업을 할 때에, 광석에서 광물을 가려내어 작은 입자 (粒子)로 만드는 일)가 어려운 중광(Fe 30~40%)은 200㏋ Ball Mill에서 마광 (磨鑛)된 후 분광처리(粉鑛處理)된다. 10㎜ Undersige 분중광은 습식(濕式) 자선 기로 4단폐(段陛)를 거쳐 분광처리된다. 이는 습식처리시 선광이 건식보다 깨끗이 되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양양광산의 처리규모는 2,400M/T/일 이며 선광 시설 현황은 <표 4-27> 에 나타나 있다.
<표 4-27> 선광시설 현황
◉ 선광처리공정
선광장의 급광 품위는 Fe 30% 내외이며 습식 및 건식 자력 선광에 의하여 Fe 56%의 괴광과 Fe 60%의 기준의 분광을 생산하고 있으며 선광처리 공정에 따른 선광계통도는 <표 4-28>과 같다
<표 4-28> 선광계통도
6) 공무과
(1) 업무현황
① 광업소 전반, 시설, 장비를 보수 유지하는 부서
② 공무계, 전기계 외에 한때 토건계도 있었음
③ 생산부서를 지원하는 부서로서, 종사자들은 전문적인 기술과 기능을 보유함
▶ 공무계
① 전반적으로 기계, 시설, 장비 등을 설치하여 유지, 보수하는 부서
② 공작실, 토건실, 설계실, 선광수리실(어느 시기에는)을 관리감독운영
③ 관리자(과, 계장, 주임)들은 대학기계공학과, 토목 ․ 건축공학과 출신 들이 보직됨.
④ 토건실에는 불도져와 그레이더가 있어서 도로보수, 제설작업 등을 함.
⑤ 토건실은 제재소 시설도 갖춤.
<사진 4-8> 공무과 작업 전경(1958년경)
▶ 전기계
① 자가발전시설을 보유함, 한전전기를 전적으로 공급 받기 전에는 자가 발전을 운용함.
② 발전실, 배전실(선광과)엔 전문적인 전기기능보유자가 보직됨
③ 자체에서 대용량 전기기기나 모터 등도 수리도 함.
④ 한전의 초창기 전기수급 땐 한전에 기술지원도 하였음.
⑤ 관리자(계장, 주임)는 대학 전기학과 출신들임.
⑥ 오래 숙련된 기술자가 인정을 받아 관리자로 보직되기도 함.
<사진 4-9> 공무과 발전실(1956년경)
(2) 운영실태
① 기구 및 인원현황 1982년도 공무과는 공무계와 전기계로 구분되며 소속된 종업원 수는 공무과 장을 비롯한 사원 급이 15명이고 기계공 28명을 비롯한 고원은 46명, 모두 61
명이 양양광업소의 갱(坑) 내(內)와 광업소 전 구역에 설치되어있는 기계 및 시설장비 등 모든 설비를 유지 보수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지원부서이며 공작실, 전기수리실, 선광수리실, 설계실, 토건실, 재제소등을 운영하며 인원현황은 <표
4-29>과 같다.
<표 4-29> 인원현황
② 동력시설 및 중장비 보유현황 공무과 업무소관인 동력시설은 유사시 한국전력에서 공급되는 수전전력(受電 電力)이 중단되면 이를 보완하기위하여 자체 발전기를 가동하여 조업에 피해를 최소화 하기위한 시설이다. 전력시설현황 <표 4-30>과 각종 운반 및 기타 중장비 보유현황 자료는 <표 4-31>와 같다.
<표 4-30> 전력시설 및 공작시설 현황
<표 4-31> 중장비 보유현황
7) 조사과
(1) 업무현황
① 새로운 광체를 발견하여 매장량을 확보하고, 광산수명을 연장시키는 업무를 수행하는 부서
② 시추[보링(Boring)]는 대한광업진흥공사의 도움으로 이루어짐
③ 광산의 광상(鑛床)과 지질을 조사함
④ 탐광종사자들은 대학의 지질학과 출신들임.
⑤ 광구를 측량하고 도면 화하는 측량계가 있음(1급 측량사)
▶ 조사계
① 탐광, 시추업무
② 지질, 광상조사
▶ 측량계
① 광구경계 측량 등
(2) 운영실태
① 기구 및 인원현황 1982년도 조사과는 조사계와 측량계로 직원 수는 조사과장을 비롯한 사원 급이 10명이며 탐광공 19명을 비롯한 고원은 23명, 총 33명이 지질조사 및 탐광 조사 로 새로운 광맥을 찾아(발견)내 양양광산의 지속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조사업무를 수행하며 직원현황은 <표 4-32>과 같다.
<표 4-32> 인원현황
② 장기 탐사계획 현황 미개발 구역인 가라피리 지역 및 신규통합광구 일대 정밀 지표 지질조사를 실시하여 전탐 및 자탐을 병행하여 이상대를 확인하고 특히 논화리 및 심부수 준의 광체부 존재여부를 집중 탐사 하고 탐광굴진으로 매장량을 확보코자 하는데 년도 별 탐광계획은 <표 4-33>과 같다.
<표 4-33> 년도별 탐광 계획
③ 조사업무 계획 및 실적 현황 광맥 확보를 위하여 조사과에서 1980년도와 1981년도에 시행되는 시험탐광, 장공탐광, 탐광갱도굴진, 물리탐광, 야외측량 계획 및 실적은 <표 4-34>, <표
4-35>과 같다.
<표 4-34> 1980년도 탐광계획 및 실적 현황
8) 속초사업소
① 광산에서 육송되는 철광석을 괴 ․ 분광구분하여 저광하였다가 소형선박에 옮겨 실어 제철소로 가는 대형선박에 선적작업을 하는 부서.
② 소장은 광업소 부소장급이었으며, 한때는 이사급 소장도 있었음.
③ 대내외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총무계와, 저광장관리와 선적작업 관리를 하는 하역계가 있었음
④ 대외업무는 항만청 항만관리 사무소에서 하는 입출항 업무임.
<사진 4-10> 광석 출하 및 하역작업(1956년경)
9) 비상계획실
① 비상사태 발생에 대한 인적동원과 방호업무 수행부서
② 실장은 육군 소령출신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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