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황계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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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황계께 드림 신사년(1881, 고종18) 11월 (與李黃溪 辛巳十一月)
성재(省齋) 유중교(柳重敎)
근래에 저의 이름이 추천되어 6품관으로 올랐다고 들었습니다. 온 마음이 황송하여 설명하고자 하여도 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척사척화(斥邪斥和)하는 뜻은 나 그리고 나의 스승과 나의 벗이 마음이 모두 하나 입니다. 그런데 사우들은 참혹한 화16) 를 입고, 갑자기 저에게는 영광스러운 명예가 더해졌습니다. 이것은 조정에서 약간의 엄정한 법도로 사람을 처우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 또한 무슨 면목으로 천하의 지사들을 대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짐승 발자국과 새 발자국(외세의 침략을 말함)이 나라 안을 휘젓고 다니는 것이 나날이 더욱 심하여 들어보지도 못했습니다. 진실로 이미 이 세상에 뒤섞여 살 생각이 없습니다. 더구나 이런 일이 더해졌으니 어찌하겠습니까.
저는 차라리 머리를 풀어헤치고 산에 들어가 세상 밖으로 떠돌아다니면서 사우(師友)와 더불어 죄를 같이하고 함께 망하는 의리를 지킬 것입니다. 요즈음 병든 몸을 지탱하여 길을 떠나 우선 설악산 아래에 도착하여 한해를 마칠 계획입니다.
내년 봄 이후에 힘이 되는 대로 열심히 노력하여 산중의 여러 경치 좋은 곳을 두루 감상하면서 북쪽으로는 비로봉에 오르고 동쪽으로는 큰 바다를 임하게 된다면 가슴 속 가득한 근심을 조금 풀 수 있을 것입니다. 집안일은 아이들에게 맡겼지만, 장차 조만간 역시 집을 처리하고 따라오게 되겠지요. 다만 어느 곳 골짜기에다 초가집 몇 채를 마련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대체로 저의 이번 행차는 나의 마음이 편안해지기를 구하고자 하는 것일 뿐입니다. 다음의 많은 곤란한 상황은 모두 묻지 않더라도 후대의 군자는 혹시나 이러한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이가 당연히 있을 것입니다.
『省齋集』
「與李黃溪」 辛巳十一月
近聞賤名被薦陞六. 滿心惶惑. 求其說而不可得. 今日斥邪斥和之義. 吾與吾師吾友. 同一秉執. 而今於師友慘禍之餘. 忽以榮名加於賤身. 是朝家不以一分廉隅處人也. 我亦將以何顔對天下之士乎. 目今獸蹄鳥跡之交於國中者. 日甚一日. 聞所不聞. 固已無混處斯世之念. 况加之以此事乎. 吾寧被髮入山. 放迹物外. 以守與師友同罪共廢之義也. 日間將力疾登程. 先就雪岳山下. 爲終歲計. 開春以後. 隨力可強. 徧賞山中諸勝. 仍北登毘盧. 東臨大海. 庶幾小寫胷中萬斛之憂也. 家事付之小兒子. 將來亦須拔宅而從之. 但不知何處澗阿準備茅宇數橡也. 大抵區區此行. 以求卽乎吾性之所安而已. 下面許多戛戛. 皆所不問也. 後之君子或當有識此心者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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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881년(고종18)에 위정척사의 소를 올린 사건이다. 홍재학은 서소문 밖에서 처형되고 김평묵은 전라도 지도(智島)로 유배 간 사실이다. 유중교는 소를 올리는데 연명을 하였는데도 도리어 관직을 제수 받게 되자 부임하지 않고 설악산으로 은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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