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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 6백년 미래를 잇는 양양문화원

    낙산사 시문

    중종실록

    페이지 정보

    조회 409회

    본문

     

    ○ 1513년 명 정덕(正德) 8년 공주의 예사전이 된 낙산사의 사전을 예전대로 사찰에 주게 하다.


    이보다 앞서 의령(宜寧)에 있는 낙산사(洛山寺)의 사전(寺田)을 경순공주(慶順公主)가 예사전(例賜田)으로 받았었는데, 그 후 사노(寺奴) 명동(命同)이 신소(申訴) 28) 하기를 ‘왕패 (王牌) 가 있는 사사전(寺社田) 29) 을 속공(屬公) 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으므로, 이때에 와서 호조가, 예조의 공문서에 따라 왕패가 있는 전지는 속공하지 말도록 하고 예전대로 사찰에 줄 것을 청하니, 그대로 따랐다.


    先是, 洛山寺田在宜寧, 慶順公主, 以例賜田受之, 厥後寺奴命同申訴云, 有王牌寺社田, 不當屬公.至是戶曹請, 依禮曹關, 有王牌田地, 勿令屬公, 仍舊給寺. 從之.


    『中宗實錄』 19권, 중종 8년 11월 19일 癸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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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신소(申訴), 범죄의 피해자나 그 법 정 대리인이 수사 기관에 범죄 사실을 신고하여 수사 및 범인의 소추를 요구함을 이름.

    29) 사사전(寺社田), 조선 시대, 절에 소속되어 있던 논밭.