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계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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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산사제영(洛山寺題詠) 동량(㠉梁) 최계옹(崔啓翁) 157)
부상에서 처음 해가 절을 비추니 扶桑初日射梵宮
붉은 비단 하늘에 씩씩하고 굳센 기운이 가득 찼네 紅錦漲天氣勢雄
십도삼산의 안개 밖 十島三山烟霧外
신선과 천제가 사는 궁궐에는 없는 가운데 있네 銀坮金窟有無中
숫고래와 암고래가 거세게 물결쳐 천 층의 파도 일으키고 鯨鯢噴薄千層浪
갈매기 백로를 만리풍으로 흔들어 날려 보내네 鷗鷺搖揚萬里風
동해의 기 이한 광경 이처럼 승경이 되고 東海奇觀此爲勝
고황(高皇)의 고하우열의 판정은 대개 공이라 말하네 高皇題品盖云公
『峴山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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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 최계옹의 본관은 삭녕(朔寧)이고 자는 내심(乃心), 호는 동량(㠉梁)이다. 한성부 우윤 최행(崔荇)이 손자로, 1681년(숙종7)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설서(設書)를 지냈다. 1695년 지평으로 동지사의 서장관이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고, 그 후 정언을 지냈다. 1704년 장령으로서 앞서 단종이 폐위될 때 이를 지지한 대신들의 관작 추탈을 주장하다가 파직되었다. 1706년 보덕으로 기용되고 집의·사간을 역임하였으며, 홍문관에 등용되었다가 1710년 과격한 상소를 하여 제주목사로 좌천되었다.1714년(숙종40) 6월에 양양부사로 도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